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지 마, 우리 아들 내가 데리고 살 거야

[나는 의시가 되기로 했다_chapter2]

by 이진규
“너 이 새끼, 누구야!”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20대 중반에 입사해서 내 인생 젊은 날을 꽃피웠던 회사를 등지고 나온 지도 벌써 1년이나 지났다. 월급이 올라 세상 다 가진 듯 기분 좋았던 날도, 승진 경쟁에서 밀려 쓰린 속을 소주 한잔으로 씻어냈던 날도, 거나하게 취해서 비틀리며 집에 걸어오는 나를 잠옷차림으로 마중 나온 진규를 보며 미소 지었던 날도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다. 지난 30년이 3분처럼 흘러가버렸다.


인생은 60부터라고 했던가. 얼마 전부터 함께 퇴사한 선배와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젊고, 아직 세상은 넓다. 최소한 손주 보기 전까지는 더 일하고 싶었다. 6개월 놀았으면 충분히 놀만큼 놀았으니 이제 다시 꿈틀댈 시간이다. 그렇게 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도서관으로 나서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책을 뚫어져라 보고 있어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도서관에 꼼짝없이 앉아 있노라면 엉덩이가 들썩들썩 좀이 쑤신다. 온몸의 세포가 공부를 거부하는 게 분명하다. 집중이 안될 때 억지로 버텨봤자 효율이 오르지 않는다. 머리가 무거워진 걸 보니 무언가 많이 들어가긴 했나 보다. 이럴 땐 엎드려 자는 게 최고다. 푹신한 수험서 위에 머리를 대고 스르륵 눈을 감는다. 공부에 지친 나를 위해, 그리고 집중할 미래의 나를 위해.


‘띠리리리’


아차, 휴대폰을 무음모드로 바꾸는 것을 깜빡했다. 시끄럽게 울리는 책상 위 휴대폰을 낚아채 품속에 숨기고 열람실을 빠져나왔다. 처음 보는 낯선 번호가 찍혀 있어 의아했지만, 일단 받았다.


“진규 아버님 맞으신가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진규 대학원 연구실 선배입니다.”

“네, 그런데요?”

“지금 진규한테 큰 사고가 나서 응급수술이 필요합니다. 병원에서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서 전화....”

“너 이 새끼, 누구야!”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도서관 복도에 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장난전화 혹은 보이스 피싱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자식을 들먹이는 아주 괘씸하고 악질인 놈들이라는 생각에 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다그쳤다. 솔직히,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불안한 마음에 화낼 곳이 필요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차분하고 진지한 동시에 미세하게 떨리는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 단순한 장난전화가 아니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그 연구실 선배라는 사람의 말에 집중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갑자기 뇌출혈 사고라니? 멀쩡하던 진규가? 왜?’


도서관 천장이 쏟아져 내렸고 나 역시 무너져 내렸다. 누구라도 붙들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아 함께 공부하고 있던 회사 선배에게 진규의 사고 소식을 전했다. 회사 선배는 어지럽게 펼쳐져 있던 내 열람실 책상을 정리해 주었고, 나는 진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난데.”

“응, 집에 오는 길이야?”

“지금 집이야? 진규한테 큰일 났다고 하니까 어디 가지 말고 지수랑 집에 있어 얼른 갈게.”

“....”


진규 엄마 목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내가 무너져서는 안 된다. 내가 중심을 지켜야 한다. 내가 무너지면 우리 가족이 무너진다. 두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 나쁜 생각은 금물이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운전대 앞에서 덜덜 떨던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던 회사 선배가 대신 운전석에 앉았다. 집에 들러 기다리고 있던 진규 엄마와 누나 지수를 태우고 우리는 전주에서 서울을 향해 달렸다. 출발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진규 수술을 맡은 신경외과 의사입니다. 수술을 진행하게 되면 부작용이...”

“선생님, 지금 진규 상태는 어떤가요? 얼마나 위험한가요? 죽을 수도 있나요?”

“아버님, 운이 좋아야 살고요, 살아도 반신불수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살려만 주세요 선생님. 최대한 잘 부탁드립니다.”


지옥 같던 3일이 지났다. 의식 없이 수술실로 실려 들어가던 진규 얼굴을 멍하니 볼 수밖에 없던 순간도,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기 만을 기다리며 초조하게 수술실 문 앞을 지키던 순간도, 수술을 마친 진규가 의식을 회복하기를 기다리며 중환자실 앞 벤치에 누워있는 지금 순간도 모두 꿈 같이 느껴진다. 자고 일어나면 모두 사라질 그런 꿈 말이다.


그저 악몽이었으면 좋겠다. 아주 고약한, 다시는 상상도 하기 싫은 그런 악몽 말이다. 다시는 떠올리기도 싫다. 하지만, 악몽이라도 좋으니 제발 현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진규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겉으로는 씩씩한 가장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 진규 엄마와 누나가 나쁜 생각을 하지 않도록 내가 지켜야 한다. 한 번 더 다짐하며 눈물을 속으로 삼킨다. 그러다 문득 진규의 휴대폰 배경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사진 속 진규가 셀카봉을 향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아들의 밝은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끈이 끊어져버렸다. 참아왔던 눈물이 흘러넘쳐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너무 이쁜 우리 아들인데... 똑똑하고 잘난 우리 아들인데... 우리 자랑거리인 아들에게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저 중환자실에 하루 종일 누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팔다리가 다 묶여서 얼마나 답답할까...’


행여 다른 가족들이 들을까 싶어 벤치 한쪽 구석에서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수도관이 터진 것처럼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한 바탕 실컷 울고 나니 진규 엄마가 보였다. 조용히 화장실에 가서 혼자 울고는 아닌 척 눈물을 닦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나만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지수 아빠, 우리 진규 회복 못하면 어떡하지?”


진규 엄마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한 번 더 센 척해보기로 했다. 아니, 설령 진규가 예전처럼 활짝 웃지 못한다고 해도, 눈만 꿈뻑이며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해도 괜찮았다. 나는 우리 진규, 지수의 아빠이고, 우리 혜숙이의 남편이고 우리 집안의 가장이다.


“걱정하지 마, 우리 아들 내가 데리고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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