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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PD May 27. 2024

기분이 나쁠 땐 불량식품을 먹어야 한다


알코올에 절여진 젊음     


 부어라 마셔라 죽어라 하며 술을 배웠다. 적당히 마신다는 건 마시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대학에 들어가 학과 모임이든 동아리 모임이든 모두 죽자고 술을 마셔 취했다. 이성의 끈을 놓고 인사불성이 되어야 잘 마신 술자리였다. 상대방의 망가진 모습을 확인했다는 안도감에서 나오는 것이었을까, 그렇게 ‘우리 모두 하나’라는 동질감을 얻으려 했다. 주머니가 무한히 가볍던 시절, 25도짜리 소주 한 잔에 김치찌개 한 숟가락 간신히 떠먹는 자리들이었다. 맥주라고는 물을 많이 타 밍밍한 생맥주가 표준이었다. 고기를 사주는 선배는 영웅이었고, 회를 사주는 사람은 신이었다. 변변치 않은 안주에 속이 깎여도 술 마시는 것 외에 별달리 할 것이 없던 때였다. 가진 돈이 다 떨어지면 길바닥에서 짱구 한 봉지에 소주를 깔 때까지 마시는 것이 보통이었다. 친구들이 취해 돈 없이 술이며 안주를 계속 시키는 것을 겪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너무 싫었던 나는 술자리를 시작할 때 모두 얼마를 가지고 있나 체크하고 주문을 할 때마다 계산을 하며 마셨다. 예산이 다 떨어지면 자리를 해산시키는 게 내 일이었다. 어찌 보면 참 짠 내 나는 기억들이다.

 회사에 취직을 하고 나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먹는 술이나 안주가 좋아졌을 뿐 부어라 마셔라 죽어라 하는 음주법은 똑같았다. 입사해서 맨 처음 배정된 업무는 <생방송 모닝와이드>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밤을 새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아침에 방송이 끝나면 마무리되는 스케줄이었다. 그러면 아침 아홉시도 되기 전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어떻게?’라고 궁금해 할 지도 모르겠다. 그땐 방송국 바로 옆에 아침부터 술을 파는 식당이 꽤 있었다. 한창 지상파 방송이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양주폭탄주 정도는 마셔야 제대로 된 술자리였다. 그렇게 돈을 쓴다는데 마다할 장사꾼이 있을까? 폭탄주를 말아 빈속에 들이붓는다. 밤을 꼴딱 새서 온전하지 못 한 정신은 알코올이 들어가며 완전히 녹아버린다. 그렇게 해가 다시 질 때까지 마신다. 제정신인 것이 비정상인 술자리들이었다. 그것이 스트레스를 푸는 일이고, 끈끈한 인간관계를 만드는 지름길이라 믿었다. 하도 자주 가니 술집에선 언제나 VIP였다. 하루는 마시던 술이 떨어져 선배PD가 ‘내가 남겨 놓은 위스키가 있으니 그거 받아와라’하고 시킨 적이 있었다. 거나하게 취해 카운터로 가 선배 술을 달라 했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주인장은 씩 웃더니 ‘그 선배 이름으로 된 건 없고, 당신 이름으로 맡겨 놓은 건 있수다’하며 반쯤 남은 위스키 한 병을 내밀었다. 맡겼던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지만, 여튼 술이 있어서 좋았다.      


     

폭탄주와 와인     


 주당이라면 누구나 좋은 술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 어릴 때 가장 좋은 술은 발렌타인 30년산, 조니워커 블루라벨. XO 꼬냑이 대표했다. 누가 한 번 마셔봤다 그러면 ‘우와’하고 탄성을 지르며 무슨 맛이 나더냐 궁금해 하곤 했다. 소득수준이 그리 높지 않아 다양한 술을 팔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위스키가 뭔지 꼬냑이 뭔지 구분도 못 했고 ‘양주’라고 퉁 쳐서 고급술로 생각했다. 요즘엔 이름도 듣기 힘든 패스포트, 썸씽 스페셜 같은 스탠다드급 위스키가 ‘고급양주’ 대접을 받으며 시장에 풀렸다. 웃픈 것은 아무리 고급 대접을 받아도 병을 딸 때까지일 뿐이고, 모두 맥주에 섞어먹는 용도로 소비됐다는 사실이다. 패스포트건 발렌타인30이건 차이가 없었다. 양주는 폭탄주에 타먹는 술일 뿐 이었다. 나중엔 아예 맥주에 타먹으면 맛있는 블렌딩으로 위스키가 출시되었다는 얘기가 들렸다. 맛은 차치하고 ‘나 이런 것 먹는 사람이다’라는 기분을 내는 것이 중요했다. 주량경쟁을 하고 같이 취해 니나노 하면 그만이었다. 이렇다 보니 좋은 술을 제대로 즐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양한 술을 구할 수도 없었고, 그 맛에 집중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는 더더욱 만들기 어려웠다.

 와인이 유행하며 이런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었다. 포도 품종별, 산지별로 맛이 천차만별이고 가격도 저렴한 것부터 수백만 원대까지 너무도 다양했다. 개인의 취향이 없이는 골라서 마시기가 어려웠다. 물론 와인이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에 와인폭탄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던 버릇들이 있으니 양주건 소주건 타서 먹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마셔보면 안다. 와인폭탄주는 맛이 없다. 와인도 버리고 타는 술도 버리는 바보짓이다. 와인은 폭탄주 문화와 결별을 하고 독자적인 길을 간다. 고급스런 취향이라는 배경을 깔고 우아한 술 문화를 만드는 이미지를 획득한 것이다. 매체에서 이런 이미지를 더욱 강화했다. 뉴스, TV, 책, 만화 등 여기저기서 와인에 관한 정보를 쏟아냈다. 바디감, 부케, 떼루아, 마리아주 등등 처음 듣는 용어들이 등장했다. <신의 물방울>을 읽고 나면 와인 한 잔에 주변이 꽃밭이 되고 지평선에서 해가 뜨는 황홀경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좋은 와인을 고르고 적절한 맛 표현을 할 줄 알며 어울리는 식사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교양인의 상징인 것으로 평가됐다. 단지 취하려고 마시던 술이 섬세한 감각을 요구하는 음식으로 변화했다. 경쟁적으로 다양한 와인이 팔리기 시작했다. 이 추세는 점점 확장되어 맥주, 위스키, 화이트 리커 등 모든 분야의 술에 다양한 취향을 반영하는 시장으로 변해갔다.          



취향을 찾아서     


 직업을 얻어 돈을 벌고, 다양한 술이 쏟아져 나오니 내 세상이 열린 것 같았다. 제일 먼저 파고든 것은 와인이었다. 열심히 책들을 읽고 궁금한 와인을 마셨다. 포도품종별 특성을 알고 어울리는 음식들을 찾는 것이 첫 단계였다. 이후 내게 더 맞는 와인 제조사를 외우고 적절한 가격대의 와인을 때에 맞춰 고를 수 있게 하는 것이 그 다음 목표였다. 저렴한 마트 와인부터 전문 셀러들이 파는 고급 와인까지 한참을 마셨다. 그렇게 몇 년을 지냈을까, 문득 허무함이 찾아왔다. 내가 정말 맛을 중심으로 와인을 고르고 있는 게 맞나 싶은 의문이 생겼다. 비싸고 유명하다고 나에게 맞는 것이 아니었다. 싼 마트 와인에서도 내 베스트 초이스가 있었다. 내게 가격대비 만족감 함수는 S자 모양이었다. 2만 원짜리 와인보다 두 배 비싼 4만 원짜리 와인이 주는 만족이 가격처럼 두 배라고 해보자. 내게 이 차이는 가격이 높아질수록 적어진다. 8만 원 와인은 4만 원에 비해 커봐야 1.5배 만족감이랄까. 가격이 더 올라가면 그 차이는 더 줄어든다. 16만 원짜리 와인이 8만 원짜리보다 더 좋다는 것을 알겠지만, 그 차이는 미미하게 느껴졌다. 그럼 나는 4만 원짜리 와인을 4번 마시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내가 고급한 이미지 소비에 눈이 멀어 있는 건 아닐까? 맛도 잘 모르면서 최고급 와인을 들여다보는 내가 한심해 보였다.

 이 때 쯤 시작한 것이 싱글몰트 위스키였다. 와인처럼 다양한 개성을 지닌 싱글몰트는 내게 신세계를 열어줬다. 오픈한 후 남기기 어려운 와인과 달리 위스키는 두고 마셔도 크게 변질이 안 된다는 장점이 있다. 마음껏 사서 언제든 비교하며 마실 수 있다. 싱글몰트 위스키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전이어서 블렌디드 위스키보다 가격도 더 저렴했다. 하이랜드, 스페이사이드, 캠벨타운, 아일레이 각지의 위스키를 사 모았다. 여러 가지를 마시며 몰트, 피트, 캐스크의 특징을 가려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술의 색상과 점도, 향과 맛, 목 넘김까지 조금씩 이해도가 높아지는 것도 좋았다. 주류 관련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더 다양한 술들을 다루고 마셨다. 스카치 외에 다른 지역 위스키도 다양하게 마셨다. 보드카, 진은 칵테일에 따라 가장 맛있는 것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럼과 데킬라는 마시는 방법에 따라 종류별로 사 모았다. 좋아하는 칵테일을 만들기 위한 리큐르도 몇 가지는 항상 구비하게 되었다.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맛의 술을 골라 마실 수 있는 취향의 발견, 지금도 내게 가장 큰 즐거움의 원천이다.        


  

버번과 불량식품     


 위스키는 여러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다. 보리에 싹을 틔운 맥아로만 만든 것을 몰트(malt)위스키, 그 이외의 곡물로 만든 것을 그레인(grain)위스키라고 부른다. 이 둘을 섞으면 발렌타인, 조니워커 같은 블렌디드 위스키가 된다. 한 증류소에서 난 몰트위스키만으로 만든 술을 싱글몰트라고 부른다. 글렌리벳, 맥켈란, 글렌피딕 같은 것은 다 술이 나온 증류소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증류소별로 개성이 강해 취향에 따라 골라 먹는 즐거움이 있다. 만든 지역에 따라서 분류하기도 한다. 스카치, 아이리쉬, 재패니즈, 아메리칸 위스키가 제일 큰 구분이다. 말 그대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일본, 미국에서 만드는 위스키이다. 이 아메리칸 위스키 중에서 켄터키 주에서 만드는 위스키를 버번위스키(Bourbon Whiskey)라고 부른다. 이 이름은 미국 독립 전쟁 당시 프랑스가 도와줬다는 사실을 기념해서 프랑스 왕조인 부르봉(Bourbon) 왕가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한다. 버번위스키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규정을 따라야 한다. 원료로 최소 51% 이상의 옥수수를 사용해야 하고, 반드시 불에 태운 새 오크통만을 이용해야 하며, 물 외 조미료나 색소 등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아야 한다. 흔히 마시는 스카치위스키는 맥아의 맛이 강하고, 특정 포도주나 술을 담갔던 통 속에 숙성시켜 그 향을 입히는 경우가 많다. 옥수수와 새 오크통의 맛으로 승부하는 버번위스키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 될 수밖에 없다. 난 기분이 나쁠 때 버번위스키를 마신다. 내겐 불량식품을 먹는 듯한, 금지된 즐거움 같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싱글몰트위스키는 종합적인 감각을 동원해 맛을 보게 된다. 고소함, 훈연향, 단맛의 정도, 사용한 캐스크의 향 등을 구분하고 그 조화에 대해 생각한다. 버번은 좀 다르다. 복잡한 느낌이 아니라 아주 직설적으로 다가온다. 옥수수의 쨍한 단맛이 치고 들어와서 강한 알코올에 녹아든 참나무 향을 코에 쏘고 짜르르하게 넘어간다. 싱글몰트가 잘 차려진 식사 같은 느낌이라면, 내게 버번은 강렬한 불량식품 같은 느낌이다.

 꼬맹이 시절 학교 앞 문방구에서 본드풍선이라는 걸 팔았었다. 조그마한 튜브와 빨대를 함께 파는 물건이었다. 빨대 한쪽 끝에 꾸덕한 튜브 내용물을 조금 짜서 붙이고 빨대를 불면 풍선처럼 불어나는 장난감이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본드 냄새가 아주 강하게 난다는 것이다. 풍선을 부는 재미도 있었지만,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강렬한 후각체험이 신기해서 사는 물건이었다. 당연히 몸에 안 좋았을 테고, 당연히도 나중에 판매가 금지되었다. 버번을 처음 마셨을 때 어디서 익숙한 향이 난다고 느꼈었다. 난 그 향이 어릴 적 각인된 저 본드풍선의 냄새가 소환된 것이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동시에 문방구에서 코 묻은 돈을 유혹하던 수많은 불량식품들이 생각났다. 아폴로, 쫀디기 등 색깔도 화려하고 이상한 맛이 나는 것들이었다. 과자가 별로 다양하지도 않았고, 동전 몇 개로 사먹을 수 있는 건 그런 불량식품뿐이었다. 하지만, 불량식품을 사먹었던 이유가 더 있었다. 금지된 영역을 넘어가보는 쾌감을 줬다. 어른들은 그렇게 먹지 말라 혼냈고 훗날 한 대통령이 4대 사회악이라고 까지 지목한 놈들. 아이들이 코 묻은 돈을 들고 가 몰래 탐닉하던 팜므파탈 같은 음식들. 금지된 향과 맛의 추억, 그리고 그것을 합법적으로 들이키고 있는 어른이 된 나. 묘한 쾌감이 일어난다.   


        

허용된 금기의 즐거움     


 싱글몰트에 대해 내 취향을 알고 적당한 것을 고를 수 있게 될 때 쯤 갑자기 가격이 폭등했다. 좋은 것은 다 소문이 나는 법이라 너도나도 싱글몰트를 찾게 되면서 부터이다. 증류소의 공급량도 달리고, 원재료로 사용하는 쉐리캐스크의 공급이 부족해서 원가가 높아졌다고 한다. 유명세를 탄 싱글몰트들은 쳐다보기도 어려운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이미 취향검증을 끝낸 것이 다행이다 싶다. 가성비 좋은 싱글몰트와 불량식품 같은 버번을 쟁여놓고 기분에 따라 먹을 수 있으니까. 어차피 취하려고 마시는 술이면 사실 주종은 큰 의미가 없다. 소주만 마셔도 취하고 발렌타인30을 맥주에 말아먹어도 취하는 건 똑같다. 한국은 취한 사람들에게 관대하다. 성장을 위해 미친 듯이 달리던 시절, 술은 허용된 마약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게라도 어려운 현실을 잊어야 다음 날을 살 수 있었다. 국가에서 허용한 금기가 있어서 고단한 삶을 이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죽도록 마셔야 죽지 않고 일하는 아이러니한 세상이었다. 그렇게 생긴 주당의 역사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취하도록 마셔도 좋지만, 이젠 적당히 마셔도 되는 사회가 되었다. 유행 따라 우아하게 술을 즐기는 것도 좋다. 하지만 자신만의 허용된 금기를 찾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세상에 불만이 생겼을 때 금기를 건드리는 반항심을 소심하게라도 즐겨보시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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