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서울 새벽, 끝나지 않는 귀가

[나는 의사가 되기로 했다_chapter 1]

by 이진규


서울에서의 첫날밤은 제법 추웠다.

어제 겨우 이사를 마치고 뜨끈한 온돌 위 이부자리 속에 몸을 묻자 얼어붙었던 몸이 녹아내렸다.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미로 같은 동네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내일 첫 출근, 새벽부터 서둘러야 할 텐데 마음은 이미 두근거렸다.


‘다 잘 될 거야... 이진규 파이팅!’


서울대학교 캠퍼스는 정말 넓었다. 버스는 웅장한 정문을 지나 굽이굽이 오르막길을 오르더니 종점에서야 멈춰 섰다. 숨 가쁘게 가파른 계단을 올라 연구실 문을 열자 여러 쌍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심장이 멎을 듯 뛰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출근한 이진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의자에서 일어난 선배가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포항에서 왔다면서? 먼 길 왔네.”

“네, 어제 낙성대역 근처로 간신히 이사했습니다.”

“잘됐다. 퇴근할 때 나랑 같이 가면 되겠다. 나도 너랑 같은 학교 출신이야.”


안내받은 자리에 짐을 풀자마자 나는 선배 옆에 찰싹 달라붙어 실험 장비들을 익히고 관련 논문들을 찾아 읽었다. 갓 태어난 송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뛰노는 것처럼, 불타는 열정 그 자체였다.


“진규, 니 술 잘 묵나?”


복도에서 걸음을 멈추던 부산 출신 선배가 구수한 사투리를 툭 던졌다.


“네, 형님. 저 소주 세 병은 먹습니다.”

“이 놈 이거, 순진하게 생겨가지고 학교 댕길 때 쫌 놀았는 갑네. 이따 환영회 꼭 온나.”


한국에서는 술잔을 부딪히며 이름보다 먼저 마음을 나눈다. 적당히 취기가 오르자 딱딱한 체면은 사라지고, 투명한 술잔에 진솔한 내면이 비쳤다. 비록 오늘 처음 본 사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가 물과 피를 나눈 형제자매였다.


희미한 전구빛 아래, 웃음과 중얼거림이 안개처럼 떠돌았다. 붉게 상기된 얼굴들과 풀린 눈동자들, 그리고 누군가의 어설픈 건배 제스처가 공중에 햇살처럼 퍼져나갔다. 나는 알딸딸한 취기에 실려 느릿느릿한 시간 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점점 더 깊은 바다에 빠져들듯, 의식은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진규야, 진규야! 정신 차려! 너 집이 어디야?”

“에..? 낙성대로 O길 OO번지 OO호...”

“얘 일단 택시 태워 보내자. 얘 신발은 어디 갔어?”

“기사님, 이 친구 낙성대에 내려주세요.”


내 열정은 술자리에서도 식을 줄 몰랐고, 스스로의 의식마저 태워가고 있었다. 선배들이 건네는 잔을 넙죽 받아 마시기 바빴을 뿐인데, 어느새 나는 택시 뒷좌석에 인형처럼 기댄 채 의식이 오가고 있었다. 택시는 어둠 속 어딘가에 멈춰 섰고, 나는 그저 몸이 이끄는 대로 비틀거리며 내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현실이 나를 덮쳤다.


‘뭔가... 잘못됐어.’


그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이진규 씨, 약 드실 시간이에요.”


간호사의 목소리에 과거의 기억이 흐려졌다. 병실 문이 열리고 하얀 유니폼을 입은 간호사가 약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꿈에서 깨어난 듯 나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백열등 아래 반짝이는 링거 주사액이 눈에 들어왔다.


“어떠세요? 열은 많이 떨어졌어요?”


나는 가냘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하려 해도 여전히 또렷하게 나오지 않았다. 간호사는 내 체온을 체크하고 약을 건넸다.


간호사가 나간 후 병실에 홀로 남았다. 침대 밑에는 병원용 슬리퍼만 가지런히 놓여있다. 평소 즐겨 신던 운동화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 맞다. 내 운동화...’


그날 밤에도 운동화는 없었다. 나는 양말만 신은 채로 택시에서 내려 길 위에 서 있었다. 영하의 밤공기가 발가락부터 얼어붙게 했다. 칼날 같은 바람이 불어오면 쪼그려 앉아 콩벌레처럼 몸을 움츠렸다. 별들조차 애처롭게 바라보는 듯했다.


“근데... 여기가... 어디지...?”


처음 보는 공원과 건물들, 그리고 버스 정류장. 주위를 둘러봐도 지나가는 이 하나 없이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혼란스러움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와 공포로 변했다. 술에 취한 탓에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졌고 의식은 희미해져 갔다.


흐릿해져 가는 시야로 ‘낙성대 공원’이라고 적힌 큰 간판이 보였다. 여긴 낙성대역이 아니라 낙성대 공원이었다. 비록 처음 와본 곳이었지만, 어차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는 심정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시꺼메진 휴대폰 화면을 아무리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거미줄처럼 조각난 화면은 이 녀석도 생사의 기로에 서있음을 말해주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발걸음을 옮겨본다.


‘설마 서울 한복판에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겠어?’


네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집을 못 찾았다. 발이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닥치는 대로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녔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끊어질 듯한 의식의 끈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골목길과 도로를 오르내렸다. 발을 헛디뎌 뒤로 넘어졌을 때는 머리가 깨질 듯 아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 나 자신과 싸웠다.


“아 진짜 추워 죽겠네. 어...? 택시! 택시...! 낙성대역으로 가주세요.”

“요기 코 앞에 역이요? 바로 앞인데…”

“네, 그냥 가주세요.”


살았다. 지나가던 택시를 붙잡았다. 겨우 몇백 미터 거리를 택시로 이동하자 익숙한 동네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도 하나둘씩 보였다. 긴장이 풀리자 꾹꾹 눌러왔던 서러움과 안도감이 터져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길을 잃어버린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행인들의 시선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는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뜨끈한 온돌 바닥에 뺨을 맞대고 누워 입고 있던 옷을 대충 벗어던졌다.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렇게 안간힘을 다해 붙잡았던 의식의 끈을 마침내 놓아주었다.


다음 날, 연구실 선배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나를 찾고 있었다.


“진규 전화 안 받아? 얘 무슨 일 생긴 거 아냐?”

“제가 택시 태워 잘 보내긴 했습니다.”

“술병 나서 아직 못 일어났나 보다. 집에 찾아가서 같이 저녁이라도 먹이자.”


따뜻한 선배들은 각자의 일을 미뤄두고 한 명의 막내를 찾아 나섰다.


“집 주소 아는 사람?”

“그때 술자리에서 뭐라고 했는데…”

“낙성대로… 어디였지…?”

"0길 맞아요. 분명히 0길이라고..."

"저는 00번지까지 기억납니다! 호수는..."


그들은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듯 각자의 기억을 조각조각 맞춰갔다. 그날 밤 내가 술자리에서 웅얼거렸던 집 주소를 방 호수까지 전부 기억해 내고는 내 자취방을 찾아냈다.


굳게 잠긴 빌라 앞에서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집주인이 나타났고 그들의 진지한 모습에 문을 열어줬다. 그들이 내 방 현관문 앞에 도착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도어록 비밀번호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여기가 맞는데...?”


선배들의 얼굴에 체념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다들 이만큼 했으면 할 만큼 했다는 무언의 합의가 흘렀다. 한 명, 두 명 등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어? 이거 그냥 열리는데요?”


가장 어린 선배가 무심코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문이 스르륵 열렸다. 문을 제대로 잠그지도 못한 채 정신없이 들어왔다는 듯 신발이 뒤집혀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멈췄다.


시퍼런 멍 자국이 새겨진 팔과 다리, 온돌바닥 위에 얼룩덜룩하게 말라붙은 핏자국, 벽 한쪽으로 내동댕이쳐진 패딩은 붉은 물감을 뒤집어쓴 듯했다. 방구석에는 깨진 휴대폰이 버려져 있었다. 그 모든 혼돈의 한가운데, 의식 없이 널브러진 내가 있었다.


검붉은 코피 자국과 투명한 액체가 뒤섞여 얼굴 한쪽을 덮고 있었다. 숨은 꺼져가는 촛불처럼 겨우 붙어 있었고, 피부는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진규야! 진규야! 일어나 봐!”

“으….”


희미한 신음소리, 그것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소리였다. 내 의식은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기적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그날 밤 놓아버렸던 의식의 끈을, 내가 다시 떨리는 손으로 붙잡은 것은 고요한 병실에서 열흘의 어둠이 지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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