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병동에도 설날이 와요

[나는 의사가 되기로 했다_chapter2]

by 이진규
식구란 단어를 떠올리면


다 같이 함께하는 식사자리가 먼저 그려진다. 한 자리에 모여 음식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포근함은 늘 그립다.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은 영혼의 대화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말이지만, 그 말은 진짜다.


식구란 사전적 의미로는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지만, 난 얼굴을 마주 보고 살을 부대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병실에서 나는 그런 식구를 만났다. 맞은편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워 계시는 환자 할아버지와 자신도 같은 전라도 사람이라고 우리를 격하게 반가워하며 이야기를 쏟아내던 간병인 아주머니. 아주머니와 식사를 자주 나누다 보니 문득 아주머니가 남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에 두 번, 괜스레 기분 좋좋아지는 날이 있다. 바로 설날과 추석이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설날이 더 좋다. 지난 일을 미련 없이 손 흔들어 보내고 다가올 것을 두 팔 벌려 맞이하는 그 설레는 느낌이 좋다.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은 희망이 깃든 그날이 좋다.


“엄마, 설날이면 병원에서도 세배하고 그런 걸까?”


병원에도, 재활병동에도 설날이 찾아왔다. 병원에서 맞이하는 설날이 낯설었다. 맛있는 음식이 나올까? 의사 선생님들도 쉬는 날일까? 재활치료를 건너뛰어도 될까? 궁금한 것들 투성이었다. 설날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들떴고 가슴이 간질거렸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병원에서의 설날은 무채색이었다. 설날 아침에도 흰 가운을 갑옷처럼 입은 의사들은 어김없이 병실로 들이닥쳤다. 선반 위 텔레비전 속 사람들은 형형색색의 한복을 입고 옹기종기 모여 세배를 하고 있지만, 나는 백색 침대보 위에 앉아 새하얀 옷자락에 빙 둘러싸여 있었다. 하얀 가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병실이 밤바다처럼 고요해졌다.


오늘 아침식사는 나름 선방이었다. 귀여운 갈비 두 조각과 노란 계란 지단이 고명으로 올라간 떡국. 이만하면 그럭저럭 설날 분위기 내기에는 충분했다.


간병인 아주머니와 곶감, 사과, 밤을 나누어먹으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말캉한 곶감과 아삭한 사과, 고소한 밤의 식감이 설날분위기를 내는데 몫을 보탰다.


“진규네는 설날인데 어디 안 가는겨?”

“저희 진규네 둘째 큰 아빠 댁에 잠깐 다녀오려고요.”

“아빠 진짜? 우리 나가도 되는 거야?”

“응, 아까 주치의 선생님한테 허락받았어.”


안 그래도 회진 끝나고 주치의 선생님과 수군대던 아빠가 수상했다. 설날 깜짝 외출허락을 받고 있는 줄은 몰랐다. 오늘만은 지긋지긋한 물리치료, 작업치료를 받으러 안 가도 된다.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 하던 식사도 안 해도 된다. 드디어 해방이다.


서울의 겨울바람은 매서웠다. 잔디처럼 짧게 깎인 머리에 빵모자를 눌러쓰고 두툼한 맨투맨에 아빠 패딩을 빌려 껴입었지만, 몸이 계속 떨렸다. 지긋지긋한 병원에서 벗어났더니 칼바람 부는 밖이었다. 나는 온실 밖으로 나선 화초처럼 자꾸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조금 지나니 병원 밖 세상으로부터 신선한 자극이 흘러 들어왔다. 빵빵거리는 도로 가득한 차들, 꼭 안은 채 횡단보도 앞에 서있는 연인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 국물을 홀짝이는 포장마차 앞사람들.


내가 기억하던 바깥세상의 모습이었다. 한참을 그 모습들을 바라보았다. 추운 건 문제 될 게 없었다. 살아있음이 느껴졌으니까. 일상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둘째 큰 아빠집으로 가는 시간이 썩 지루하지 않았다.


“진규야, 이제 괜찮지?”

“네, 덕분에 잘 회복하고 있습니다.”


둘째 큰 아빠가 안방에서 나오시며 우리 가족을 반겨 주셨다. 오랜만에 뵙는 얼굴이 반갑기도 했지만, 부엌에서 스멀스멀 스며 나오는 냄새 쪽으로 나도 몰래 발길을 향했다. 뽀얀 사골 국물에 다진 소고기와 김가루가 듬뿍 쌓인 떡국, 열과 오를 맞추어 정갈하게 놓인 갖가지 적반들, 노릇노릇한 굴비며 윤기 흐르는 잡채, 그 옆에 향내 나는 나물 반찬들로 식탁이 터질 듯했다. 그래, 이게 맞다. 진짜 설날이었다.


풍성한 식사였다. 몸도 마음도 풍족해졌다. 둘째 큰 아빠가 병원에 단숨에 달려오셨던 날도 이젠 아득하게 느껴진다. 죽을 것 같았던 일도, 세상이 끝난 것 같던 순간도, 작은 희망에 기뻤던 일도 결국 다 지나간다. 그땐 그랬지 하며 추억할 수 있는 기억이다. 식탁에서 함께 음식을 먹는 이들과 함께, 그렇게 흘러간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식사를 마친 뒤, 안방에 들어가셨던 둘째 큰 아빠가 들뜬 얼굴로 다시 나오셨다. 양손에는 천마가루가 들려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연갈색의 고운 가루가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진규야, 천마가루 다 떨어졌지? 여기 더 가져가서 먹어.”

“네! 정말 감사합니다.”


조건 없는 사랑은 꽁꽁 얼어버린 가슴을 다시 뛰게 한다. 생명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버둥대며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나를 지켜준 것이 있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병실에서 눈물로 하루를 보내던 그때, 무너지려 할 때마다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것이 있었다. 둘째 큰 아빠의 따뜻함이 가슴속으로 쑤욱 들어왔다.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우리 가족은 영화관에 들렀다. 영화 <국제시장>이 상영 중이었다. 극 중 아버지 ‘덕수'는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생이별을 겪었지만, 힘든 시간을 치열하게 살아낸다. 덕수의 삶은 치열하다 못해 처절했다.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선택하고, 독일 광산에서도, 베트남 전쟁에서도 가족을 위해 살았던 ‘덕수'의 인생사가 마음을 울렸다. 그의 인생에 그는 없었다. 오직, 그의 가족뿐이었다.


독일 광산에서 사고로 죽음의 위기를 넘길 때도, 베트남에서 다리에 총을 맞아 못쓰게 될 때도 항상 가족 생각뿐이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희생하는 우리네 아버지였다.


세월의 풍파에 이마에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그는, 고된 삶의 끝자락에서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이산가족이 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나지막이 읊조린다. 수십 년 동안 눈물과 땀으로 자식을 키워내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고단했던 삶을 고백하는 덕수의 대사를 듣다가 마음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더니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아버지의 사랑은 강인하고 외롭다. 늘 든든하기만 한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사실은 숨죽여 울고 있었음을,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있던 것임을 느꼈다. 중환자실에서 읊조렸던 아빠의 다짐이 떠올랐다.


“걱정하지 마 , 우리 아들 내가 데리고 살 거야.”


영화관에서 울다가 아빠를 보니 아빠도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아빠가 흘리는 눈물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잘 버텨왔다고, 나도 진짜 힘들었다고 눈물로 말하는 그런 덕수의 눈물이었을까.


나는 아직 아버지라는 이름이 버겁다. 우리 아빠만큼 살아낼 자신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의 아버지로 사는 날이 오면, 나는 아빠를 떠올릴 것 같다. 나 대신 가족이 내 인생을 차지해도, 거대한 삶의 파도가 덮쳐 죽을 만큼 무서워도,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고 싶다. 영화 속 덕수처럼, 우리 아빠처럼. 내가 본 아빠는 그런 사람이니까. 내가 받은 사랑은 그런 사랑이니까.


2015년 설날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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