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쎄스글이다 Apr 01. 2024

보내는 사랑

사랑은 돌아오는거였다.

캠핑카에 앉아있다 혼자서 내려가기엔 높은 계단을 통해야만 내릴 수 있었던 아이는 

“엄마 숀 잡고 가자아~” 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었고, 

내민 손을 잡은 내 손등에 아이가 뽀뽀를 해주었다. 

너무 찰나라서, 내 손등이 너무 거칠고 말라서 놓칠 뻔 했다. 

고개숙여 아이를 내려다보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모를 뻔 했다.

고마움의 표현이었을까, 도움을 요청하는 애교였을까.

늘 내가 하는 수많은 애정표현 중 하나가 매일매일 아이를 채우고 있고, 

그것이 꽉 채워져 아이에게 당연한 것이 되는 어느날 갑자기 이렇게 나에게 되돌아온다.

이렇게 내 아기는 쉼없이 사랑을 주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구나. 

잊지않고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구나.

그렇게 쌓아두다 너의 마음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골라 쓸 줄 알게되었구나.

부모의 맥락없는 사랑표현은 맥락없이 맘껏 마음을 표현하는 아이로 만드나보다. 

금요일에 어린이집 엄마들과 우연히 만나 함께 커피를 마시게 됐는데

내 아이가 정말 사랑이 많은 아이같다는 말을 들었다. 

엄마인 내가 볼 땐 당연한거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보여진다니 

아이에게 너무 고마웠다. 

언행에 사랑이 묻어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결혼할 때부터의 목표였는데 

벌써 이룬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똘똘하다는 말도 듣기에 좋고 언어발달이 잘 된 것 같다는 말도 참 고맙지만 

그건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큰 감흥은 없다. 그리고 남의 집 아가들은 다 똘똘해보인다. 그래서 가장 흔한 칭찬인 것 같다. 

나는 그런 재미없는 칭찬에 내 아이가 물들지않길 바란다. 

그런데 사랑이 많은 아이인 것 같다는 말은 하늘을 날게 했다. 

물론 대답은 “에이, 안 그런 아가들이 있나요~ 태봉이가 사람들한테 관심이 많아서 그래보이나봐요ㅎㅎ” 라고 했지만 속마음은 사실 좀 어깨가 올라갔었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나와 무뚝뚝한 가정에서 자란 남편이

태봉이를 만나며 같은 시선으로 출발한 것은 정말 단 하나,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쉬운 것인 사랑이었다. 

“수없이 사랑한다 말해주고 매일매일 우리가 사랑한다는 걸 알게 해주자.”

자식을 사랑하지않는 부모는 없겠지만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늘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말이나 행동, 눈빛 등 어떤 형태로든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나도 그랬고 남편도 그랬다고 들었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믿음은 평생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다시 세울 수 없게 만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너를 이렇게나 아무런 조건없이 어느 때나 사랑한다고 알려주지 않는 것은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 아닐까 싶다. 


하느님이 너무 바빠 대신 보내준 것이 엄마라 했다.

그러니 내가 이 세상에 온 유일한 임무인 엄마의 역할을 잘해내고 돌아가고싶다. 그리고 하느님한테 칭찬받고싶다. 

“정말 애썼다.”

그리고 그 칭찬을 들을 때 부끄럽지않고싶다.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아이에게 수시로 해주는 말이 하나 더 늘었다. 

”엄마는 언제나 태봉이랑 같이 있어.”

아이가 이 말의 의미를 다 이해하는 건 아니겠지만 어느새 아이 스스로를 안심시켜주는 말이 되었다. 

가끔 무서워서 피하고싶은 상황이 되면 아이의 입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엄마. 언제나. 같이. 있쪄.“에 내가 더 단단한 어른이 되어주어야겠다 는 다짐을 한다. 


손등뽀뽀 한 번에 이렇게 유난떠는 걸 보니 큰일이다.

나도 참 나다.

그래도 오늘 이 기분을 절대로 잊고싶지 않은 것을 어쩌나!

작가의 이전글 아기의 첫 복숭아 그리고 나의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