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벌인 처절한 사투

[나는 의사가 되기로 했다_chapter 1]

by 이진규
끝없는 악몽 속에서, 고통의 심연을 영원히 헤엄치는 듯했다.

삐... 삐... 삐...


낯선 소리가 나를 깨웠을 때, 희미한 안개가 걷히고 세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과나무와 잔디밭, 마당과 울타리가 어우러진 빨간 벽돌 지붕의 집들. 마치 어린 시절 미국 영화에서 보았던 그런 교외의 풍경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각 집마다 잔디밭 중앙에 우뚝 선 적갈색 사과나무 아래에는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움직임 없이, 그저 나무를 바라보는 공허한 눈동자만이 남아있었다.


삐... 삐... 삐...


사과나무에서 뻗어 나온 관들은 서로 엉켜 뱀처럼 꿈틀거렸다. 하얀색, 노란색, 빨간색 액체가 각기 다른 속도로 관속을 흐르고 있었다. 관들의 끝은 모두 누워있는 사람들의 오른팔에 꽂혀 있었다. 나무가 그들의 생명력을 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삐... 삐... 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졌고 목은 타들어 갔다.


“물... 물...”


말을 하려는데, 입 안이 사막처럼 말라 있었다. 자연스레 시선을 아래로 내렸을 때, 등골이 얼어붙은 것처럼 오싹했다. 내 오른팔에도 저들처럼 같은 관들이 박혀 있었다. 내 몸에서 물과 피가, 내 생명이 그 사과나무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안돼... 안돼! 살려주세요!”


관을 하나씩 뽑기 시작했다. 피부가 찢어지는 듯하고, 피가 터져 나왔지만 상관없었다. 온몸을 뒤덮는 통증보다 더 큰 공포가 나를 지배했다. 살아야 한다. 탈출해야 한다.


“이진규 환자 또 저러네... 얼른 가서 잡아!”


어디선가 하얀 그림자들이 달려와 내 몸 위로 달려들었다. 한 명은 내 손목을 움켜쥐었고, 다른 두 명은 내 사지를 침대 모서리에 꽁꽁 묶었다. 팔다리가 빠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제발... 살려주세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내 처절한 절규에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묶인 팔다리를 풀려고 용을 쓰던 나는 제풀에 지쳐 포기하고 다시 잠들었다.


삐... 삐... 삐...


낯선 천장과 희끄무레한 형광등 불빛, 그리고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 누군가 내게 말 거는 듯한 소리에 눈을 떴다.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어떻게 다치셨어요? 말해보세요.”


목이 타들어갔다. 무언가가 내 목을 찌르고 있었다. 말을 하려 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응...”이라는 단음절만 겨우 내뱉을 수 있었다.


“지금 중환자실에 있어요. 기억나요?”


모르겠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목이 따가울 뿐이다. 짜증이 차오른다.


“물 주세요 물... 목말라...”

“안 돼요. 지금 물 못 마셔요.”


짜증이 분노로 바뀌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물조차 주지 않는 건지, 사람을 이렇게 고문해도 되는 건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 X 같은 X...”


내 입에서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이성은 사라지고, 오직 본능만 남았다. 갓난아이처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울부짖을 뿐이었다. 내 한 몸 지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없이 다시 눈을 감았다.


삐... 삐... 삐...


빛과 어둠이 뒤엉켰고, 낮과 밤이 뒤섞였다. 의식이 돌아오면 흰 옷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 내 몸에 차가운 액체를 주입했다. 다시 의식을 읽고 또다시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현실과 꿈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한 채 방향을 잃은 돛단배처럼 의식의 바다를 떠다녔다.


그때, 안갯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규야, 지낼 만하니?”


낯익은 목소리였다. 희미한 안개 사이로 얼굴이 보였다. 싱긋 웃는 표정의 대학원 지도 교수님.


“교수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대학원에 들어온 지 일주일도 안 되어 대형사고를 쳤다는 생각에 뭐가 미안한지도 모르면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벌떡 일어나 인사를 드리려 했으나, 결박된 사지는 허공을 쳐댈 뿐이었다.


“힘들지?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구나.”


교수님의 따스한 손이 내 손을 감쌌다. 그 순간만큼은 잠시 안정을 찾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교수님은 구약 성경의 욥기를 이야기하셨다.


“아버님, 진규는 정말 신실한 친구입니다. 주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선물이지요. 구약의 욥처럼,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 준비한 연단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이 떠나자 더 큰 불안이 밀려왔다. 나를 믿어주는 교수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태평하게 누워 있을 때가 아니다. 일어나야 한다. 논문을 읽어야 한다. 실험을 해야 한다.


“나 논문 읽어야 해요. 얼른 논문 주세요.”

“환자분, 갑자기 무슨 논문이에요. 누워계세요.”
“X발, 그럼 이거라도 풀어줘! 내 몸인데 왜 묶어놔!”

“하... 안 되겠다. 보호자 부르자.”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이가 내 적이 되었다.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있는 힘껏 난동 부리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엄마... 엄마...”


절박한 외침이 목구멍을 타고 나왔다. 그때,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아들. 괜찮아, 괜찮아.”


절망 섞인 안개 너머로 들어오는 빛, 엄마가 내게로 달려왔다. 태양이 뜨는 아침이든, 달빛이 내리쬐는 밤이든 엄마는 언제나 내게로 왔다. 폭풍우 같던 마음이 잔잔한 호수가 되었다. 엄마의 존재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이상한 사과나무도, 거추장스러운 관들도, 흰 옷 입은 사람들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내 곁에 엄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 영혼은 안전했다.


삐... 삐... 삐...


열흘째 되는 날, 환한 빛이 중환자실에 가득했다. 흰 가운 입은 의사가 내 앞에 섰다. 이번에는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가 내 목에 깊숙이 박혀있던 관을 조심스럽게 빼냈다.


“괜찮으세요, 진규 씨? 이제 일반 병실로 갑시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아직 통증이 남아있었지만, 내 의지로 마시는 공기는 달콤했다. 전쟁 같았던 열흘간의 사투가 끝나고 받은 선물 같았다. 그 사과나무는 더 이상 내 생명을 빨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이겼다. 끝내 살아남았다.


목숨을 건 끈적한 씨름판이 마침내 끝났다. 죽음은 나를 쓰러뜨리려 했지만, 나는 안간힘을 다해 버텨냈다. 어둠의 손길을 뿌리치고 빛으로, 새로운 삶으로 나는 달려가고 있었다.


내 영혼은 비로소 자유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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