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수영을 책으로 배우냐?” 누나가 한 말이다. 제대 후 복학할 때까지 시간이 남아 집근처 수영장을 다녔다. 나는 물을 무서워한다. 물 근처에 잘 가지 않는다. 물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는 것도 싫어라 한다. 당연히 물에서 노는 것을 배우지 못 했다. 이러다 물에 빠지면 아무 것도 못 하고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공포감도 극복할 겸 생존을 위해 수영을 배우기로 한 것이다. 처음 수영장에 가서 물장구치는 법을 배운 후 패드를 잡고 앞으로 가는 연습을 했다. 거기까지는 웬만큼 괜찮았다. 며칠이 지나 본격적으로 자유형 강습이 시작되었다. 물이 무서웠던 나는 몸의 긴장이 잘 풀어지지 않았다. 자꾸 몸이 물에 가라앉았다. 일단 몸이 뜨질 않으니 자세도 호흡도 잡히지 않았다. 배우는 속도가 나지 않았다. 답답했다. 그래서? 책을 샀다. 수영의 기초가 설명된 책. 그 책을 들고 집에 돌아오자 누나가 어이없어 했다. 운동을 책으로 배우는 사람이 여기 있다고.
아둔하게 태어나서인지 맥락을 이해하지 못 하면 잘 기억을 못 한다. 남들은 쉽게 외우는 단순한 것들도 난 이해하지 못 하면 금방 잊어버린다. 그것이 무슨 뜻이고, 어떤 맥락에 들어 있는지 체계를 알고 나서야 외워진다. 예를 들어, 치아바타 빵을 떠올려보자. 다른 사람들은 쉽게 빵 모양과 이름을 기억한다. 난 그게 잘 안 된다. 밀가루, 효모, 물, 소금만 사용해서 식사용 빵으로 흰색이 돌게 많이 굽지 않은 것이란 사실을 파악한다. 길다랗고 넓적해서 이탈리아어로 슬리퍼를 뜻한다는 것을 찾아보고 모양과 이름을 기억한다. 딱딱한 프랑스 바게트와 달리 더 긴 숙성시간을 통해 쫄깃한 식감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이태리의 특성인가 생각한다. 올리브나 올리브유, 발사믹 식초와 잘 어울리는 것도 이탈리아의 환경, 식습관과 관계가 있으리라 추측한다. 이정도 정보의 체계가 갖춰져야 비로소 치아바타가 내 머리에 입력이 된다. 보기만 하면 다 기억한다는 사진 기억력과는 한참 거리가 먼 뇌구조다. 이렇다 보니 뭔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책을 보고 나를 납득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수영도 그랬다. 뭐가 잘 안 되는데, 내가 이해를 못 한 것이 있는 건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몸으로 안 되는 문제는 책을 읽는다고 해결되지는 않았다.
사전에 나오지 않는 정보들
궁금한 것이 많은 편이다. 기억하는 방법이 저렇다 보니 사소하더라도 새로운 것들이 있으면 그게 무엇인지 찾아보게 된다. 지금이야 세상이 좋아져서 모르는 것은 바로바로 알아볼 수 있다. 나보다 똑똑한 네이버, 집단지성이 뭉쳐 있는 위키, 전 세계의 정보를 긁어모아주는 구글까지 물어보면 척척 답을 준다. 하지만 예전엔 궁금한 것이 생기면 답답한 마음을 꽤 오래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걸 알 만한 사람을 만나 묻거나 책을 찾아보고서야 해결이 가능했다. 어릴 때는 이희승 교수가 만든 <국어대사전>을 끼고 살았다. 아주 작은 글씨로 촘촘히 인쇄된 반투명 사전 용지들이 수천페이지 모인, 아주 큰 책이었다. 책이 흔하지 않던 시절, 이 <국어대사전>은 나에게 구글보다 더 큰 지식의 보고였다. 궁금한 개념이 생기면 일단 이 사전을 펴본다. 단어의 설명을 꼼꼼히 읽어본다. 하지만 그 설명에서도 모르는 단어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면 설명 속 그 단어를 다시 찾아본다. 뭔가 이해가 될 때까지 페이지를 넘겨보는 무한 루프에 몰입했었다. 우연히 신기한 단어가 보이면 책을 덮지 못 하고 거기서 다시 시작한다. 단어의 뜻에서 다시 단어를 찾으며 한참을 책 속에서 돌아다니는 일을 반복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지적인 유희가 재미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새로 생긴 개념들, 속어나 유행어 같은 것들은 사전으로 알 수 없었다. 사전에도 없고 어른들에게도 묻기 어려운 궁금증들은 늘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니 궁금증을 맘대로 파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내가 공부하고 싶으면 전공이 아니어도 배울 수 있었다. 마취하는 방법이 너무 궁금했던 선배 하나는 의과대학에서 강의하는 ‘마취학 개론’을 수강하기도 했다. 세상의 신기한 것들을 공부하고 싶다고 ‘신비주의’ 수업을 듣는 친구도 있었다. 의대로 갔던 선배는 가르치는 전문용어를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며 서너 번 들어가더니 수강을 취소했다. 친구는 어려운 철학이야기로 가득했던 신비주의 수업에서 길을 잃고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야 했다. 노느라 바빴던 대학생활이었다. 학점은 뒷전이고 저마다 관심 가는 것들에 몰입하며 살았던 호시절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영상 공부에 빠져들었다. 한국어로 된 영상 관련 서적이 몇 권 되지 않았다. 그 중 괜찮다는 책을 정해 같이 읽었다. 책 내용과 관련된 거장의 영화라며 몇 번의 복사 과정을 거쳐 화질이 떨어진 VHS 비디오를 보았다. 사실 스터디는 핑계였고 이어지는 술자리가 메인이벤트로 벌어지곤 했다. 술 마시느라 책을 읽는 진도는 더디기만 했다. 당시 샀던 책 몇 권은 보물처럼 내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지금 다시 펴보면 조악한 편집과 인쇄, 세련되지 못 한 번역이 한눈에 띈다. 그래도, 그때 내게 길잡이가 되어주고 세계를 넓혀 준 고마운 책들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속 이야기
서울 시내 산책을 좋아한다. 특히 한양 도성 사대문 안팎을 자주 걷는다. 서울은 참 재미있는 도시이다. 수백 년 전 유서 깊은 역사와 세계에서 가장 핫한 유행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유명한 부암동 치킨집을 뒤로 하고 백석동천으로 들어가면 옛 한량들이 풍류를 즐기던 별서 터를 만나게 된다. 세검정에서 홍제천을 따라 내려오면 홍지문을 지나 호분으로 하얗게 칠해진 고려시대 마애불을 만나게 된다. 온 세상 관광객들이 모인 광화문에서 출발해 경복궁을 지나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면 초현대 메가시티 서울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걷는 것만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수백 년 세월을 경험하는 신기한 여행을 한다.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격랑의 20세기를 지나 현대의 서울까지 오고간다. 이 모든 지점이 내겐 탐구 대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인터넷 검색으로 간단한 정보를 찾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웹 검색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궁금증을 만나게 된다. 더 깊이 있는 내용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정리된 지식이 필요해진다. 궁금한 내용에 대한 책을 찾기 시작한다. 한양 성곽에 관한 책, 서울 시내 문화재에 관련된 책, 구한말 경성의 문화에 관한 책 등 관련된 서적을 야금야금 사 모은다. 한양의 풍경을 알 수 있는 실경산수에 관한 책, 고지도를 통해 현대 서울 구조를 서술한 책도 빼놓지 않는다. 책을 읽다가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이미 사놓았던 궁궐 관련 책, 한국의 전통 도상에 관한 책, 불교 건축의 특징에 관한 책도 꺼내게 된다.
늘 이런 식이다.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생기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다닌다. 일상에서 만난 작은 계기에서 시작되는 일이다. 인터넷의 조각정보를 찾는다. 호기심이 더 발동되면 더 다양한 검색어로 궁금증을 해소한다. 그렇게 일단락되었던 것이 다른 궁금증과 만나는 순간이 온다. 각기 다른 영역인 줄 알았던 정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체계적으로 서술된 책을 찾게 된다. 책 한 권을 읽어서 부족하거나, 반대로 너무 재미가 있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면 관련된 책들을 여러 권 산다. 이 책 모두를 완전히 이해하고 기억하진 못 한다. 논문 쓰듯 파고드는 독서가 아니다. 백 가지를 읽어 핵심이 되는 몇 가지 정도만 머리에 남는 정도이다. 그래도 괜찮다. 읽는 동안 깨달음으로 무릎을 치게 되는 순간을 즐기게 된다.
죄책감이 없는 소비
이렇다 보니 책을 많이 사게 된다. 처음엔 한 권 씩 샀다. 이어서 다시 사고 또 사는 것을 반복했다. 번거롭기만 했다. 이젠 어떤 주제가 되었든 특정 작가가 되었든 관심이 쏠리면 몇 권씩 한꺼번에 산다. 어떤 책이 더 좋을지 모르니 먼저 비교를 하며 읽는다. 거기서 내가 찾는 방향을 파악한다. 그리고 그 방향에 맞는 책을 다시 더 산다. 이렇게 한두 번만 거치면 금방 열 댓 권의 책이 쌓인다. 책이 많아지면 뿌듯해진다. 책을 읽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교육을 받아서일지 모르겠다. 필요한 책을 맘껏 사보지 못 했던 과거의 결핍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책을 사서 쟁이면 뿌듯한 마음이 든다.
다른 것들은 많이 사면 과소비라는 죄책감이 들게 마련이다. 식탐이 있을 때는 맛있어 보이는 것들을 쓸어 담게 된다. 살 때 잠깐 만족하지만, 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려야 하는 것이 쌓이면 후회하게 된다. 예쁜 옷에 꽂혔을 때는 같은 디자인을 색깔별로 구매하기도 한다. 처음 입을 때는 행복하다. 그렇게 한두 해 지나서 옷장이 터져나갈 때가 되면 한 번 입고 잘 모셔져 있는 옷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미쳤지 가슴을 쳐도 버리기는 아깝고 공간은 부족해 답답해진다. 소소한 생필품이 모여 있는 다이소에 가면 금방이라도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이 보여 사게 된다. 마트 매대에 따로 빼놓은 원 플러스 원 상품은 지금 사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것 같다. TV 채널을 돌리다 특가로 판매하는 물건에 넋이 빠져 구매를 한다. 그렇게 산 것들은 대개 구석에 박혀 먼지가 쌓여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 이런 경험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마케팅의 시대,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이 필요한 것으로 포장되어 팔린다.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쓰고 난 후 느끼는 죄책감이 소소히 쌓인다. 하지만, 책에는 그런 마음이 잘 생기지 않는다. 지적 허영심이 뼛속 깊숙이 박혀있나 보다.
책은 무겁다
결국 넘쳤다. 아무리 죄책감 없이 구매한다 해도 쌓아놓을 수 있는 공간에는 한계가 있다. 키 높이 정도의 4단짜리 합판 책장에서 시작했다. 책장이 하나 더 생기고 또 다시 생겼다. 아슬아슬 넘치려 할 때 이사를 갔다. 눈물을 머금고 수백 권을 정리했다. 집을 사서 방 하나를 서재로 하고 벽면 전체에 붙박이로 서가를 짜 넣었다. 저 정도면 충분하겠지. 뿌듯한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얼마 버티지 못 했다. 세로로 꽂힌 책 위에 가로로 또 책이 얹히기 시작했다. 포장을 막 뜯은 책들은 책상 위에 쌓인다. 어쩔 수 없었다. 다시 눈물을 머금고 책장을 정리한다. 수십 권을 빼낸다. 중고서점에 들고 가기 위해 포장한다. 들어 보면 돌덩이처럼 무겁다. 늘 그렇다. 한 권 씩 살 땐 모르지만, 책은 참 무겁다. 삼사십 권 묶으면 허리가 끊어지고 팔이 빠질 만큼이 된다. 책마다 내게 준 영감이 있는데 아쉬운 마음이 더 무겁다. 책의 물리적인 무게에 정서적인 무거움이 더해져 드는 몸이 더 피곤해진다.
남들은 E북을 보라거나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으라고 한다. 하지만 난 그런 것이 잘 안 된다. 전자책이나 모니터로 보는 글에는 집중력의 한계가 생긴다. 손으로 차분히 넘기며 보는 습관에서 빠져나오지 못 한 탓이다. 학교에 다닐 때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긴 했다. 하지만 내가 원할 때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책을 아끼는 편이라서 밑줄을 긋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내 책이어야 간지를 껴놓거나 포스트잇을 붙여 중요한 부분을 표시해 놓을 수 있다. 물론 십년이 넘도록 다시 펴지 않는 책도 많다. 중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보고 전체를 읽지 않은 책도 있다. 그렇다고 그 책이 가치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책장이 넘쳐 정리할 때가 되면 아주 오랫동안 책장을 관찰하게 된다. 이 책은 저런 의미이고, 저 책은 이래서 산 것인데... 고민을 거듭해서 빼낸다. 다시 말하지만, 책 무게에 내 마음이 더해져 아주 무겁게 정리한다.
고칠 수 없는 고질병
이 버릇은 못 고칠 것 같다. 아마도 책은 지금처럼 계속 살 것이다. 스펀지처럼 지식을 쉽게 빨아들이던 젊은 시절, 책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다. 공부는 입시에 쓰는 것인 줄만 알 때는 책도 싫었다. 대학에 들어가 고교 때까지 했던 공부라는 것을 놓아버리고 놀 듯 읽은 책들은 조금씩 깨달음을 줬다. 책에 담긴 글 전체가 의미 있긴 어렵다. 한 문장, 한 단어라도 좋다. 내가 몰랐던 정보, 세상을 만나는 감성, 지식을 쌓는 방법에 영감을 주는 것이 있으면 그만이다. 그걸로 그 한 권은 가치가 있다. 그 짧은 단어들이 모여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어 줬을 것이다. 아둔한 내가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이 책이다. 인간이 두 발로 닿을 수 있는 좁은 공간을 넘어 무한히 깊은 인간의 마음부터 넓게 펼쳐진 우주 저 멀리까지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역시 책이다. 앞으로도 미련하게 책을 모으고 빽빽하게 쌓아놓을 것이다. 책만큼 좋은 것이 없으니, 무겁게 지고 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