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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PD May 13. 2024

인간관계의 기술


용한 점쟁이     


 꽤 용한 점쟁이다. 주 종목은 타로카드. 누구나 해결이 안 되는 문제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법이다. 이런 문제로 답답한 주위사람들이 나를 찾아온다. 카드를 꺼내 준비를 하고 질문을 받는다. 타로를 섞으며 문제 해결에 적합한 배열방식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카드를 펼쳐 고르게 한다. 두근거리는 잠깐의 시간이 흐른다. 한 장씩 카드를 뒤집으며 점괘를 낸다. ‘아 그렇군요!’라는 반응이 나올 때 용한 점쟁이의 희열이 일어난다. 두세 번 더 관련된 질문을 받고 카드를 뽑아 점괘를 추가한다. 답답한 마음을 풀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찾을 때까지 한다. 카드를 읽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삼십 분이 훌쩍 지나간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헤어진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그 날 점괘가 참 잘 맞았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묘한 성취감이 생긴다.

 용하다는 소문이 좀 나서 아예 카드를 보는 술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네댓 명이 모여 일상 토크로 분위기를 푼다. 어느 정도 예열이 됐다 싶으면 판을 편다. 가장 고민이 많은 사람부터 차례로 점을 봐준다. 카드를 섞고 고르고 읽는 과정이 진행될 때마다 모든 사람이 호들갑을 떤다. ‘잘 나와야 할텐데’하며 격려를 하기도 하고, ‘아 저건 안 좋아 보인다’하며 훈수가 나오기도 한다. 점괘란 것이 좋게 말하면 신비하고, 나쁘게 말하면 애매한 면이 있다. 모여서 점을 치면 알쏭달쏭한 점괘가 무엇을 뜻하는지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운 자리가 이어진다. 아, 물론 아무리 점을 쳐도 상담료는 공짜다.    


       

I와 사이     


 MBTI로 치면 I성향을 가지고 있다. 아무에게나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그런 사람 아니다. 시간을 두고 사람을 본 후 친분을 맺는 것을 선호한다. 앞에 나서서 주목을 받는 것보다 한발 뒤에서 상황을 주시하는 것을 좋아한다. 왁자지껄한 다수보다 소수정예의 모임을 지향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능력이 부러울 때가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을 던지고 순식간에 친구가 되는 그런 사람들이 신기했다. 난 혼자 여행을 다니면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루에 네 마디 정도 할까. ‘차표 한 장 주세요.’, ‘국밥 한 그릇요.’ 정도 외엔 말을 할 일이 없다. 여행을 가서 친구를 사귀었다는 둥, 게스트하우스에서 파티를 했다는 둥 하는 이야기들은 내게 동화 속에 나오는 판타지나 다름없다. 내 성향이 답답하다거나 부족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사진을 찍고 생각을 하고 천천히 걷는 것으로 충분히 여행을 즐긴다. 하지만 나는 평생 살아볼 일 없는, 저런 E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 궁금하다. 특히 몸속에 에너지가 많던 젊은 시절엔 외향형 친구들을 닮고 싶을 때가 많았다. 일이든 사적인 자리든 여럿이 만날 일이 많기도 했다. 즐겁자고 모인 자리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내 모습보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훨씬 좋아 보였다. 

 타고난 성격은 못 바꾸는 법이다. 내가 외향형 인간이 되려고 노력한다는 건 호박에 줄긋는 일과 매한가지다. 물론, 학습과 경험이 쌓이면 겉모습은 조금 바뀔 수도 있다. 내 친구들에게 ‘난 I야’하고 얘기해줬더니 갸우뚱 하는 사람이 절반은 되었다. ‘니가 무슨 I냐, E아니냐’는 반응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학습된 E’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한 것을 취재해야 하는 것이 일이었다. 본디 성향과 관계없이 그 자리를 주도해야 했다. 그런 경험이 십 수 년 쌓이니 호박에 줄이 그어진 것이다. 본성이 바뀐 것은 아닌지라 ‘학습된 E’ 성향은 필요한 경우에만 발휘된다. 일상 속 사적인 자리에서는 여전히 I로 산다. 말을 해야 하면 곧잘 떠들지만, 굳이 내가 먼저 말을 시작하지 않는다. 어릴 땐 이런 성향이 더 강했었다. 사람과 쉽게 친해지고 싶었던 샤이 보이의 외형을 깨기 위해서 뭔가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을 찾아라     


 처음 만난 관계에서 쉽게 아이스브레이킹을 할 방법이 뭔지 고민해보았다. 여러 시답지 않은 아이디어들을 시도해봤다. 간단한 마술, 저글링 등등... 되도 않는 것으로 판명, 바로 접었다. 그러던 중 이거다 싶어 본격적으로 공부한 것이 손금이었다.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았다. 누구나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한다. 내가 신내림을 받을 수는 없다. 책으로 배우는 건 잘 하는 편이니까 종목을 정해 공부하기로 했다. 손금은 도구가 없이 언제든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손을 잡으며 약간의 스킨십이 생겨 친밀감도 형성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선생님을 만나 배울 수는 없는 여건이었다. 책과 인터넷을 뒤져서 열심히 손금을 쳐다보았다. 결과는 실패. 책에서 설명하는 묘사나 도판들만으로는 실제 손금을 읽을 수 없었다. 공부한 것을 머리에 넣고 내 손을 보고 주위사람들 손을 쳐다봐도 뭐가 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굵고 분명한 선’은 얼마나 굵고 분명해야 하는 것일까? ‘손의 혈색이 좋고 월구가 탄력이 있어야 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보여야 하는 것일까?

 이어서 공부했던 관상도 마찬가지였다. 관상은 <마의상법(麻衣相法)>이라는 고전을 기본으로 한다. 중국 송나라 시대 마의(麻衣)라는 선사(禪師)가 한 말을 전해 적은 내용이라 한다. 여기 적힌 표현은 추상적이기 그지없다. 눈이 가로로 길고 갸름하며, 부드러운 곡선에, 동공이 검어 검은자위와 구분이 안 되고, 영롱한 광채를 가지면 가장 좋다는 ‘봉황눈’이다. 글을 읽고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아, 뭔가가 보이는가? 그럼 다음 단계. ‘공작눈’은 눈의 라인이 뚜렷하고 눈동자가 검게 빛난다고 한다. ‘무슨 차이지?’ 싶게 된다. 내가 아둔해서인지 모르지만, 저 설명만으로 완전한 이미지를 터득할 수 없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구체적인 예시로 유명인들 사진을 보여준다. 하지만, 볼수록 더 헷갈리기만 했다. 손금과 관상은 오랜 시간 스승에게 사사하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비밀의 카드 속 이야기 세상     


 그 이후 배운 것이 타로카드이다. 아직은 타로가 흔하지 않던 때였다. 원서가 아닌 국내 도서가 처음으로 조금씩 나오던 시절이었다. 같이 프로그램을 만들던 작가가 요즘 배우고 있다며 점을 봐준 것이 인연이 되었다. 뭔지 모르는데도 재미있었다. 공부도 쉽게 되었다. 미술사 공부하며 도상을 보고 스토리를 이해하는 훈련을 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카드 안에 그려진 그림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내 신기했다. 대비밀(Major Arcana)이라고 불리는 22장의 카드는 절벽을 향해 걸어가는 바보의 모습에서 시작해서 모든 것이 통합된 세계로 끝난다.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며 만날 수 있는 사람과 상황들이 펼쳐진다. 만능 해결사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사자를 다루는 용기를 얻기도 한다. 운명의 수레바퀴에 올라서기도 하고 죽음의 사신을 만나가기도 한다. 달을 쳐다보고 울부짖는 동물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생각에 들게도 한다. 소비밀(Minor Arcana)이라고 불리는 56장의 카드는 의지, 감정, 현실, 이성 4가지 요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각 요소들이 숫자와 배합되어 어떻게 발현되는지 그림으로 보여준다. 이런 각각의 카드들을 배열해서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재미있다. 사실 카드 한 장의 도상을 읽는 것보다 그것을 엮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다. 여기서 점쟁이의 역량이 드러난다고나 할까. 받은 질문과 카드가 배열된 상황을 엮어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 세계 안에서 고민을 펼쳐놓고 대화를 하는 신비함이란.

 타로카드의 가장 큰 장점은 직관적인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는데 있다. 카드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카드에 그려진 그림을 보는 순간 무언가를 느낀다. 내가 주로 쓰는 웨이트 계열 타로를 한번 살펴보자. 악마, 타워, 죽음처럼 누가 봐도 무서운 것이 있다. 무시무시한 모습의 악마가 가운데 떡 하니 앉아있다. 그 아래 쇠사슬로 묶인 남녀가 한 쌍 좌우로 서있다. 이 카드가 나오면 다들 ‘아 안 좋네’라며 한숨을 쉰다. 반대로 한눈에 좋아 보이는 카드도 많다. 쨍한 해가 떠 있고 해바라기 밭에 화관을 쓴 아이가 웃으며 백마를 타고 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태양 카드이다. 비교하자면, 사주나 주역은 매우 추상적인 점법이다. 사주는 목화토금수라는 다섯 가지 원소의 작용을 설명해야 한다. 주역은 수천 년 전 작성된 고대 한자를 해석해야 한다. 점괘의 느낌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어렵다. 하지만 타로카드는 그림을 보며 질문자와 점쟁이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카드가 보이는 이미지대로 늘 좋거나 나쁜 의미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배열된 맥락에 따라 그 반대로도 볼 수 있다. 그래도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 어떤 것이든 느낌을 바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 카드가 좋은 이유, 보이는 것과 달리 나쁜 이유 등등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줄 수 있다. 처음 던졌던 질문에서 더 깊은 궁금증으로도 이야기를 쉽게 이어갈 수 있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질문자와 정서적인 친밀감이 생긴다. 타로의 그림들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인도하는 느낌이 든다.       


   

점쟁이를 대하는 두 가지 태도     


 점을 보자는 사람들에겐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어디 한 번 맞추나 보자’라는 회의론자가 하나다. 아마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점을 보게 된다면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부류는 자신이 평소 고민하던 문제를 해결하려 점을 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다른 호기심으로 점을 치자고 한다. 카드 자체가 궁금할 수도 있고, 점쟁이의 실력이 궁금할 수도 있다. 이렇게 점을 치면 서로 크게 감흥이 없다. 질문을 던진 사람도 시큰둥하고 점을 봐준 사람도 단순한 점괘를 내주고 마무리 된다. 대화가 더 진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서적 유대감도 잘 생겨나지 않는다.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한 질문에 카드를 뽑으면 점괘가 잘 안 맞는다. 이것도 내 스스로의 능력을 시험에 들게 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어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다른 한 유형은 점을 봐야 할 절실함이 있는 사람들이다. 문제의 해결책을 혼자서는 찾기 어려운 경우이다. 이런 사람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일단 눈빛이 다르다. 질문을 어떻게 할지부터 신중하게 생각한다. 카드를 고를 때 진심을 담은 눈빛으로 대한다. 배열한 카드를 뒤집을 때 희비가 엇갈리는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더 재미있는 공통점은 카드를 읽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점쟁이가 해석을 내놓으면 거기에 자신의 말을 적극적으로 덧붙인다. 분명 질문의 답을 들으러 온 것인데, 본인이 더 말을 많이 한다. 악마 카드가 나와서 ‘주위에 본인을 얽매고 조종하는 사람이 있네요’라고 읽었다고 해보자. 그럼 대번에 ‘아 맞아요, 그 XX놈이 그런 짓을 하고 있어요’하며 그 XX놈과 관련된 일들을 줄줄이 쏟아낸다. 그런 사람이 바로 생각이 나지 않더라도 ‘예전에 일할 때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었어요’라고 답을 찾아 나선다. 이렇게 꺼낸 얘기는 그 앞뒤에 배열된 카드와 함께 긴 서사의 한 부분을 이루게 된다. 스토리 속에서 이 악마카드가 도움이 되는 해피엔딩으로 가는지, 생각대로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새드엔딩으로 가는지 살펴본다. 뭔가 불확실한 결과일 때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점괘를 더 보면 된다. 잘 이해가 안 되는 지점에 대해 추가 카드를 뽑는다. 문제에 따라 아예 판을 갈아 다른 배열을 보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 문제를 파악하고 카드가 지시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해석해준다. 두 번째 유형의 상담자들과는 점을 보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풍부해진다. 파악해야 할 곳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마지막 점괘도 더 구체적으로 낼 수 있다. 물론 나중에 전해 듣는 적중률 또한 높아진다. 점쟁이의 위상이 더 높아진다. 아울러, 나와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눈 친구가 하나 늘어난다.         



듣는다는 기술     


 이제, 용한 점쟁이의 비밀을 밝히겠다. 비밀로 하고 싶지만, 읽어봐서 알 것이다. 이 기술엔 특별한 게 없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뿐이다. 어떻게 얘길 꺼내야 하나 망설일 때 그 마음을 끄집어내 줄 수 있으면 된다. 모두 별 볼 일 없는 것 같은 매일을 지낸다. 좋아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머리 아픈 문제는 늘 마음 한구석을 부여잡고 있다. 누구나 속을 꺼내 탈탈 털고 싶을 때가 있다. 남에게 들려주기 마뜩찮은 일일 수도 있다. 굳이 꺼내봐야 별 것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얘길 부담 없이 툭 하니 던져도 재미있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별 의미도 없는 것에 관심을 보이고 같이 고민해준다. 내가 몰랐던 감정을 읽어준다. 공감할 수 있는 해결책도 내어 준다. 좋지 않은가? 옷을 벗고 달빛 아래서 춤을 추라는 사이비 해결책이 아니라면, 그 해결 방법이 맞든 틀리든 별 문제 없지 않을까? 마음을 부여잡고 있던 짐을 대화로 조금 내려놓았다면 그걸로 충분치 않을까? 타로카드와 그 안에 들어 있는 신비한 그림들은 조력자일 뿐이다. 마음의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신비한 세계를 짓고 그 안으로 여행을 떠나도록 이끄는 디딤돌이다. 샤이 보이가 미래를 점치는 기술을 배우자고 시작했던 일이었지만, 카드의 마법은 다른 곳에 있다. 결국 서로를 잇고 마음을 위로하는 것은 사람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은 듣는 기술뿐이다. 관심을 가져 주고 말의 진심을 생각해주는 것, 그것이 인간관계의 핵심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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