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목사님의 편지

[나는 의사가 되기로 했다_chapter2]

by 이진규


병원 안에도 교회가 있다.


일요일 아침이 되면, 여느 교회처럼 입원한 환자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여든다. 우리 가족은 중환자실 앞 벤치에서 벗어나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갔다. 일반적인 교회 예배와는 조금 다른 풍경이었다. 대부분 새하얗고 펑퍼짐한 환자복을 입고 있는 환자들이었고, 그들 옆에는 휠체어, 지팡이, 수액 걸이 등이 있었다.


“저분들처럼 걸어 다닐 수만이라도 있었으면... 우리 진규 어떡하지...”


당시 중환자실에서의 나는 의식은 회복했으나, 얼굴은 물풍선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생체 징후는 안정적이었으나 목 안에 큰 관을 넣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한 마디로, 나는 언제 깰지 모르는 꿈을 꾸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기약 없는 싸움을 견디는 중이었다.


우리 가족은 간단한 목 인사와 함께 제일 뒷자리에 착석했다. 처음 방문하는 병원 교회의 분위기가 약간 어색하다. 처음 보는 환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도 이상하다. 예배가 시작되고, 조용하고 차분한 찬양이 피아노에서 흘러나온다. 어지럽고 복잡한 마음이 제자리를 찾는다. 잔잔한 선율과 함께 이해할 수 없는 안락함이 우리 가족을 감싼다. 지난 5일간의 일들이 영화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을 달래주는 듯하다. 우리 가족은 다시 한번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예배가 진행되는 한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은 그저 울었다. 예배가 시작한 이후로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그저 울기만 했다. 예배가 끝나고 다른 사람들이 돌아간 이후, 주변이 조용해지고 나서야 정신이 차렸다. 옆 자리에는 누군가 두고 간 휴지 뭉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우리 가족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허겁지겁 닦고 자리를 나섰다. 교회 입구에는 한 젊은 청년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목사님이었다.


“안녕하세요 병원 원목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희가 오늘 처음 와서 너무 울기만 했네요.”

“괜찮습니다. 보호자 분들이신가요? 환자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예배가 끝난 지 한 참이 지났지만, 목사님은 우리 가족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문 옆에 서서 기다리고 계셨다. 중환자실에 있는 내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시고는 매일 함께 기도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의 상태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알아보겠다고 말씀하셨다. 단순한 종교적인 차원의 공감이 아니었다. 목사님은 휴대폰을 꺼내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셨다.


이후 목사님은 하루 한번 중환자실 앞을 꼭 들르셨다. 조금이라도 내 상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정보가 있으면 우리 가족에게 공유해 주셨다. 그리고 내가 잘 이겨내고 회복하기를 진심을 다해 기도하시고 자리를 떠나셨다. 초면인 젊은 목사님이 마음을 써주는 것이 우리 가족은 고마웠지만, 미안하기도 했다.


사실, 목사님의 배려와 호의는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것이었다. 지방에서만 평생을 지내온 우리 가족에게는 서울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경계심이 있었다. 특히나,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큰 대학병원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벤치에 앉아 하루하루 간절한 마음으로 버텨야 했기에 신경이 더욱 곤두섰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목사님의 진한 사랑은 우리 가족의 마음속 차가운 벽을 녹여냈다.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느껴지는 사람 사는 냄새에 목사님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내가 의식을 온전히 회복하고, 상태가 안정되어 중환자실 퇴원을 앞두고 있을 때, 목사님은 우리 가족에게 축하인사와 함께 작별인사를 전했다. 엄마, 아빠와 양손을 맞잡고 온 맘 다해 나를 위한 마지막 기도를 함께 드렸다. 그동안 내가 잘 회복하여 중환자실에서 퇴원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왔다. 기도가 이루어졌다는 생각에 모두 감사함으로 뜨거웠다.


“또 뵙겠습니다. 아버님.”


마지막 기도를 마친 목사님은 수줍게 편지를 건네셨다.



‘진규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진규 누나에게’


최준길 목사입니다.


진규 청년이 의식을 찾고 점점 회복되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아울러 진규 청년을 위해 저 역시 계속 기도는 하되, 이제 제가 하던 역할을 진규 아버님이신 장로님께서 하시면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이 생겨서 이렇게 편지를 적어봅니다.


늘 하시는 것처럼 말씀을 깊이 생각하시고 진규 청년과 나누며 기도해 주시면 제가 하는 것보다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중환자실 면회 기도 시작은 위기의 상황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작했는데, 면회기도를 이렇게 바꿔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겨서 글로 적어봅니다.


물론, 앞으로 자주 뵙게 될 것이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종종 찾아뵙고 함께 기도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겠습니다.


진규가 빨리 회복되어 참 기쁩니다.


2015.01.15. 최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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