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사가 되기로 했다_chapter2]
“여기 이진규 환자 있습니까?”
“네, 보호자 되시나요?”
“아, 저는 진규 둘째 큰아빠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단순히 피를 나누었다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애틋함이 있다. 안양에서 지내시는 둘째 큰 아빠가 가장 먼저 응급실로 달려오셨다. 아빠의 전화 한 통에 만사 제쳐두고 오셔서 보호자 역할을 대신해 주셨다. 누구보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내 곁을 지키셨고, 아빠, 엄마와 함께 눈물 흘리셨다.
둘째 아빠의 사랑은 정말 진했다. 매일 병원에서 안양까지 차로 2시간 거리를 오가며 우리 가족을 위한 세면도구와 생필품을 가져다주셨다. 생필품 꾸러미엔 항상 천마 가루가 함께 담겨 있었다. 어디선가 뇌에 천마가루가 좋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셨는지, 잔뜩 구해 오신 듯하다. 급하게 챙겨 오시느라 천마가루는 허름한 검정 비닐봉지에 엉성하게 담겨 있었다. 헌 내 나는 포장에 사랑이 잔뜩 묻어 있었다.
“진규 엄마, 진규 아빠, 뭐라도 먹어야죠. 일어나시죠.”
“괜찮아요. 저희는 밥 맛이 없네요.”
“이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지. 지하 1층 식당 가서 아침 먹읍시다. 얼른.”
기쁠 때 함께 웃어주는 사람은 고맙지만, 슬플 때 함께 울어주는 사람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지 않아도, 멋진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슬픔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이의 존재만으로 큰 위로가 된다. 내 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던 외삼촌과 외숙모, 사촌 형, 누나들이 총출동했다. 캄캄한 새벽에 전주에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병원에 왔다. 다음 날 해 뜰 때까지 중환자실 앞에서 우리 가족의 곁을 지켰다. 밤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우리 가족을 위해 외숙모가 식당으로 데려갔다.
순대국밥은 싱거웠다. 간이 센 편인 전주사람 입맛에 맞추려면 다대기와 새우젓을 숟가락으로 한 움큼 넣어야 했다. 그럼에도 엄마에게는 여전히 밍밍했다. 사실, 어떤 맛있는 음식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국밥을 떠서 입속으로 묵묵히 밀어 넣었다. 이른 아침, 텅 빈 병원 지하 1층 식당에서 아무 말없이 자리를 지키는 식구들이 고마워서. 뜨끈한 순대국밥의 온기와 함께 전해지는 따스함은 엄마의 마음속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피는 물보다 확실히 진했다. 물이 겉을 씻어내며 순간을 함께 한다면, 피는 깊은 곳에 자리 잡아 그 흔적을 남기며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따스함을 남긴다. 그 따스함에는 강한 힘이 있다. 그 어떤 절망적인 상황과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은 시련도 넉넉히 감당해 내는 그런 힘 말이다. 기적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이 장로, 우리 도착했네.”
“이렇게 먼 길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고, 우리 이 장로 이쁜 아들내미 어짠디야"
“어르신,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피를 나눈 가족보다 더 진한 피를 나눈 가족도 있었다. 아빠가 섬기고 계신 교회의 목사님을 비롯한 교회 식구들도 병원을 찾았다. 20-30명가량의 할머니 권사님, 할아버지 장로님, 집사님들을 태운 승합차 2대가 전주에서부터 달려왔다. 직접 우려낸 누룽지 국물, 손수 농사지은 작물로 만든 호박죽, 잣죽, 깨죽, 직접 길러서 버무린 나물 반찬, 그리고 간식거리로 요긴할 떡 절편과 부각까지. 다들 양손에 한 가득이다.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피보다 더 한 것을 나눈 존재들이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다.
“이 장로, 여기 도토리묵은 이 권사님이 보내신 거여.”
이 권사님 부부에게는 한 명의 아들과 두 딸들이 있었다. 그중 첫째 딸이 나처럼 서울에서 홀로 회사생활을 했다. 어느 날, 이 권사님 부부는 서울의 한 병원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딸이 급성 뇌내출혈로 응급실에 실려 왔다는 연락이었다. 권사님 부부는 서둘러 병원에 도착했으나, 다시는 딸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겪는다고 했던가. 그들은 한 동안 반쯤 미친 사람처럼 지냈다. 일상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교회에 얼굴을 비추지도 못했다.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듣지 않은 하나님이 그저 원망스러웠다.
어느 날, 덤덤한 표정으로 교회에 출석하신 이 권사님은 그날 예배에서 아래 찬양과 함께 그동안 응어리졌던 마음을 풀어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울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있을 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는 남는다. 그날 이후로 이 권사님은 서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안 하셨다. 잠시라도 그날을 떠올리면,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서, 가슴이 아려와서 견딜 수 없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를 통해 내 사고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다 아문 줄로만 알았던 상처가 다시 벌어졌다. 권사님은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두 손을 모은 채로 바닥에 엎드릴 뿐이었다.
"하나님, 안됩니다. 정말 안됩니다. 우리 딸은 어쩔 수 없었지만, 우리 진규는 안 됩니다. 데려가시면 안 됩니다. 제발 이번만은 불쌍히 여겨주세요...”
우리 가족에게 전해진 도토리묵은 갓 쑨 것처럼 촉촉했다. 그 촉촉함에는 권사님의 간절한 마음이 녹아 있었다. 눈물 한 방울, 한 방울 꾹꾹 눌러 담아 만든 것임이 분명했다. 아니, 전에 자식을 잃었던 부모가 생명이 꺼져가는 자식을 눈앞에 둔 부모에게 사력을 다해 전한 진심이었다.
천마가루, 순대국밥, 그리고 도토리묵이 중환자실 앞 우리 가족을 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