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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PD Jun 03. 2024

Man vs Wild


잡초 같은 생명력     


 ‘잡초 같은 생명력’이란 말은 그저 클리셰라고 생각했다. 말을 들어도 별다른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풀 따위가 뭐 어떻다고 생명력 운운하는지 별 관심이 없었다. 구체적인 잡초의 모습이 개입되지 않아도 쓰러지지 않는 끈질긴 모양이라는 추상적인 의미가 바로 전달된다. 하지만, 주택에 살아본 사람은 안다. 텃밭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잘 알 것이다. 흙이 있는 공간을 손바닥만큼만 가지고 있어도 다 알게 된다. 저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흙이 있는 모든 곳엔 잡초가 난다. 가끔 보일 때 뽑아내면 될 정도로만 나지 않는다. 그냥 두면 모든 곳을 점령할 만큼 난다. 비가 꾸준히 오고 볕이 좋은 여름엔 뽑아내고 뒤돌아서서 쳐다보면 다른 것이 나 있는 느낌이다. 며칠만 관리를 안 해도 꽃밭, 잔디밭, 텃밭 할 것 없이 잡초로 도배된다. 계단 구석, 대문 아래 틈은 물론 담벼락 벽돌 사이까지 먼지가 조금이라도 모인 곳엔 여지없이 잡초가 난다. 그 종류도 다양하게 온갖 풀이 난다. 씨앗이 날아 온 건지 흘러 온 건지 누가 물고 온 건지 알 수도 없다.

 처음엔 그 놀라운 생명력에 경외감이 들었다. 틈새에서 돋아나 꽃까지 피워낸 풀의 힘은 얼마만큼 강한 것인가. 발끝만 디딜 수 있는 땅 위에 서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사는 삶이란 얼마나 고된 것일까. 인간이라면 의지력이 금방 고갈되고 말 일이다. 간신히 버티다가 발전은 기대하지도 못 하고 스스로 사라질 것이다. 잡초는 그렇지 않다. 보이지도 않는 손톱만큼의 흙에서 싹을 틔웠어도 꽃을 피우고 씨를 퍼뜨린다. 방사형으로 퍼지는 것, 허리춤까지 쑤욱 올라오는 것, 다글다글 무작위로 번지는 것 등 자라는 모양도 다양하다. 꽃도 노랑, 보라, 하양 등 작지만 예쁘게 핀다. 이름도 모르는 풀들이 저렇게 생명을 키워내고, 씨를 퍼뜨려 더 많은 가족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런 감상은 눈앞에 펼쳐지는 잡초밭을 보는 순간 사라진다. 시골집 마당이 전부 괜히 ‘공구리’로 덮여 있는 게 아니다. 흙을 접하고 사는 모든 사람에겐 낭만의 대척점에 서있는 현실이다.          



잔디마당의 꿈     


 단독주택에 2년간 전세로 들어갔던 적이 있다. 내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 수 있는 인간인지 시험해보기 위해서였다. 집주인 없이 오랜 기간 세입자가 살아 온 곳이었다. 집을 보러 갔을 때는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 즈음이었다. 오래된 단층 슬라브집이었다. 마당이 꽤 넓어 시원해보였다. 잔디가 있는 마당을 가지고 싶었지만 아무 것도 없는 흙바닥인 것이 아쉬웠다. 그러면 어떠 하리, 심으면 되는데. 4월이 시작될 때 이사 들어갔다. 집주인과 얘길 해서 얼마간 잔디 떼를 구해 바닥에 입혔다. 마대로 몇 개를 가져왔는데 어림도 없는 양이었다. 원하는 넓이의 반을 간신히 채울 수 있었다. 흙이 드러난 쪽이 아쉬워 잔디 씨를 뿌리기로 했다. 씨를 사다가 꼼꼼히 뿌리고 정성스레 물을 줬다. 며칠이 지나자 듬성듬성 싹이 나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이게 되는구나. 하지만, 이게 초짜의 헛꿈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싹은 날이 갈수록 이상한 모양이 되기 시작했다. 옆에 떼로 붙인 잔디에는 노랗게 마른 잎 사이사이에서 조그맣게 싹이 났다. 그런데 씨로 뿌린 자리엔 훨씬 굵직한 잎이 더 넓은 범위로 나는 것이 아닌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동안 또 물을 정성스레 주며 지켜보았다. ‘잔디 씨에서 났어야 하는’ 그 식물은 시간이 갈수록 작은 벼 모양이 되어갔다. 아차 싶었다. 이게 아니구나. 책과 인터넷을 뒤져 그 정체를 찾아봤다. ‘왕바랭이’라는 놈이었다. 잔디보다 훨씬 억센 잎과 줄기, 커다란 씨앗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다. 살기 위해서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끈질긴 녀석들이었다. 듬성듬성 나는 모든 것들은 다 왕바랭이 뿐이었다. 속았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원망을 담아 이를 갈며 하나하나 다 뽑아냈다. 씨를 뿌린 자리에서 잔디는 끝까지 나지 않았다. 결국 남은 자리에도 떼를 사다 입혀야 했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잔디가 자리를 잡고 내 생각보다 훨씬 짙푸른 마당이 생겨 행복했다. 하지만 잡초 상황은 훨씬 심각했다. 잔디 사이사이에도 저 왕바랭이를 위시한 수많은 잡초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거실에서 흐뭇하게 잔디를 바라보다가도 시선을 잡아끄는 곳이 있다. 잡초가 자라는 게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사실 크게 자라기 전에는 잔디와 구별하기도 어려운 모습이다. 쉽게 구별이 될 때까지 기다리면 잔디밭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일정한 길이도 아닌 모양이 되고, 깨끗한 초록색을 즐기지 못 하게 된다. 또, 이 잡초들이 번져 일정한 세력을 이루게 두면 안 된다. 세력을 이룬 자리에는 잔디가 밀려나 자라지 못 한다. 그때 잡초를 뽑아내면 땜통처럼 누런 흙이 드러난다. 틈 날 때마다 잡초를 뽑아야 했다. 잠시만 일해야지 하고 시작하지만 계속 눈에 보이는 것이 있어서 멈출 수가 없었다. 뽑아낸 잡초가 산이 될 때까지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하루 이틀 지나면 또 그만큼이 자라 있다. 다시 달려들어 쪼그리고 앉아 뽑기 시작한다. 이후 또 한 번의 여름을 지나는 동안 그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어설픈 환경론자의 딜레마     


 <Man vs Wild>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베어 그릴스라는 출연자가 생존하기 힘든 밀림, 무인도, 화산 지대 같은 곳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리얼리티 방송이다. 어렵게 불을 붙이고 벌레를 피하고 비바람을 피할 공간을 만드는 등 온갖 고생을 하는 것을 보여준다. 난 이런 거창한 프로그램보다 더 절실하게 잡초를 대했다. 쉬지 않고 자연의 힘을 이겨내기 위해 애썼다. 베어 그릴스는 그 상황만 빠져 나오면 되지만, 내겐 끝나지 않을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싸움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인간이 자연을 이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2년간의 긴 시험을 치르면서 내 힘만으로는 잡초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제초제를 사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뼛속 깊은 환경주의자는 아니지만 사실 농약은 쓰지 않았으면 했다. 독이 뿌려진 환경에서 나와 가족들이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잡초 앞에서는 이런 노력이 통하지 않았다. 손수 뽑는 것엔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다. 제초작업 외에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아 체력과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자연의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환경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이 있다. 제초제 없이는 골프장의 푸른 잔디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환경으로 잡초 없이 일정한 상태의 잔디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손톱만큼만 흙이 보여도 잡초가 생기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드넓은 18홀 골프장에 잡초 하나 없이 깨끗한 잔디만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제초제를 들이 부었다는 의미이다. 코스 안의 워터해저드에는 농약이 얼마나 들어있을까 상상하기도 싫었다.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은 농약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침묵의 봄(The Silent Spring)’이 오게 된다고 말했다. 농약의 독성은 벌레에 그치지 않는다. 그걸 먹은 새들도 독성이 쌓여 죽게 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어 더 이상 새가 울지 않는 봄이 찾아 올 것이라는 경고이다. 그 재앙이 멀지 않다는 신호가 자주 보인다. 지구 온난화로 기후 변화가 생긴 것을 일상으로 느끼는 지경에 와 있다. 지금의 생태계는 지구가 탄생해서 수십억 년 동안 만들어진 것이다. 아주 조금씩 균형을 맞춰가며 완성된 세계다. 자연스런 순환과 어긋나는 것들은 긴 시간을 통해 조정되어 왔다.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완성된 것이 생태계다. 오만한 인간이 그 균형을 깨트리고 있다. 나도 거기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책감이 밀려왔다.   


         

잡초에게 배운다     


 잡초 덕분에 꽤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무엇보다, 유기농법으로 작물을 키우는 분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난 손바닥만 한 땅덩이 하나를 두고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셈이다. 내가 원하는 식물이 잘 자라서 내 눈에 좋아 보이게만 하면 된다. 그런데도 화학의 도움 없이 그 경지에 다다를 수 없었다. 유기농 농부들은 인위적 화합물 없이 소비자들이 돈을 주고 살만한 결과물들을 만들어낸다. 유기농 인증은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합성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 등을 쓰지 않는 조건을 3년 이상 지속해야 한다. 옆 농가에서 쓰는 농약이 날아 들어와서 유기농 인증이 취소되었다는 사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까다로운 조건을 맞추고 참아내야 한다. 농작물들은 영양분이 많아 벌레가 훨씬 더 많이 생기는 법이다. 잡초가 많이 난 곳에서는 토양의 영양분을 빼앗겨 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벌레가 먹은 과일, 잘 자라지 않은 채소를 사지 않는다. 내 경험을 되돌아보니 어디서 생기는지도 모르는 것들을 화학적 방제 없이 물리치고 작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유기농 제품이 괜히 비싼 것은 아니었다.

 더 큰 배움은 몸을 써서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깨달은 것이다. 잡초를 뽑다 보면 허리가 아프고 온 몸에 땀이 난다. 일이십 분이면 되겠지 시작했는데 한 시간이 훌쩍 가는 건 일도 아니다. 신기한건 힘들고 짜증나야 할 텐데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잔디와 잡초를 구분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풀을 뽑을 때 뿌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손끝에 세심하게 힘을 줘야 한다. 조심스레 한 뿌리 뽑고 반 발자국 나가고, 다시 한 뿌리 뽑고... 이렇게 단순한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쓸 데 없는 생각들이 사라진다. 의도치 않아도 완벽한 몰입의 순간을 긴 시간 동안 지속하게 되는 셈이다. 한참 일을 하다 뒤를 돌아보면 딱 일을 한만큼 깨끗해져 있다. 오래 살펴보지 않아도 된다. 한눈에 알 수 있다. 내가 손수 풀을 뽑은 자리는 바로 티가 난다. 내가 들인 노동의 결과물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일은 흔하지 않다. 몸으로 하는 일들은 노력한 만큼 바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잡념이 사라지고 보람을 느끼는 단순노동의 위대한 가치를 체득하는 순간이었다.           



자연에 굴복하며 사는 것


 주택을 사서 정착한 지금, 난 농약의 힘에 모든 것을 기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꽃이나 나무가 자라는 곳은 나무껍질을 부순 바크를 깔았다. 노출된 토양을 덮어서 관리하는 것을 멀칭(mulching)이라고 한다. 멀칭을 하면 잡초의 씨가 흙과 만나기 어려워 풀이 적어지는 효과가 있다. 꽃밭을 검은 비닐로 덮을 수는 없으니 나무껍질을 꼼꼼히 뿌렸다. 나름 보기도 좋고 풀도 훨씬 덜 난다. 잔디에는 겨울이 끝날 때 발아를 억제시키는 약을 뿌린다. 이렇게 해도 나는 놈들은 원래 하던 대로 직접 뽑는 것으로 타협했다. 살충제도 친환경 농자재를 골라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 애초에 자연을 이길 수는 없으니, 자연의 힘을 인정하고 적절한 선을 찾기로 한 것이다.

 봄이 시작되어 파릇한 생명들이 조금씩 고개를 들면 그 빛깔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귀엽게 나온 싹들이 자라 꽃을 피우면 일 년 중 가장 화려한 파티가 펼쳐진다. 눈이 소복히 쌓여 적막한 밤을 쳐다보는 것도 좋다. 요즘 세상에 사시사철 변하는 모습을 보며 사는 것은 얼마나 큰 사치인가. 도시에 살다 보면 인간이 자연을 다 정복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늘 똑같은 모습의 빌딩 속, 항상 엇비슷한 환경을 제공하는 실내공간에 있다 보면 자연은 멀리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인간은 아직도 커다란 자연 안의 작은 존재일 뿐이다. 인간과 똑같이 돌 틈에서 난 잡초에도 생명력을 주는 것이 자연이다. 지금 이 세상에 살아남은 생명들은 생태계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균형에 맞게 진화해 왔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은 풀을 뽑고 열매를 거두는 단순한 노동에서 즐거움을 가지도록 진화해왔을지도 모른다. 풀을 뽑아보면 안다. 인간은 이러라고 만들어진 것 아닌가 싶은 즐거움이 그 안에 있다. 요즘 마음을 비우기 위해 명상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난 권한다. 자연을 보며 일을 해보라고. 내가 자연에 속한 존재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생각이 맑아지는 희열을 맛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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