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완벽하지 않은 독서
신간을 발견하는 일은 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나는 스스로를 책 콜렉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 달에 한 권쯤은 꼭 장바구니에 담는 사람이다. 대개는 표지와 제목에 먼저 마음을 빼앗긴다. 그 책이 내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는 하루에 몇 번씩이나 배송 조회를 누른다. 아직 만져보지도 않은 책인데도 이미 머릿속에서는 몇 번이나 그 속을 벗기듯이 기대한다. 나에게는 기다리는 시간조차 작은 예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막상 택배 상자를 열고 책을 펼치면, 이상하게도 속도는 더디다. 몇 장 읽지 못한 채 책갈피가 한 지점에 머물러 버리는 날이 대부분이다. 외양이 취향이라고 해서 그 속까지 곧장 스며들 수는 없는 법인가 보다. 읽다 만 책이 그대로 책장 한 칸을 차지하는 모습은 조금은 민망하지만, 열 페이지라도 읽었다면 충분하다고 나를 다독인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신간을 기웃거린다. 설렘은 쉽게 사그라들지만, 새로운 기대는 언제나 다시 피어난다. 전자책이 훨씬 간편해진 시대임에도, 나는 여전히 종이책을 고집한다. 종이를 넘길 때 느껴지는 마찰, 묵직하게 손바닥에 닿는 감각, 활자들이 촘촘히 박힌 면을 따라 시선이 미끄러지는 순간들. 그 물성은 기계의 화면 위 글자와는 다른 깊이를 지닌다. 책을 읽는 행위라기보다, 책을 만지는 시간에 가깝다. 어쩌면 나는 이야기를 소비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책이라는 사물을 사랑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읽지 못한 책들까지 포함해 나의 책장은 조금씩 두터워진다. 이 클래식함은 내가 놓지 못하는 어떤 것 중 하나가 된다.
가끔씩은 멍하니 책장 앞에 앉아 책등을 훑어보기도 한다. 그러고 있자면, 세상에 완전무결한 책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대신 그 시절의 내가 고른 책들만이 가지런히 남아 있다. 그것이 수작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때의 나는 그 책에 끌렸고, 그 선택은 분명 그 시기의 나를 말해준다. 책장은 취향을 과시하는 전시장이 아니라, 시간을 저장해 둔 서랍에 가깝다.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으레 유명한 책을 언급하며 읽어보았느냐고 묻는다. 그렇다면 나는 고전을 모두 읽었는가.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 않다. 몇 권은 끝까지 읽었고, 몇 권은 중간에서 덮었으며, 더 많은 책들은 제목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래서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말을 고른다. 읽지 못한 목록이 읽은 목록보다 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나는 분명 책을 좋아해. 사랑해. 하지만 당신이 말한 그 책은 안 읽어봤어. 제목은 알아. 근데 내용은 몰라. 안 읽어봤으니까!"라는 말을 쉽게 할 수가 없다. 나는 책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누군가가 꺼낸 그 작품을 읽지 못했다는 사실을 선뜻 인정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모든 작품을 읽어내야만 독서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각자의 편독은 자연스러운 선택이고, 취향은 언제나 한정된 시간 속에서 만들어질 테니까.
이전에 김영하 작가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박경리 작가님의 대하소설 토지를 아직 끝까지 읽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그는 농담처럼 꺼냈다. 나는 그 농 같은 고백에 안도했다.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모두를 끌어안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글을 사랑하고 쓰고 싶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문장을 섭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끝내 완독 하지 못했더라도, 그 책을 향해 마음이 움직였던 순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다 읽지 못해도, 나는 여전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완벽한 책이 없듯이, 완벽한 애서가도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