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치료실로 향하는 청춘남녀의 경쾌한 발걸음

[나는 의사가 되기로 했다_chapter 1]

by 이진규


일주일쯤 지났을까.

병원 생활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이름 옆에 쓰여 있는 담당과 이름이 신경외과에서 재활의학과로 바뀌었다. 이제 죽고 사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모양이다. 뻣뻣한 자세로 문 앞을 지키는 경비병처럼 항상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던 아빠의 표정도 조금은 밝아 보인다. 한껏 가벼워진 아빠의 얼굴을 보는 내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졌다.


병원의 아침 해는 세상보다 일찍 뜬다. 흰 가운 입은 사람들이 바다의 밀물처럼 순식간에 병실로 들이닥치는 소리에 슬며시 눈을 뜨곤 했다. 당장이라도 눈을 감을 듯 반쯤 감긴 눈꺼풀 아래 짙게 내린 다크서클, 그리고 옆구리에 A4용지 한 뭉치를 낀 사람들이 내 앞에 섰다. 그리고는 이해할 수 없는 영어 섞인 말들을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중년의 교수님이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인자한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어디 불편한 데 있어요? 식사는 잘하고 있지요?”

“네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교수님.”

“자, 팔이랑 다리 힘 한번 줘볼까요? 여기 꽉 잡아보세요.”


교수님의 두툼한 검지 손가락을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교수님은 만족한 듯 고개를 한 번 더 끄덕이시더니, 흰 가운 입은 사람들을 이끌고 썰물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안도 섞인 아빠의 숨소리와 아침식사로 들뜬 나의 마음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아침밥이 담긴 식판을 받자마자 활짝 피었던 내 마음은 이내 시들었다. 코딱지 만한 고기반찬과 산더미같이 쌓인 콩 섞인 밥, 그리고 보물이라도 숨겨놓은 듯 무성한 풀떼기들. 풍선처럼 부풀었던 내 마음에 구멍이라도 난 듯 금방 쪼그라들었다.


“누나, 초코땡 사러 가자.”


초코땡과의 만남이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분명 하나님이 보낸 천사가 두고 간 선물이었다. 달콤하고 꾸덕한 초콜릿이 범벅된 별 모양의 과자를 입안에 털어 넣을 때면, 답답한 병실 안으로 향긋한 바람이 불어왔다. 입안에서 스르륵 녹아 사라질 때, 내 머릿속에는 우아하고 부드러운 선율이 흘러넘쳤다. 황홀한 그 멜로디.


어디서 소문이라도 났는지, 병문안 온 손님들의 손에는 항상 초코땡이 들려있었다. GS에서 근무하는 사촌 누나는 본사에서 박스채로 가져다주었고, 연구실 선배들은 학교 편의점을 매일 싹쓸이해 왔다. 매일 바닥나는 초코땡 재고에 이상함을 느낀 편의점 점주가 본사에 재고를 늘려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나는 누나 손을 잡았다. 침대 캐비닛에 과자가 이미 가득했지만, 상관없었다. 초코땡 사러 지하로 가는 그 길이 참 좋았다. 칙칙한 병동 천장은 예쁜 분홍빛 하늘로 변했고, 반들거리는 병동 바닥은 꽃길처럼 아름다웠으며 썩 반갑지 않은 약물 냄새도 그때만큼은 기꺼이 맡아줄 수 있었다. 어색한 걸음걸이에 넘어질 것처럼 휘청거려도 재밌었다. 그렇게 매일 아침 누나와 봄날의 소풍을 떠났다.


사 온 과자를 침대에 앉아 마지막 가루까지 입안으로 탈탈 털어 넣는다. 그리고는 슬쩍 눈을 감고 몸을 기대어 잠든 척한다. 이쯤이면 귀찮은 운동 치료하러 갈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늑장 부려본다.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드는 누나의 다급하고 애처로운 손길이 느껴진다. 못 이기는 척 스르르 몸을 일으켜 다시 누나 손을 잡고 나선다.


운동 치료실은 매일 자기 자신과 샅바를 붙잡고 펼치는 거대한 씨름판 같다. 어떤 이는 휠체어에 앉아 십 수분째 엉덩이 드는 연습을 하는 가하면, 어떤 이는 누워서 조금이라도 움직여 보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안간힘을 쓴다. 보호자 손을 꼭 붙잡고 계단 오르내리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장엄한 표정에서 굳은 의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치료를 받는 게 아니었다.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진규 환자분, 이 쪽으로 오세요. 우리 테스트 한 번 해봅시다.”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우두커니 서 있는 내 손을 잡아 안쪽으로 이끌었다. 양팔을 벌리고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걸어보라고 했다. 온몸의 신경을 집중하여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몸은 자꾸만 왼쪽으로 기울어져 휘청거렸다. 넘어지려 할 때마다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뒤에서 잡아주었지만, 10미터도 혼자 걷지 못했다. 속상하다.


“괜찮아요. 이번에는 앉았다 일어났다 해봅시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낑낑대는 노년의 환자들을 보며 아직 젊고 파릇파릇한 나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애써 고개를 돌려왔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고작 몇 분 힘주었다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내 다리가 말해주고 있었다. 혼자서는 제대로 앉지도 걷지도 못하는 현실을.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언젠가 회복할 수 있는 걸까?’


그날 밤은 유난히 어두웠다. 나는 한 동안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저 부끄럽고 야속한 오늘이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내 목을 조여 온다. 기분을 풀어주려는 누나의 장난 섞인 농담도, 현실적인 아빠의 진지한 충고도 들리지 않는다. ‘안 될 거야’라는 마음의 소리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된다. 괴롭다.


“여자친구여?”

“젊은 총각이랑 이쁜 아가씨가 여기는 어떻게 온거여?”

“아니, 머리는 어쩌다가 다친거여?”


다음 날, 운동치료실에는 누나와 나에 대한 소문이 퍼져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새파랗게 어린 20대 젊은 남녀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반갑고도 신기하셨던 모양이었다. 우리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위아래로 쳐다보며 한 마디씩 질문을 던지셨다.


“아이고, 하마터면 귀한 고려청자 깨질 뻔했고만.”


내 사고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할아버지의 무심한 한마디에 운동치료실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누군가의 슬픔이 다른 이의 웃음꽃으로 피어나는 아이러니, 그것이 삶의 묘미인지도 모른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 한 달이 지났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반갑게 인사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나는 이미 한 배를 탄 동료였다. 내가 넘어지면 속상하다며 안타까워했고, 내가 잘 걸으면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우리는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했고 어느새, 나의 온전한 회복이 우리 모두의 바람이었다. 어두웠던 운동치료실은 밝은 놀이터가 되었고, 의기소침했던 나는 의욕 넘치는 모범생이 되었다.


재활치료는 나 자신과 벌이는 끝없는 줄다리기와 같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루에 딱 한 뼘씩만 나아진다. 아니, 그렇게 믿으면서 계속한다. 올바른 방향조차 알 수 없는 이 지독한 여정 속에서 누구라도 지치기 마련이다. 삶의 끝자락에서 벼랑 끝에 내몰린 어르신들에게는 마지못해 사는 퍽퍽한 일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나이에 큰 사고를 당한 나를 향한 애잔함과 나라도 온전히 회복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버무려진 눈동자들이 언제나 나를 향하고 있었다. 질병의 풍파가 아무리 거세고 힘겨워도 뭉개지지 않고 크게 뻗어 나갔으면 하는 싱그러운 봄날의 새싹을 바라보는 그 눈빛. 지는 해와 뜨는 달처럼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눈빛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아갔다.


밤이 아무리 길어도 새벽은 반드시 온다. 여전히 어두운 새벽일지라도 마주한 새벽을 가슴으로 껴안아야 한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지만, 언제나처럼 묵묵히 살아내야 한다. 울면서 계속 걸어야 한다. 눈물이 발걸음을 적셔도, 아픔이 영혼을 할퀴어도,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러다 보면 뜻하지 않은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운동 끝나고 먹는 초코땡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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