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묵PD Jul 01. 2024

격식과 품격


경복궁 한복파티     


 주말 경복궁 주변은 한복을 입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금발 벽안의 훤칠한 남성,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가족, 히잡을 두른 일군의 아가씨들까지 세계 모든 사람들이 한복을 즐긴다. 형형색색 화려한 차림새들, 파티장에 와 있는 것 같다. 다과도 음악도 없지만 고궁의 정취 속에서 모두 즐거운 얼굴이다. 난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한복을 사랑할 날이 올 줄 몰랐다. K컬처가 힘을 얻으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구호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뭔가 좀 이상하다. 임금님 붉은 곤룡포에 칼을 차고 사또의 전립을 쓰고 있다. 대감님의 높은 정자관을 쓰고 자수로 장식된 무관의 철릭을 입고 있다. 여성들의 한복은 모두 유럽 바로크시대 귀족의 옷처럼 부풀어 레이스로 장식이 되어 있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창의적으로 변형하는 것은 좋다. 요즘 트렌드에 맞게 화려하게 다시 디자인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세계인의 취향에 두루 어필할 수 있는 발전인데,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어찌하나, 내 눈엔 이상해 보이는걸. 내가 전통 복식에 대해 연구한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도 아니다. 그저 상식적인 한복 입는 법을 알 뿐이다. 머릿속엔 사극 전통의상들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수준이다. 이런 막눈으로 봐도 ‘저건 아니지’ 싶은 것들이 많다. 저 옷을 입고 좋은 추억을 남겨가는 외국인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이 추억과 함께 ‘이것이 한복이다’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지는 않을까 괜스레 노파심이 생긴다. 아무리 예쁘게 만든 한복이라도 마음속에 담고 있는 ‘넘지 말았으면 하는 선’을 지켰으면 싶어진다. 내가 꼰대가 되었기 때문일까?       


   

예비군 훈련장 군복     


 우리에게 한복이 있다면, 유럽엔 정장이 있다. 양복 정장은 폴란드 경기병의 군복 프록코트(Frock coat)에서 기원한다. 19세기 말 유럽의 신사를 떠올려보자. 지팡이를 들고 외눈 안경에 실크햇을 쓰고 꼿꼿한 자세로 서 있다. 이때 반드시 요즘 정장 상의보다 긴 옷을 입고 있다. 이것이 프록코트다. 이 옷은 말을 타고 전투를 할 때 편할 수 있도록 옆과 뒤를 터 실용적으로 만든 것이다. 프록코트는 17세기 후반 사회적으로 공인된 복장의 지위를 갖는다. 귀족 뿐 아니라 누구든 격식을 차릴 때 입어야 하는 옷이 되었다. 이 프록코트가 연미복, 턱시도를 거쳐 지금의 형태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군복에서 나온 것이었으니 복장의 규정이 정해져 있다. 영국 정장은 셔츠에 바지를 입고 넥타이를 맨 후 조끼와 재킷을 입는 쓰리피스(three piece)가 정석이다. 신발은 당연히 구두를 신어야 하고, 중절모를 써야 한다. 미국에서 기성복을 만들면서 정형화 된, 조끼와 모자가 빠진 구성이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양복 정장이다.

 정장은 규범에 맞게 입는 것이 멋있다. 규정에 맞게 입는 옷들은 그것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깔끔한 멋이 난다. 요즘 정장이 캐주얼화 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노타이에 스니커즈를 신기도 한다. 하지만, <킹스맨> 주인공이 멋있어 보이는 것은 격식에 맞게 옷을 갖췄기 때문이다. 양복 정장에는 수많은 규칙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신발이다. 구두는 반드시 옥스퍼드화를 신어야 한다. 뾰족한 앞코에 끈이 달린 구두를 말한다. 옥스퍼드화는 앞코의 모양에 따라 몇 가지로 구분된다. 앞 발등에 가로로 지르는 선이 하나 있으면 스트레이트 팁이라고 부른다. 이 선에 맞춰 조그만 장식이 있는 플레인 캡 토, 선마저 없는 플레인 토 스타일도 있다. W 모양으로 화려한 구멍장식이 있는 것은 윙 팁이라고 부른다. 스트레이트 팁이 가장 포멀하고 그 아래 순서대로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흔히 양복에 신는 로퍼는 정장화가 아니다. 로퍼(loafer)는 말 그대로 게으름뱅이들이 신는 신발이다. 끈을 맬 필요 없이 쉽게 신고 벗는다는 의미이다. 정장화와 거리가 멀고, 서양 아이들 교복에나 신는 신발이다. 신발을 골랐다면, 반드시 그와 같은 색의 벨트를 매야 한다. 원래 클래식 슈트는 서스펜더(suspender)라고 부르는 멜빵을 메는 게 정석이다. 서양 영화를 잘 생각해보면 양복쟁이들이 대부분 이 멜빵을 메고 있는 것이 떠오를 것이다. 요즘은 서스펜더 대신 벨트를 많이 한다. 대신, 구두처럼 다른 가죽제품과 동일한 색으로 착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넥타이는 스트라이프나 도트 무늬가 가장 격식에 맞는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정장에 포인트를 주는 것이 넥타이다. 너무 화려하면 전체의 균형이 깨지고 촌스러워진다. 특정한 디자인의 스트라이프는 레지멘털 타이(regimental tie)라고 부른다. 영국의 전통적인 군대 깃발에서 따온 것이다. 줄무늬 자체가 특정한 군대나 그룹에 속한 것임을 나타낸다. 레지멘털 타이는 포멀하지만, 유럽인들 앞에서는 잘 못 매면 특정 그룹을 지칭할 수 있어서 실례일 수 있다. 양말은 원래 무릎 아래까지 올라오는 어두운 색 호스(hose)를 신는 것이 규정이다. 구두와 바지 사이에 맨살이 나오는 것은 실례이기 때문이다. 상의를 벗어서도 안 된다. 슈트에서 셔츠는 속옷 개념이다. 바지에 메리야스만 입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 쉽다. 그리고 무엇보다, 체형에 딱 맞도록 입어야 한다. 기성복이 흔하기 전에 양복점에서 다 맞춰 입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디테일이 규정으로 정해져 있다. 상의 소매의 길이, 소매 끝 단추의 개수, 깃의 각도까지 가장 적합한 규정이 있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뭐 이리 복잡해? 그냥 입으면 안 돼?’ 맞는 말이다. 옷을 입는 것은 자유다. 누가 어떻게 입건 그것은 본인의 결정이다. 다만, 이렇게 한 번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정장은 말한 것처럼 군복에서 나온 것이다. 규정대로 잘 차려 입은 군인을 떠올려 보자. 그리고 예비군 훈련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유롭게 군복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풀어헤친 위장복 앞섶에 운동화를 신고 원색의 스포츠 배낭을 메고 있는 예비군, 어떤가? 한복으로도 생각해 보자. 우리가 아는 전통대로 입은 사람과 경복궁 관광객처럼 입은 모습, 어느 것을 선호하는가? 자유로운 복장도 그 기본이 되는 전통과 규칙이 있기 때문에 변형이 가능한 것 아닌가.          



율령격식     


 사실 한국에서는 헐렁하게 입는 양복이 표준이다. 슈트에 하얀 와이셔츠, 넥타이를 매고 있으면 어디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되었다. 말 그대로 ‘화이트칼라’를 대표하는 복장이었다. 밖으로 나갈 일이 없어도 넥타이에 정장을 입고 출근했다. 당연히 꽉 끼는 옷은 불편했을 것이다. 결국 작업복인데 격식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권위주의를 타파해왔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며 옷도 변했다. 한국은 성리학 중심의 경직된 사회였다. 일제 독재부터 군부 독재까지 상명하복의 문화는 반복되었다. 존경받아 마땅한 권위보다 눈치를 보며 허리를 굽혀야 하는 가짜 권위가 득세했다. 우리의 현대사는 이 모든 것을 깨고 자유를 찾아 가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이것이 복장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나가서 누굴 만날 일이 없는 사람이 정장을 입고 출근할 필요는 없다. 회사에서 차려야 할 예의는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일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답답한 옷보다 효율적인 자유복이 낫다. 이런 변화는 당장 현실로 나타났다. 2000년대 들어서자 노타이에 캐주얼화를 신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당연히 정장을 요구하는 회사나 부서도 줄어들었다. 지금 한국은 격식을 갖춘 정장이 필요 없는 사회가 되었다

 그 결과를 이해한다. 그래도, 난 멋없이 헐렁한 양복은 싫다. 정장이라며 알 수 없이 섞어 입은 모습도 좋아하지 않는다.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엔 그것을 맞춰주는 것이 보기 좋다. 정장의 규정에 익숙한 유럽인들이 한국의 슈트를 보면 아마도 우리가 경복궁에서 한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예비군의 군복처럼, 격식에 맞춰 입는 옷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격식이란 말은 과거 성문법 체계였던 율령격식(律令格式)에서 온 말이다. 율은 형법, 령은 행정법이다. 격은 율령을 개정한 법규, 식은 시행 세칙이었다. 다시 말하면, 격식은 율령의 원칙 위에서 트렌드에 맞게 적용하는 규칙의 의미이다. 상황에 맞게 조금씩 변화하더라도 지켜야할 가이드는 필요하다. 자유와 권위는 반대말이 아니다. 전통과 권위가 살아 있어야 그 위에 새로운 변형이 있을 수 있다.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격식도 무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지금 한국의 파격과 자유는 좋다. 그래도 근원적인 격식을 갖추는 것이 좋아 보일 때도 있는 법이다. 해외의 결혼식이나 드레스코드가 명확한 행사가 괜히 있어 보이는 것이 아니다. 격식을 갖춰야 할 자리가 명확히 있고, 거기에 맞는 옷과 행동을 보이기 때문이다.           



부토니에     


 PD일을 잠시 접고 사업부서에 가게 되면서 정장이 필요해졌다. 포멀한 자리나 의전행사 같은 것들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멋진 양복을 고르고 싶었다. 양복의 규정에 대해 찾아보고 파들어 간 것이 이 즈음이었다. 격식에 맞는 깔끔한 착장을 완성하고 싶었다. 네이비와 블랙으로 몸에 딱 붙는 것으로 골랐다. 구두는 스트레이트 팁 검정색 옥스퍼드화를 제일 먼저 선택했다. 가끔 변화를 주기 위해 플레인 캡 토 스타일의 갈색 구두도 샀다. 구두를 샀으니 거기에 맞는 색으로 벨트도 각각 하나씩 구매했다. 가방도 배낭이나 크로스백을 맬 수는 없었다. 블랙과 브라운 가죽 서류 가방을 하나씩 주문했다. 고가의 명품을 산 것은 아니다. 저렴해도 디자인이 격식에 맞는 것 위주로 골랐다. 넥타이는 자잘한 도트 무늬로 골랐다. 차근히 하나씩 구비해 가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건을 고르고 사는 과정에 신이 났다. 그렇게 갖춰 입으면, 다들 나를 다르게 본다. 뭔지 모르지만 멋있어 보인다나.

 격식에 맞춘다고 틀에 갇히는 것은 아니다. <대부>같은 영화를 보면 멋쟁이 할아버지들이 나온다. 분명 정장을 갖췄는데 포인트가 되는 행커치프를 꽂고 존재감 있는 안경과 고급스런 중절모를 쓴 노인들이다. 슈트에서 요구되는 모든 것을 맞추지만 그 안에서 자유롭게 개성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나아가, 그 규정을 확실히 알면 정장을 발전시킨 복장을 할 때도 적절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상하의를 믹스매치 할 때 소재가 어울리게 고른다. 완벽한 슈트 차림에 빨간 양말 하나로 파격을 준다. 바탕을 알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은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조선시대 멋쟁이 선비들이 괜히 다양한 갓끈으로 멋을 낸 것이 아니다. 전체의 틀을 알기 때문에 어디에 포인트를 줄 지 알았던 것이다.

 정장을 입을 때 나도 포인트를 하나쯤 주고 싶었다. 잘 갖춘 정장은 그것만으로도 품격 있게 만들어준다. 거기에 작은 포인트 하나를 얹으면 좋을 것 같았다. 한참을 찾아 생각해 낸 것이 부토니에(boutonnière)다. 단춧구멍을 의미하는 프랑스 말이다. 양복상의 왼쪽 깃에는 단춧구멍이 하나 있다. 앞을 여밀 때 쓰던 것이 본래의 용도는 없어지고 디자인으로 흔적만 남은 것이다. 여기에 꽂는 꽃도 부토니에라고 부른다. 남자라고 꽃장식을 하지 말란 법은 없다. 원래는 생화를 꽂는 것이 시작이었다. 지금은 브로치처럼 액세서리로 만들어지고 있다. 다양한 부토니에를 사 모았다. 은빛 금속으로 꽃을 표현한 것, 흰색 천으로 꽃모양을 만든 것, 시어서커 소재에 어울리는 리본 모양 등 다양한 디자인을 갖췄다. 같은 옷이라 해도 부토니에를 어떤 것으로 하느냐에 따라 인상이 많이 달라진다. 소소하지만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불후의 명작 <햄릿> 1막3장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프랑스로 떠나는 아들 레어티스에게 여러 조심해야 할 것을 짚어주며 아버지 폴로니어스가 충고하는 말이다.      


  지불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값비싼 의복을 차려입되 유별난 디자인은 피하고 고급스럽게 보이되 번지르르하게 꾸미지 마라. 의복은 그 사람의 품격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의복엔 여유 있는 데까지 돈을 들이되, 야단스런 치장은 못쓴다. 지나치게 사치해서는 안 된단 말이다. 의복이란 인품을 알아 볼 수 있는 거니까.   

  

 이 대사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말과 맥이 닿아 있다. 우리도 말하는 것이나 글을 쓰는 것 못지않게 외모를 중요한 판단의 기준으로 생각해왔다. 또, 우리 전통의 미감인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 華而不侈)'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말 그대로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가치이다. 품격은 값비싼 명품을 휘감는다고 나오지 않는다. 적절한 선을 알고 원칙에 맞게 고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안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끔은 불편해도 원칙을 지키는 태도도 필요하다. 자유로운 화려함도 좋다. 그래도 가끔은 격식에 맞게 품위 있는 멋을 즐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전 11화 공감능력시험을 허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