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는 동태찌개를 끓여야겠다

[나는 의사가 되기로 했다_chapter2]

by 이진규


퇴근길에 집 앞 마트에 들렀다.


얼마 전부터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한 탓에 집에만 오면 침대 위로 쓰러진다. 오늘도 정말 고단한 하루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쌀밥을 한 술 크게 떠서 매콤하고 칼칼한, 시뻘건 고춧가루가 뿌려진 동태찌개 국물에 적셔 입에 넣는 순간을 떠올리며 견뎠다. 오늘 하루 고생한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었다.


동태찌개는 우리 가족 모두 좋아하는 음식이다. 진규도 지수도 어렸을 적부터 곧 잘 먹었다. 동태찌개가 아이들 입맛에 맞는 음식이 아닌 데도 잘 먹는 모습을 볼 때마다 기특했다. 하루는 내가 음식 양을 잘 못 조절해서 세끼 연속으로 찌개를 식탁 위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진규는 늘 국그릇을 바닥까지 깨끗이 비워냈다. 분명 찌개가 입에 물렸을 텐데, 나를 배려해 끝까지 다 먹어주었다. 우리 진규는 그런 아들이었다. 꿈이 많고 언제나 열심히 노력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우리 아들. 저 멀리 서울에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을 자랑스러운 아들을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진규 아빠의 전화 한 통으로, 온통 분홍 빛으로 물들어 있던 오늘 하루가 순식간에 잿빛으로 바뀌었다.


“여보세요?”

“어, 난데.”

“집에 오고 있어?”

“진규한테 사고가 났대.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툭 풀렸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간신히 걸음을 옮겼다. ‘어떡하지... 어떡해...’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 물음을 혼자 중얼거릴수록 머릿속은 얼어붙었고 심장은 꽉 조여왔다.


집 안은 무겁고 조용했다. 얕게 떨리는 내 입술과 작게 새어 나오는 숨소리만이 텅 빈 방안을 울렸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내 속은 거친 파도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정말 큰 일 난 걸까? 괜찮겠지?’ 어둠 속에 가라앉는 듯하다가도 희망에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매 순간 절망과 희망의 조각들이 마음을 스쳐 지나갔다.


손에 들려 있던 동태를 뒷베란다에 던져 버렸다. 지금 동태가 중요한 게 아니다. 속에서 끝없이 올라오는 두려움에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진규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급한 일이 있으니 얼른 집으로 오라고 했다. 전화기를 붙잡은 손은 여전히 가늘게 떨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게 아니라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기다림은 길어지고 마음은 타 들어갔다. 누구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 거실 소파에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있다. 안절부절못한 채, 애꿎은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20시간 같은 20분이 흘렀다. 지수의 부축을 받으며 서울로 향하는 차에 탔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지수 아빠 어떡해, 응? 어떡해...’ 그저 중얼거릴 뿐이었다. 부디 큰 사고가 아니기를, 별 일 아니기를, 그저 해프닝이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도착해 보니 진규의 수술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오히려 전쟁통 같은 대학병원 응급실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흰 가운 입은 사람들과 쉴 새 없이 실려 들어오는 환자들, 그리고 기다림에 지친 보호자들의 잔뜩 화난 목소리와 한쪽 구석에서 들리는 울음 섞인 곡소리에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이런 전쟁통 한가운데에 우리 진규가 있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무너지면 진규는 못 일어나겠구나. 반드시 우리 아들 데리고 집에 가야겠다.’


뜨거웠던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차분해졌다. 수술을 마칠 때까지 가족들과 함께 기다리는 동안, 진규가 잘못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수술이 잘 끝나고 완전히 회복해서 활짝 웃고 있는 진규의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솔직히, 두려웠다. 진심으로 두려웠다.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진규가 잘못될 것만 같아 정말 무서웠다. 여기서 내가 조금이라도 진규가 잘못되는 상상을 하고 그것이 현실로 이어진다면 그 상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난 못한다.


‘진규는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말자. 우리 아들은 하나님이 살려주실 거야.’


나는 원래 하나님과 그리 친한 편은 아니었다. 일요일에만 겨우 교회에 출석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자기 방어면 어떻고, 자기 합리화면 어떠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하나님을 찾겠는가. 진규를 살려만 준다면 하나님이든 뭐든 좋았다. 툭 건들면 바스러질 것만 같은 나를 지탱해주고 있는 단단한 믿음이었다. 다른 가능성은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새벽 무렵, 담당의사가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진규의 의식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기약 없는 중환자실 앞 벤치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나님, 아시지요... 당신은 아시지요... 당신은 아시지요...’


병원 불이 하나둘씩 꺼지고 공기조차 무거운 듯한 저녁이 찾아오면, 나는 텅 빈 외래 진료실 앞 복도로 향했다. 어두컴컴하고 음산한 복도를 하염없이 걸었다.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 많은데, 털어내고 싶은 감정에 숨 막혀 죽을 것 같은데, 속이 썩어 문드러질 것만 같은데, 아버지든 어머니든 친구든 누구든 붙잡고 왈칵 쏟아내고 싶은데... 혼자 중얼거리며 밤새 울고 왔다.


하루에 두 번 정도 면회 시간이 있었다. 저 문 너머에 있는 진규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중환자실 규정상 한 번에 세명이상 출입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진규를 찾아준 많은 병문안 손님들을 세 명씩 한 조로 나눠 들여보냈다. 하지만, 항상 네 명이 들어갔다.


“나 말리지 마. 어떻게든 들어갈 거야. 내 새끼 내가 보고 와야지. 지금 뭐가 중요한데.”


나는 만류하는 진규아빠를 뿌리치고 중환자실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침대에 팔다리를 꽁꽁 묶인 채 가냘프게 숨만 헐떡이는 진규가 있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수액을 온몸에 꽂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나는 진규 귀에 입을 갖다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진규야, 걱정하지 마. 하나님이 살려주실 거야. 엄마 곧 올게. 잠시만 여기서 기도하고 있어.”


평소 진규와 나는 통하는 부분이 참 많았다. 눈빛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알아차리는 그런 사이말이다. 그래서였을까. 눈을 꼭 감고 있던 진규는 주르륵 흐르는 눈물로 내 말에 알겠다고 답했다.


진규 아빠와 지수가 먹을 음식들과 입을 옷들을 챙겨주고 전주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급하게 연차를 내고 올라왔지만,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중환자실을 등지고 떼는 발걸음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진규 곁을 지켜줘야 할 것 같아서, 그래야 진규가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진규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병원을 떠나는 모든 순간이 괴로웠다.


집은 그대로였다. 현관도, 소파도, TV도 모두 제자리에 있는데, 많은 것이 달라져 버렸다. 나 홀로 덩그러니 남았다. 지난 5일 간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떠올려 본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아주 지독하고 고약한 악몽을 꾼 것 같다.


“아... 동태찌개...!”


생선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뒷 베란다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던 동태 썩은 냄새가 온 집안에 퍼져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베란다에 있던 정성껏 키워 온 식물들마저 시들어 죽어 가고 있었다. 식물들이 집주인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집은 그대로가 아니었다.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썩은 동태를 비닐에 싸서 버렸다. 베란다와 거실 창문을 열고, 말라 있는 식물들에게 다시 물을 주었다.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맑은 바람이 은은하게 스며들어와, 베란다 구석구석에 고여 있던 악취를 말끔히 걷어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생기가 돌고 식물들은 한결 푸르른 숨결로 깨어났다.


그렇다. 너는 틀렸다. 우리 진규는 의식을 회복했고 살아났다. 언제나 그랬듯이 웃으며 돌아올 것이다. 우리 가족의 행복한 일상을 절대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해피엔딩은 나의 것이다.


솔직히 내일 아침이 조금 두렵다. 나 홀로 맞이해야 할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 한밤 중에 나쁜 소식이라도 들려온다면, 혼자 견뎌낼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나는 맞서 싸울 것이다. 이겨내고 꿋꿋하게 살아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환자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우리 진규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keyword
이전 10화걱정하지 마, 우리 아들 내가 데리고 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