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 꽃이 피는 정원을 가지고 싶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무를 심고, 잔디를 깎고 낙엽을 치우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잘 몰랐던 정원이 좀 익숙해졌다. 이사 오기 전부터 있던 나무들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됐다. 라일락, 영산홍, 서부해당화, 함박꽃, 색색 장미들, 산수국이 어디에 어떻게 꽃을 피우는지 이해하게 됐다. 처음부터 내가 키우고 싶었던 꽃들도 심었다. 하얀 꽃비를 맞고 싶어서 왕벚나무를 심었다. 예전 집에서 키우던 탐스러운 수국은 이사 오자마자 옮겨 심었다. 그리고 한두 해의 시간 동안 꽃밭의 빈자리를 조금씩 채워갔다. 그렇게 4월 5월은 꽃 대궐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꽃을 좋아하게 될 줄 몰랐다. 대개의 남자들처럼 꽃집 갈 일이 별로 없었다. 아는 꽃이라고는 장미나 안개꽃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정원을 가꾸고 꽃을 보니 자연스레 애정이 생겼다. 노지에 피는 것들은 꽃집의 꽃과 다르다. 크기도 작고 모양도 잘 정돈되어 있지 않다. 그래도 정원이 가지는 초록의 배경에 스스로 피는 꽃은 훨씬 사랑스럽다. 색도 매끈하게 윤기가 돌고 생생하다. 살아있는 생명체란 느낌이 확연하다. 몇몇 꽃은 부케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풍성하게 피어나기도 한다. 이름도 몰랐던 꽃에 감탄하게 된다. 어떤 녀석인지 정보를 찾아보고 정성을 다해 보살핀다. 이렇게 아름다운 친구들을 곁에 두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꽃들의 파티는 봄에 끝이 났다. 가장 화려한 계절이 지나고, 여름에 들어가는 6월 수국이 핀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고 수국마저 노랗게 마르면 이제 더 꽃을 볼 수 없었다. 아쉬웠다. 여름에도 가을에도 꽃을 볼 수 없을까? 한참을 공부해서 여름에 풍성한 배롱나무를 심었다. 완벽한 핫핑크 꽃이 7월부터 10월까지 탐스럽게 폈다. 가을 화단을 장식하려 꽃무릇 구근을 심었다. 9월이면 신기한 모양의 꽃대가 올라와 주홍색으로 물든다. ‘이게 되는구나.’ 뿌듯한 마음이 차올랐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 꽃에 대한 애정이 넘쳤던 탓이다. 가을에도 꽃을 볼 수 있으니 겨울에도 꽃을 볼 수는 없을까. 내가 애써보면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이래저래 알아보기 시작했다. 겨울에 피는 꽃, 그리고 노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 그렇게 찾아진 것이 그 이름도 생소했던 헬레보루스다.
헬레보루스는 ‘크리스마스 로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겨울에도 꽃이 펴서 그렇다고 한다. 이 친구는 신기한 전설을 하나 가지고 있다. 아기 예수가 탄생했을 때였다. 한 양치기 소년이 선물을 봉헌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가난한 소년은 가진 것이 없었다. 신앙심이 깊던 그는 예수님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이를 가엽게 본 천사가 그 눈물로 꽃을 한 송이 만들어줬다. 그것이 헬레보루스다. 꽃을 받은 양치기는 아기 예수에게 다가가 꽃을 바치고 고개 숙여 찬양했다. 꽃도 고개를 숙였다. 헬레보루스 꽃이 고개를 숙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오신 날, 크리스마스에 생긴 꽃이니 크리스마스 로즈라는 이름을 가질 만하다.
각기 다른 색으로 꽃피는 세 뿌리의 헬레보루스를 구입했다. 이미 한 포트는 꽃이 핀 개화주였다. 막 봄이 시작되는 3월 말경이었다. 볕이 잘 드는 땅을 찾아 조심스럽게 심었다. 정말 겨울에 꽃이 필까. 떨리는 마음으로 정성껏 가꿨다. 색색의 꽃이 피고 눈이 내리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만 해도 설렜다.
하지만 그해 겨울, 꽃은 피지 않았다. 세 그루 중 하나는 그사이 죽었는지 잎도 보이지 않았다. 추운 겨울이 지나며 또 한 녀석이 말라 죽었다. 그나마 잎이 남은 것은 처음부터 꽃이 달려 있던 한 뿌리뿐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얼음장 추위 속에서 꽃이 피기를 바랐다니, 그건 스스로를 애정이라고 속인 내 욕심이었다. 겨울이 따뜻한 남쪽 해안에서야 화려한 동백꽃도 피고 향기가 멋진 금목서도 핀다. 내가 사는 곳은 북극 한파가 내려치는 곳 아니던가. 꽃은커녕 노지월동 자체가 커다란 생존의 문제인 곳이다.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으로도 대단하게 여겨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한겨울에 꽃이 피길 바랐다니, 어리석기 그지없었다. 사람 사이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선을 넘는 애정은 집착이다. 원하지 않는 사랑은 폭력이다.
그렇게 잊힐 친구려니 했던 다음 해 봄이었다. 남아있던 잎 아래 무언가 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꽃이었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헬레보루스가 맞았다. 비록 작고 힘없는 모양이었지만, 겨울을 지내고 꽃을 만들어 낸 것이다. 꽃을 발견한 것이 4월 초였다. 겨울은 아니었지만, 살아남아 꽃을 낸 것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내 욕심보다 강한 생명력을 보았다. 이놈이 사람이었으면 업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올해는 2월 말에 꽃봉오리가 올라와 3월에 꽃이 폈다. 마른 땅에서 올라올 때부터 꽃 모양이 보였다. 헬레보루스 꽃은 정확히는 꽃이 아닌 꽃받침의 변형이란다. 아직은 지식이 짧아 왜 꽃이 아니고 받침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처음 날 때부터 꽃을 달고 땅에서 나오는 풀을 본 적이 없다. 흙을 뚫고 통째로 올라오는 부분이 꽃이 되니, 그 때문인가 싶기도 했다.
사실, 이 친구가 꽃이든 꽃받침이든 상관없다. 겨울에 꽃을 보겠다는 내 바보 같은 욕심을 알게 해준 녀석이다. 애정도 순리에 맞게 줘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과한 사랑은 어리석음과 동의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지켜줘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조금 알게 되었다. 그렇게 자신의 시간을 기다려 피워낸 꽃이 아름답다. 비록 눈 오는 크리스마스에 만나진 못했어도 살아남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지금, 3월이지만 내 마음은 크리스마스다.
오늘 아침에 보니 정원 벚꽃이 절정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다음주에는 흐드러지는 꽃과 꽃비에 대한 이야기를 올려보겠습니다. 4월8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