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사가 되기로 했다_chapter2]
음식은 하나의 예술작품과도 같다.
만드는 사람의 노력과 정성이 쌓여 한 그릇의 음식이 완성되고, 그 과정이 힘들수록 그 음식의 맛은 더 깊어진다. 조리 시간이 길어지고, 흘리는 땀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음식은 더욱 맛있어진다. 덜 사랑하면 덜 고생할 수 있지만, 더 사랑하면 더 고생하게 된다. 그래서 먹는 이에게 사랑만큼 깊은 맛을 선물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맛있는 음식이 좋다. 누군가 음식을 먹을 사람을 떠올리며 정성을 쏟았을 걸 생각하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하루 세 번,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식사시간은 내게 행복한 시간이다. 맛있는 음식이 주는 행복은 내 일상에서 절대 빼앗기고 싶지 않은 소중한 기쁨이다.
환자가 되어 병실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나는 여전했다. 하지만, 병실에서 먹는 식사는 기대하던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병원에 하루라도 입원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간 보는 걸 깜빡한 듯 밍밍하고 건더기 몇 개 없는 미역국과 참기름도 깨도 없는 재료 본연의 맛만 느껴지는 시금치나물, 그리고 세 살짜리 어린 애나 먹을 법한 양념 없는 새하얀 김치가 매일같이 반찬그릇을 채웠다.
고기반찬은 없느냐고? 물론 있다. 하지만, 발라먹을 살코기보다 가시가 더 많은 임연수구이, 혹은 간장에 둥둥 떠있는 조그만 장조림 소고기 두세 조각이 고작이었다. 누리끼리한 현미가 섞여 있어 거친 식감에 건강미 그 자체였던 현미 고봉밥은 속도 모르고 밥그릇 넘치도록 봉긋 솟아 있었다.
“뭐야 이게! 아빠, 오늘 식사기도에서 식당 사람들은 빼는 게 좋겠어.”
나는 아직 어렸다. 몸은 어른이었지만, 마음은 어린아이였다. 좋게 말하자면 솔직했고, 나쁘게 말하자면 버릇없었다. 아무렴 어떠냐, 잘 먹기만 해도 감지덕지지. 아빠는 마냥 즐거운 눈치다. 아빠는 한번 씨익 웃고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엄마가 싸주신 돼지갈비를 꺼내왔다. 짭짤하고 달콤한 양념과 육즙을 가득 머금은 엄마표 돼지갈비는 밥도둑 그 자체였다. 내 반찬 투정이 심해질 때를 대비한 아빠의 비장의 무기였다.
“아싸!”
“진규야, 돼지갈비가 그렇게 맛있어?”
“아빠, 그건 김치가 왜 빨갛냐고 묻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질문이야”
할렐루야! 돼지갈비와 함께라면 고봉밥 두 공기도 너끈하다. 새롭게 등장한 메인 반찬에 들러리 반찬을 준비해 준 식당 아주머니에게까지 고마워진다. 잔뜩 신이 난 내 모습이 재밌었는지, 아빠는 질문을 던진다. 괜히 머쓱해진 나는 조금 퉁명스럽게 답한다. 나름 그럴듯한 말로 다 들켜버린 속 마음을 감추어 본다. 그저 몸만 큰 어린애였다.
입원 중인 환자들의 보호자들은 환자가 먹는 음식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좋은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하루빨리 회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마 환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호자가 공들여 준비한 음식을 환자가 잘 먹으면 기력을 더 빨리 회복할 것이고, 설령 많이 먹지 못하더라도 그 정성만큼은 환자에게 전해진다. 그 진심 어린 마음 자체로 아름답다.
평생 시골에서 살아온 외할머니는 마음이 따뜻하고, 여린 분이었다. 어릴 적 외할머니댁에 놀러 가면 항상 상다리가 휘어질 듯 한상을 차려 주셨다. 시골에서만 먹을 수 있는 봄 내음 가득한 나물과 무침, 갓 잡은 듯 신선한 보리 굴비와 돼지고기 수육으로 잔뜩 배를 채우곤 했다. 빵빵해진 배를 두들기고 있으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옥수수를 탑처럼 쌓아 내어 오시곤 하셨다. 할머니 댁을 떠날 때면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려는 할머니와 만류하는 엄마가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할머니께서 내 사고 소식을 듣고는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을 우셨다. 얼마 후, 병원으로 할머니의 선물이 도착했다. 보신탕이었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유명한 개장수에게 연락해 신선한 개고기를 구해, 새빨갛고 걸쭉한 국물에 고기를 넣고 끓여서 냄비채로 보내주셨다. 마음 같아선 당장 서울까지 오고 싶으셨겠지만, 올라올 수 없으셨던 할머니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할머니의 보신탕은 양념 가득 배인 진하고 칼칼한 육개장 같은 맛이었다. 평생을 전라도에서 지내신 할머니의 짭조름한 손맛은 강렬했다. 사실 고기 한 점이 귀한 마당에 개고기든 돼지고기든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매 끼니 국 한 그릇씩 퍼다가 꿀떡꿀떡 국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전부 들이켰다.
“엄마, 오늘도 개고기국이야?”
“기력 회복에 이 만한 게 어딨어. 개고기 먹으면 새 살 돋는다고 하잖아.”
삼시 세끼 모든 식사에 보신탕이 올라왔다.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이라지만, 조금 과하다 싶었다. 엄마는 매번 내가 국그릇 바닥까지 완전히 비우기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결국 열두 번째 식사에서 국그릇을 남김없이 비우고 나서야 개고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질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나는 미숙했다. 지겨운 음식을 순순히 먹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나 자신만 중요했다.
그렇지만 나는 결국 보신탕을 끝까지 먹었다. 약간 물리더라도 계속 먹고 싶었다. 할머니와 엄마가 주는 조건 없는 사랑을 더 오래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다.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