가게의 재계약 문제로 한동안 속이 시끄러웠지만 지금은 어쨌든 그럭저럭 결론이 났다. 이번 일로 나조차 확신할 수 없던 내 생각과 마음도 조금 더 알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의 진심도 보게 되는 기회였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또 마무리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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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약을 고민한 이유. 연장계약 조건이 기존의 조건과 크게 달라지면서 나에게 꽤 불리해졌었다. 분하고 억울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시발 왕서방이 번다더니. 자세히 서술할 순 없지만 노예계약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변경 건만 아니라면 당연히 이번까지는 재계약을 이행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길어진 매너리즘으로 자영업이고 뭐고 이놈의 가게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던 게 이미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배우자에게 이혼서류를 받는 기분이 이런 걸까.
당장 계약 만기 한 달을 앞두고서 이제 와 ‘이 조건이라면 나는 못 하겠다’고 하니까 본사 쪽에서도 당황스러워 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대기업이 뭔 걱정이 있겠어. 다른 재주부릴 곰 구해서 또 꽂아 놓으면 그만이겠지. 근데 한낱 소상공인 나부랭이는 하루아침에 빚 떠안은 백수가 되게 생겼다. 이를 어째. 먹여 살릴 입이 많으니 고정 지출비는 계속 들 테고, 몇 년은 더 남아 있는 대출금도 매달 나갈 텐데. 아니, 그건 내 사정이고 직원들 퇴직금부터 챙겨야 하는데. 눈앞이 아득했다. 가게 문 닫는 순간 당장 급한 대로 다른 가게에서 일당을 뛰든지, 공장이라도 들어가든지, 아니면 둘 다 하면서 투잡을 뛰든지 안 가리고 뭐라도 해야만 한다. 그래도 그나마 아직은 젊으니까 어떻게든 먹고 살길은 있겠지, 설마 굶기야 하겠나.
8년을 쉬는 날 없이 일하면서 사소한 것 하나도 버거운 책임을 져 가며 살아온 게 숨이 막히도록 답답했었으니까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도 빨간 날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 보고 싶었고, 가끔은 오전 늦게까지 늘어지게 자 보고 싶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늦은 밤에 출근해 점심에 퇴근하는 쳇바퀴 삶을 살다 보니 오전에는 늘 근무 중이었고, 반드시 해가 지기 전엔 잠에 들었어야 했다. 그래서 노을 지는 시간에 여유롭게 산책도 하고, 주말엔 그렇게 좋아하던 바다도 보러 가고 싶었다. 그저 남들처럼.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그런 걸 다 포기할 만큼의 가치 있는 일을 한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나 오랫동안을 그 정도도 못 하고 살았을까. 그렇게 해서 떼돈이라도 벌었다면 그리 억울하진 않았겠지.
나도 누가 시키는 일만 부담 없이 하고 가고 싶다. 시간당 최저 임금인 9,620원어치만 딱 깔끔하게 일해주고 칼같이 칼퇴근해 보고 싶다. 명절 때마다 안 받느니만 못한 실속 없는 명절선물 세트라도 악착같이 받고 싶고, 그 과대포장 뜯으면서 ‘줘도 이딴 걸 주냐’며 회사 욕도 하고 싶다. 성수기와 비수기라는 롤러코스터 같은 불안감 없이, 일정한 고정 수입이 매달 같은 날 통장에 딱딱 찍혀 그날만을 기다려 봤으면 좋겠다. 나도 쉬는 날에도 주휴수당 꼬박꼬박 챙겨 받고 싶다. 그깟 사장님 소리 안 들어도 되니까, 나도 급여에서 4대 보험료 까이고 싶다. 일하다 다치면 산재 처리도 받아보고. 날짜나 요일 따위 아무 의미 없는 나에게도 금요일이 불금이었으면 좋겠고, 월요일엔 월요병도 걸려보고 싶다. 유통기한 훌쩍 지난 인스턴트 식품 말고, 나도 회사에서 주는 맛대가리 없는 밥 먹어보고 싶다. 생리할 땐 엄살 부리면서 반차 내고 조기 퇴근도 해 보고 싶다. 술에 취한 무례한 사람들 상대하는 대신, 연말 회식 자리에 나가 술 한 방울 안 마시고도 3차까지 달려 노래방 가서 [흐린 기억 속의 그대]를 쌩목으로 완곡 때리고 싶다. 중간에 ‘현진영 고, 진영 고’는 꼭 해야 하니까 절대로 간주 점프 금지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빠른 속도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장은 막막해도 오히려 좋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긋지긋한 일상에 적어도 변화는 생기는 거니까. 알맞은 시기는 전혀 아니었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도 어쨌든 큰 전환점이 될 건 분명해 보였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최대한 빨리 인정하고 뭐라도 다른 걸 준비할 생각으로 그 시간을 보내는 게 나았다. 어쩌다 보니 이곳에 묶여 오랜 시간 잊고 살았지만 나는 적응력이 빠른 편이었다. 벌써 익숙했던 것들로부터 하나씩 정을 떼는 중이었다. 고양이 밥은 맞은편의 쪽갈비집 사장님께 전달 해 나 대신 주시라고 부탁드리면 될 거고, 기존의 직원들은 본인이 원하는 한에서 누가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는 다음 점주님께 인계할 수 있도록 합의 봤다. 재고가 부담되지 않게 발주를 점점 줄여야겠지. 앞으론 나도 이제 편의점에서 내 돈 내고 사 먹게 되겠네. 물론 도시락이고 삼각김밥이고 컵라면이고 이미 물릴 대로 물려버려서 적어도 몇 년은 쳐다보기도 싫겠지만. 주변의 가게 분들께는 이 사실을 일찍 얘기하는 게 낫겠고, 단골분들한테는 계약이 끝나기 며칠 남지 않은 시점이 됐을 때 인사드리는 게 낫겠다. 가게에 두고 쓰던 내 살림살이들과 초롬이 물건도 미리 조금씩 챙겨가야겠다. 초롬이는 언제가 됐던 언젠가는 집에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이런 생각들로 일주일을 보내니 출근의 감회가 새로웠다. 지겹도록 길게 느껴지던 근무 시간도, 이제 이 짓도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버틸 만 해졌다. 손님이 염병을 떨고 진상을 부려도 별로 화도 안 나더라. 매일 가게 밖에서 욕이나 궁시렁대며 쓰레기를 주울 때마다 한 번씩 바라보던 달도, 더 이상 예전의 달이 아니었다. 줍다 말고 집게를 손에 든 채로 가만히 서서 달을 한참 보고 있다가, 몇 걸음 더 멀리 떨어져서 가게 전체의 외관을 눈에 담는다. 이 빌어먹을 놈의 가게. 내 소중하고 아까운 삼십 대를 통째로 날려 먹은 미운 내 새끼. 한밤에도 온 동네를 비추며 밝게도 번쩍거리던 개업 날의 간판은 여덟 살의 나이를 먹으며 얼룩덜룩 때가 탔고 군데군데 등도 나간 데다, 테이블도 의자도 다른 곳도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었다. 꼭 거울을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며 버텨낸 애증의 우리. 고생 많았다, 정말로. 새 주인은 부디 나보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있을 때, 변수가 한 번 더 생겨 버린다. 재계약을 거절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편은 조율을 원했다. 아마 계산기를 두드려 봤을 때 점주가 바뀌면 한동안은 여러모로 골치 아픈 일들이 생길 테니, 본사 측에서는 웬만하면 지속을 유지하는 게 더 이득일 거라고 판단한 모양새였다. 그쪽에서 먼저 양보해서 변경된 조건으로 계약서를 수정해 다시 내 앞에 내밀었다. 단박에 거절했던 조건보다야 상황이 좀 나아졌기는 해도 여전히 내게 유리한 방향은 아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고민이 됐다. 도도한 척하면서 콧방귀라도 뀌고 싶었지만 사실 내 코가 석 자라서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미련 없이 마음을 접어가는 과정 중이라 그 정도엔 전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었는데, 막상 상황이 바뀌니 솔직히 솔깃했다. 계약을 해도 힘들고 안 해도 힘들 거라면 하던 일 하면서 힘든 게 그나마 덜 힘들 것 같더라. 나쁘기만 했던 내 인생이 나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처럼 별안간 절박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눈앞이 캄캄했었구나. 그렇다고 이렇게 기다렸단 듯이 덥석 물기엔 후회 없이 신중 하고 싶어서 일주일 안에 결정하고 다시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었다. 지금의 결정으로 방향성이 크게 갈릴 것 같았다. 위험을 감수 하고서라도 매너리즘으로부터 벗어나 좀 더 빨리 새로운 일을 찾을 것인가, 아니면 그나마 안전한 지루함의 연장선에서 다음 일을 천천히 준비할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던 쉬운 길은 없었기에 고민이 깊어졌다. 주변 사람들의 의견도 확연히 갈렸다. 혼자만의 고뇌로는 계약서에 사인하는 그 순간까지도 결정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하루하루 괜히 초조해졌다. 그러다 문득 ㅅㅎ언니 친구가 점집을 한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겨우 그런 거에 의지해 결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살면서 그런 걸 봐야 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게 꼭 지금일 것만 같았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점쟁이 언니는 가게를 접으라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단호박인 줄. 지금 있는 곳에서 문을 닫고 나와야 새로운 문이 열리는 법이라면서, 마음속으로는 이미 결정한 문제 아니냐면서. 오래전부터 벌써 가게 일에 마음이 떠 버렸었던 걸 들킨 것만 같았다. 올해도 힘든 일이 많은 해였지만 내년부터는 좀 풀릴 거라고, 그러니 그만두는 걸 겁먹지 말라며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거두라고도 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지만 일생을 불안정 속에 살았는데, 내 좆같은 팔자가 어디 그리 쉽게 가겠어. 그도 그럴 것이, 나년은 사나운 팔자를 타고났으니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라고 하더라. 이게 덕담인지 뭔지 어찌 들으면 저주 같기도 한 저 말을 듣는 순간, 그러나 의외로 큰 위안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괴로운 일이 많았지만 다들 그러고 사는 건 줄 알았거든. 누구나 다 가진 어려운 사연 속에서도 그들은 꿋꿋이 버티며 밝게 살아가는데, 나만 유독 나약해 빠져서는 힘들다고 징징대면서 환경 탓만 하고 엄살이나 부리는 줄 알았지. 내가 힘든 건 정말로 힘든 일들을 겪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지금까지 누구도 제대로 알려준 적 없었다. 점쟁이는 오죽하면 나에게 ‘너는 어디 가서 점 보지 말라’고도 했다. 너 같은 애한테 신내림 받으라 하는 거라고. 하여간 기구한 팔자로는 상위 1%일 무속인으로부터, 정작 내 팔자가 세다는 이야길 들으니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진 거다. 나는 그저 늘 힘들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공신력 있는 인물로부터 공인인증 된 팔자 사나운 년임.
하다 하다 점까지 본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자리에 듣고 있던 친구들과 갑자기 사주를 보러 가기도 했었다. 사주쟁이는 뜻밖에도, 아직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펼칠 수 있는 때가 아니라면서 하던 일을 좀 더 하길 권했다. 한 가지 문제를 두고서도 양쪽에서 극단적으로 다른 답을 들었다는 게 꽤 재미있는 포인트다. 혹시 이게 사주와 신점의 차이일까 궁금했으나, 명리학을 공부해 직접 사주를 볼 줄 아는 또 다른 친구는 오히려 점쟁이와 의견이 같았으니 아마 주관적인 해석의 차이인 듯하다. 그 부분이 내 고민의 무게를 떠나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런 사실 자체가 세상이 내게 주는 메시지 같았다. 뭐가 됐던 결국엔 나 혼자만이 결정해야 하는 문제이고, 자신의 판단을 믿어야 하며, 그에 따른 책임도 스스로의 몫이라는 메시지. 해서 여전히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약간의 용기를 얻었다. 지금까지의 고생에 비해 내년부터는 편해질 것이고, 금전운도 좀 따라올 테니까 너무 돈 걱정은 말라는 공통적인 답변에. 돈 걱정만 줄어도 웬만한 다른 걱정이 줄어들겠지만 그렇다고 운빨만 철썩같이 믿을 순 없으니, 내 능력을 믿기로 한다. 어느 쪽으로 결정하더라도 내가 열심히 벌면 되는 일일 테다.
그래서 타협하기로 했다. 딱 마흔 살까지만 더 하고 깔끔하게 손 털기로. 애초의 계획대로, 마지막 재계약이라는 생각으로 디데이 카운트를 세기로 한다. 나는 다시 올드보이처럼 방에 갇혀 군만두만 먹겠지만, 이 위기를 기회로써 이용할 것이다. 불과 얼마 전 이 일을 관두기로 했을 때 느꼈던 마음가짐으로, 매일 새로워진 달을 보며 출근할 것이다. 다시 주어진 남은 3년은, 더 먼 훗날 되돌아보더라도 잘한 결정임에 틀림이 없도록 의미 있게 보낼 것이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적어도 10년은 그 일을 해 봐야 안다고 했다. ‘소매유통업계의 거상이 되고 말겠다’는 농반진반의 개드립을 치던 과거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결국 매너리즘도 슬럼프도, 또 이 모든 고민도 다 짬바 10년의 전문가가 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련다.
뭐, 말은 다 존나 거창한데 그냥 간단히 말해서 나는 내가 그만하고 싶을 때 그만둘 거고, 그게 지금이 아닐 뿐이란 거다. 이것저것 재보고 따지는 걸 내려놓고서 단순히 내가 원하는 게 무언지 생각했을 때, 아직은 내일도 출근하고 싶더라. 내 판단을 I am 신뢰에요. 비과학적인 의견을 구하긴 했으나 결정은 온전히 나의 판단이었다. 박복한 나에게도 작은 운수가 들어와 이전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줄 거라 했으니까, 눈 똑바로 뜨고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판은 깔려 있으니 나만 잘하면 된다. 3년 뒤 오늘이 오면, 그날의 나에게 은퇴 선물로 좋은 거 하나 해 줘야지. 시간 또 금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