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묵PD May 20. 2024

신비의 돌을 찾아서


현자의 돌 그리고 뮤지컬     


 연금술사들은 현자의 돌을 연성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싸구려 금속을 황금으로 바꿔준다는 환상의 물질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신비의 돌을 만들어 내는 일에 투신했다. 처음에는 황금을 가지기 위한 욕심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성공만 하면 부와 권력이 생길 일, 자신이 알고 있는 온갖 지식과 경험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못 한 돌이었다. 누군가 만들어 냈다거나, 본 적이 있다는 소문만 무성했을 것이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노력으로 무언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성취를 조금씩 겪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엔 황금이나 현자의 돌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잊고 자신의 솥 안에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화학 현상들을 보며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미지의 매력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길 때가 있다. 궁극의 예술작품을 얻기 위해 수백 수천 개의 도자기를 깨는 도공, 풀리지 않은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평생을 숫자와 씨름하는 수학자 같은, 어디선가 들어 본 이야기 속 내용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알 수 없지만 거부하지 못 하는 매력을 지닌 것들에 대한 전설이 있다. 궁극의 예술작품이 있는 것인지, 수학 명제에 답이 있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세이렌의 노래처럼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 한다. 너무도 매력 있고 사랑스럽지만, 닿을 수 없는 답답함에 절망을 느낀다. 오만 정을 떼고 잊으려 해도 어느새 다시 그 앞에 서 있다. 잘 못 들어서면 늪에 빠질 걸 알면서도 걸음을 내딛는다. 내겐 뮤지컬이 그렇다.        


  

20세기 소년과 <오페라의 유령>     


 나의 첫 배낭여행은 뉴욕과 유럽의 미술관을 순례하는 것이었다. 학부시절, 미술사 공부에 빠져 있을 때다. 위대한 걸작이라도 책에서는 쬐깐한 흑백 도판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너무 답답했다. 진짜 작품이 눈앞에서 전달하는 감동을 느껴보고 싶었다. 작정을 하고 세계 유수의 미술관을 돌아다녔다. 메트로폴리탄, MoMA, 루브르, 우피치, 바티칸, 프라도, 내셔널갤러리 같은 메이저 박물관은 빠짐없이 돌았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페르가몬 박물관, 소피아 미술관처럼 중요한 작품이 있는 곳도 빼놓지 않았다. 계획 없이 만났던 휘트니 비엔날레, 닫혀가는 문을 두드려 간신히 보았던 금빛의 클림트 등등 매일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서양미술사를 모두 눈으로 확인하리라 다짐하고 꼼꼼히 계획을 세운 덕이었다. 그렇게 40여일의 시간 동안 말 그대로 발바닥에 땀나도록 돌아다녔다.

 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요즘은 영국박물관이라고 부르는) 대영박물관을 보고 난 뒤였다. 한 달 넘는 강행군에 지쳐 있었다. 이미 많은 작품을 봤고, 고대 유물 중심의 대영박물관이 생각보다 맘에 차지 않아 심드렁한 상태였다. 한여름 태양도 너무 뜨거웠다.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박물관 앞 정원에 퍼질러 앉았다. 드나드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던 그 때,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알록달록한 코오롱스포츠 등산복과 배낭을 멘 내 또래의 여자분이었다. 누가 봐도 한국 사람이었다. 배낭이 너무 커서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저 배낭, 너무 커서 입장 거부될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박물관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터덜터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지친 마음에 호기심이 쏙 올라왔다. 쪼르르 따라붙어서 말을 걸었다. “한국 분이시죠?” “앗,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아셨냐니, 속으로 웃음이 났다. 잠시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분은 영국이 좋아 영국 전역을 다 돌고 마지막으로 런던 일정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재미있는 계획이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했다. 다음날 <오페라의 유령>을 관람할 예정인데, 같이 할 마음이 있냐 물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20세기를 살던 가난한 젊은이에겐 생소한 단어들이었다. 당시는 아직 제대로 된 뮤지컬 작품이 한국에 거의 들어오지 않던 때였다. 말로는 들어봤으나 그런 것들을 볼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만나 싸구려 표를 줄서서 구했다. 그리고 작품을 관람했다. 화려한 무대와 가슴을 때리는 음악이 뮤지컬 무식자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터져버린 시장     


 배낭여행을 다녀온 몇 년 후 한국 무대에 <오페라의 유령> 첫 공연이 올랐다. 대박이 났다. 2001년 공연 현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150억 원이라는 제작비를 들여 7개월 동안 244회를 공연했다. 그 당시 공연은 2~3주 잠깐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오페라의 유령> 수준의 큰 무대로 그렇게 긴 기간 공연을 한 작품은 없었다. 결과는? 유료 관객 24만 명, 매출 192억 원, 추정 수익 20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모두 충격을 받았다. 사실 <오페라의 유령>은 당시 제작여건에서는 공연이 불가능한 작품이었다. 100억이 넘는 규모의 작품을 제작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해외 스태프들이 들어와 노하우를 전수해가며 만들어야 했다. 출연할 배우가 부족해 9차에 걸친 오디션을 치러야 했다. 엄청난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을 만큼 긴 공연기간이 필요했다. 그 위험을 감수하기 어려웠던 스태프들과 극장들은 참여하기를 꺼려했다. 극장의 크기 또한 문제가 됐다. 예술의 전당과 세종문화회관을 제외하고는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그러나 그 두 극장은 공공극장이었기 때문에 대관 승인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원작 제작사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LG아트센터의 구조를 바꾸는 공사까지 했다. 인프라가 부족한 한국 시장에서 도박에 가까운 투자를 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뮤지컬 시장은 그 때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페라의 유령> 초연 이전, 뮤지컬은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 여행을 가서 보고 오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국내 실정과는 거리가 있는 장르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엄청난 상업적 가능성이 증명된 이후 공연계에는 일대 변혁이 나타났다. 대형 뮤지컬의 장기공연이 물밀듯 제작되었다. 대기업, 기관투자자 등 대규모 외부자본이 뮤지컬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뮤지컬을 공연할 수 있는 극장들도 속속 개관됐다. 전체 시장 규모도 급속히 늘어났다. 가무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노래와 함께 화려한 볼거리까지 제공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내로라하는 대극장에는 어김없이 뮤지컬이 공연되고 있다. 세계 유수의 대작들을 언제든지 볼 수 있다. 특별한 날 공연을 보러 갈 때 뮤지컬을 1순위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뮤지컬 시장 규모는 대중음악 콘서트를 넘어서서 공연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가 되었다.       


   

이상한 뮤지컬     


 문화산업계에서 10년간 일했다. 문화예술에 애정이 깊었던 만큼 방송 커리어를 잠시 접고 문화사업에 투신했다. 맡은 업무는 투자가치가 높은 뮤지컬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가장 많은 작품이 제작되고 있고, 가장 활발하게 투자가 이루어지는 분야였다. 런던에서 받은 충격 이후 가끔 뮤지컬을 보긴 했다. 그래도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영역이었다. 모르는 것들을 차근히 배우며 ‘언젠가는 익숙하게 잘 할 수 있겠지’ 하며 열정을 불태웠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극장을 드나들었다. 배우의 연기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오페라글라스도 장만했다. 화려한 무대, 열정적인 배우, 관객의 높은 호응도까지 한국 뮤지컬은 아주 많이 발전해 있었다. 20세기 소년이 런던에서 받았던 충격이 한국 무대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볼수록 매력이 느껴졌다. 한국 공연시장의 미래가 뮤지컬에 달려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은 세계적인 경쟁력이 부족한 한국의 공연콘텐츠에 뮤지컬이라는 현자의 돌을 던져 황금으로 연성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였다. 그 열정을 공부로 이어갔다. 현장에서 얻은 값진 경험을 학문의 틀에 정리해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고 싶었다. 뮤지컬을 연구해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상하게도 뮤지컬을 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쑥쑥 성장해서 세상을 뒤집을 것 같았던 뮤지컬이 어느 순간 유리 천정에 부딪힌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봐도 쉽게 답이 안 나왔다. 한국 뮤지컬은 특이하다. 누구나 관람하기를 원하는 장르이다. 2023년 기준으로 뮤지컬 티켓이 733만장 팔렸다고 한다. 일곱 명 중 한 명은 관람을 했단 뜻이다. 그래도 다수 대중에게 뮤지컬은 마이너한 콘텐츠로 인식된다. 아무리 뮤지컬에서 잘 나가는 배우라 해도 손에 꼽을 몇 명을 제외하고는 ‘쟤 누구니?’ 소릴 듣는다. 지금 당장 뮤지컬배우 다섯 명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시장 규모는 최대라는데 영화처럼 꾸준히 찾아본다는 사람을 주위에서 찾기는 어렵다. 미디어나 영상을 주로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뮤지컬은 가끔 계기가 있으면 보는 콘텐츠이다. 뮤지컬이 화려하고 고급스럽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인지도 측면에서는 마이너하다. 이상하지 않은가? 가장 잘 나가는데 마이너라니, 너무 모순되지 않은가?        


   

촌스러운 브로드웨이     


 브로드웨이에 가보니 혼란스러움이 더 커졌다. 업무 차 한 달 여간 브로드웨이에 지내며 공연을 봤다. ‘뮤지컬=브로드웨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브로드웨이 화제작’이라는 말이 홍보문구로 쓰이는, 작품의 질을 판별하는 척도로 생각된다. 현자의 돌을 만들어 낼 노하우를 얻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기대를 안고 뉴욕 시내에 들어갔다. 국내에 이미 소개된 작품들을 제외하고 인기가 있다는 뮤지컬들을 중점적으로 섭렵했다. 볼수록 정수리 위에 물음표가 붙어서 커지는 느낌이었다. ‘이게 인기작이라고?’ 물론 내 편협한 취향에 맞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영어가 짧아 노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 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은 작품의 객석이 꽉 차 있었다. 작품의 완성도는 높았다. 배우들의 연기와 에너지가 남달랐다. 꽉 짜여진 연출 동선도 연륜이 느껴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브로드웨이 쇼 뮤지컬의 화려한 무대를 기대했던 내겐 너무도 평범한 연극 같은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노래와 스토리도 한국 사람의 정서와는 너무도 먼 미국인들의 것으로 채워져 있었다. 업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내 눈엔 오히려 악극에 가까운 느낌이 드는 작품이 많았다. 좋게 말하면 전통적인 분위기였지만, 한국 뮤지컬의 화려한 무대에 익숙한 나에게는 촌스럽게 느껴졌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작품들을 떠올려 보자. 어떤 것이 생각나는가? <맘마미아!>, <캣츠>,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안타깝게도 이 작품들은 모두 영국에서 만든 것이다. <레베카>, <엘리자벳>... 오스트리아 뮤지컬이다. <시카고>, <위키드> 정도가 전통적인 브로드웨이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브로드웨이 이미지와 실제 작품은 차이가 있다. 이런 현실은 관객들의 반응에서 잘 드러난다. 내가 브로드웨이에서 직접 관람했던 몇 작품들이 한국에 들어와 공연되었다. 내가 현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관객의 호응이 별로 없었다. 토니상을 받고 미국 현지에서 매진을 시킨 잘 나가는 공연들이 한국에서 줄줄이 고배를 마시는 것을 봐야 했다. 전통적인 브로드웨이 작품들은 한국에서 성공한 경우가 오히려 적다. 브로드웨이 원작을 그대로 공연하는 작품보다 <지킬 앤 하이드>처럼 한국 관객의 정서에 맞게 다시 만든 작품이 더 인기가 있다. 모두 브로드웨이를 동경하는데 브로드웨이 정통 뮤지컬은 홀대 받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찾아서     


 요즘도 가끔 뮤지컬을 보러 극장에 간다. 10년간 몸담았던 업계를 떠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작품을 보러 간다. 하지만, 극장에 들어가 공연을 보는 동안 다시 궁금증이 일어난다. 한국에서 뮤지컬은 무엇이란 말인가? 외출에서 돌아와 다시 솥 앞에 선 연금술사처럼 마음이 설렌다. 분명 저 질문에 답할 수 있으면 현자의 돌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머리가 복잡해진다. 예전에 이 궁금증을 해결해보려고 책, 논문, 해외 문헌 등을 뒤져봤지만 속 시원하게 답을 주는 것은 없었다. 한국 뮤지컬의 특이한 현상을 파악해 보고 싶었지만, 이곳의 특성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꿈의 무대 브로드웨이’를 찬양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에서 예술성 높은 연극 외에는 모두 딴따라 취급을 받던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대중 공연을 진지하게 연구한 자료가 없을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뮤지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밟아 온 자취를 살펴봐야 한다. 뮤지컬 업무에서 떠나 있지만, 난 아직도 연구를 놓지 못 하고 있다. 내가 황금을 만들어 낼 비밀을 밝힐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연금술사들도 현자의 돌을 만들어 내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들이 수많은 화학의 비밀을 밝혀낸 것처럼 내 연구도 한국 뮤지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결과가 나왔으면 한다. 기대하시라, 조악하더라도 한국 뮤지컬의 비밀을 밝힐 비급(祕笈)을 조만간 공개할 것이니.

이전 05화 인간관계의 기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