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사가 되기로 했다_chapter 1]
나는 다시 태어났다.
정말로 그랬다. 이전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길 위에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넓은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자고, 먹고, 싸고, 우는 것이 전부인 삶.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찾는 목소리는 내 것이면서도 낯설었다. 성인의 몸에 갇힌 갓난아기가 따로 없었다.
창피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여겼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간신히 이쪽으로 건너왔으니까. 나는 결국 이겨냈고, 신은 내게 삶이라는 선물을 다시 건넸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 비쌌다.
반쯤 감긴 오른쪽 눈과 빡빡 깎인 머리카락을 거울에서 마주할 때마다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었다. 특히 머리를 가로지르는 선명한 수술 자국은 나를 더 작아지게 했다. 스무 살의 청춘에게 남겨진 ‘영광의 상처’라기엔 너무나 가혹한 낙인이었다.
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 있었다. 대학시절, 내 별명은 '새 부리'였다. 다양한 사람들과 토론하고 수다 떠는 것을 좋아했던 탓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내 생각을 딱 부러지게 설명할 때면 벅찬 뿌듯함에 조별과제에서 모두가 기피하는 발표를 도맡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그 새 부리는 없다. 말은 입 안에서 뭉개지고, 온 힘을 다해 말하지 않으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날카롭고 당차게 말하던 새 부리는 부러졌고, 이제는 소리 없이 허공을 쪼는 그림자만 남았다.
병원 로고가 새겨진 환자복은 여전히 어색했다. 익숙한 길을 잃고 낯선 오솔길을 헤매는 것처럼, 널찍한 소매 사이로 팔을 뻗었을 때 좌우의 느낌이 달랐다. 일어서서 걸을 때면 더 선명해졌다. 왼발이 질질 끌려 몇 걸음 못 가 휘청거리며 쓰러지곤 했다. 마음을 다잡고 온 힘을 다해 두 발에 힘을 주고 땅을 박차며 점프해 보았다. 하지만 마음만 앞설 뿐, 변기 옆 난간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꼬꼬마 시절, 키 크는데 좋다는 아빠 손을 잡고 처음 농구 코트를 밟았다. 그때부터 초등학교 전국대회에서 대학교 과대항 농구대회까지, 내 학창 시절은 농구와 함께였다. 남다른 재능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슛터로서 공을 던지는 일만큼은 자신 있었다. 먼 거리에서 슛을 던질 때 손끝을 떠난 농구공이 그리는 완벽한 포물선과 그물을 가를 때 나는 소리는 지금도 내 척추를 타고 전율이 흐르게 한다.
하지만 농구도 이제는 빛바랜 추억 속 일상일 뿐이었다. 재능이 없으면 노력하면 된다고, 슛은 많이 쏴 본 사람이 가장 잘 쏜다고 다짐하며 땀 흘렸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슬프지만 받아들여야만 했다. 더 이상 내 인생에 농구는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음식을 먹을 수는 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엔 콧속에 꽂아놓은 관으로 밥을 먹었다. 느글느글한 액체가 콧구멍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감각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불쾌함이었다. 어느 날 커다란 검사 장비 앞에서 비리고 쓴 덩어리를 꿀떡꿀떡 삼키라고 했다. 더럽게 맛없었지만 잘 먹는 시늉하길 잘했다. 그날로 콧줄을 빼고 식사를 죽으로 바꿔주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 죽의 마지막 쌀알 하나까지 꼭꼭 씹으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도 잠시, 그 밍밍한 맛에 금세 질려버렸다. 짭조름한 맛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물에 흠뻑 젖은 종이 같은 죽을 하루 세 번 씹어본 사람이라면 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다치기 전, 나는 술자리 체질이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술을 핑계 삼아 마음의 빗장을 풀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 술자리는 내게 소중한 인연을 맺는 기회의 장이자 놀이터였다. 술자리 없는 사회생활은 상상할 수 없었다. 마치 영혼의 일부가 잘려나간 것만 같았다.
세상사 뭐든지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고 했다. 비록 지금은 죽이지만, 언젠가 고슬고슬한 흰쌀밥에 소고기 미역국을 곁들여 먹을 테다. 고등어의 가시를 발라내어 바삭한 껍질과 뽀얀 속살을 먹을 것이고, 노릇노릇한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한입에 털어넣을테다. 마지막으로 입가심용 시원한 소주 한잔까지. 그래, 죽다 살아났는데 흰 죽이 대수랴. 까짓것, 열심히 먹어주지 뭐.
"이진규, 아 해봐."
"저리 가! 이 꼬장꼬장한 아저씨야!"
"누나가 먹여줄까? 아 해보자."
"응? 누나도 같이 먹을래? 밥 먹고 나랑 같이 지하로 놀러 가자."
당시 나는 감정 조절이 참 어려웠다. 새로 시작된 여정에서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길을 더듬는 나그네 같았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지나치게 솔직했다. 무뚝뚝한 아빠의 말에 울컥하면 날것의 언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반면, 따스한 누나의 말에는 간이고 쓸개고 다 떼어줄 것처럼 친절해졌다. '똥', '방귀' 같은 유치한 단어에 실실 웃기도 했다.
어둠이 내린 밤이면, 고요한 병동에는 간호사들의 타자 소리만 울려 퍼졌다. 나는 한 손에는 누나의 손을, 다른 한 손에는 수액 거치대를 붙잡고 왼발을 질질 끌며 병동 복도를 어슬렁거렸다. 간신히 간호 데스크에 앉아있는 간호사 앞에 멈춰 섰다.
"저기요, 아침밥 언제 나와요? 나 배고픈데..."
"이진규 환자분, 내일 아침에 나오겠죠?"
"아이 씨, 나 무시하는 거예요? 저 집에는 언제 갈 수 있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얼른 데리고 들어갈게요."
부끄러움은 언제나 누나 몫이었다. 이후에도 병원 곳곳에서 작은 일탈을 시도했지만, 누나와 아빠는 항상 슈퍼맨처럼 나타나 나를 데려갔다. 나는 어디서나 말썽꾸러기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필사적으로 아등바등거렸다. 하루아침에 깔깔 웃으며 수다 떨 수도, 마음껏 뛰어다닐 수도, 먹고 싶은 음식을 맘껏 먹을 수도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내 삶의 주인이고 싶었다. 항상 남들보다 앞서 왔다고 자부했는데, 눈을 떠보니 출발선 저 뒤로 밀려나 있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케케묵은 병실이 아닌 대학원이었다.
우선, 혼자 지하철 타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병실에서 복도로, 복도에서 병원 로비로, 병원에서 지하철로. 그렇게 한걸음, 또 한 걸음,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약속시간에 늦어 연착되는 지하철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그런 흔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일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