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5호 4번 침대, 병문안 맛집 입원실

[나는 의사가 되기로 했다_chapter2]

by 이진규
‘오랜만에 근황 올려보네요!’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과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사진 속 나는 환자복을 입고 머리에 빵모자를 쓰고, 두 눈을 감은 채 핼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나가 찍어준 사진 중 가장 멀쩡해 보이는 사진이다. 내가 소리 소문 없이 갑자기 사라진 까닭에 친구들로부터 안부를 묻는 연락을 받아왔다. 나를 기억하고 걱정해 주는 고마운 마음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근황을 SNS에 공유했다.


그날부터였다. 중고등학교 동창들부터 대학교 동기, 선후배, 오스트리아 교환학생시절 외국인 친구들까지 연락이 쏟아졌다. 내 사진을 보고 다들 깜짝 놀랐다고 했다. 밀려드는 병문안 문의에 누나는 내 병문안 일정 매니저가 되었고, 내 병실은 병문안 맛집이 되었다.


“누나, 우리 내일 저녁 시간 괜찮지?”

“응, 내일 오전이랑 오후에 두 팀 있고 저녁에는 없어.”


시작은 연구실 선배들이었다. 하루도 빠지는 날 없이 병실에 찾아왔다. 매일 다른 조합의 선배들 서너 명이 퇴근길에 들렀다. 연구실에서 꽤 먼 거리의 병원까지 와주는 게 고마우면서 미안하기도 했다. 솔직히 연구실에 출근한 지 고작 일주일 밖에 안된 나에게는 과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내 걱정은 따로 있었다. 입학하자마자 대형사고를 친 사고뭉치로 낙인찍힐까 두려웠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해보자면, 나를 다시 받아주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선배들이 올 때면 나도 모르게 허리를 세우고 몸에 힘을 주고 있었다.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오 진규야. 이제 많이 돌아왔네? 하느님께 정말 감사하다.”


교수님의 깜짝 방문이었다. 중환자실 방문에 이어 두 번째다. 나는 딱딱하게 굳은 자세로 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대학원 입학 면접보다 더 떨렸다.


“네 교수님. 최대한 열심히 회복하고 있습니다.”

“병실에 하루 종일 있으려면 심심하지?”

“선배들이 매일 찾아와 주셔서 덕분에 지낼 만합니다.”


눈길을 돌려 교수님 주변 선배들을 쓱 둘러봤다. 흐뭇한 얼굴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잘 대답한 것 같다.

“그래, 남는 시간에 성경에 나온 욥의 이야기를 읽어봐. 그리고 로마서에는 환난이 인내를, 인내가 연단을, 연단이 소망을 낳는다는 말이 있어. 잘 생각해 보면 지금의 시간이 네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야.”


독실한 천주교 신자셨던 교수님 다운 숙제였다. 하지만, 내게는 어렵게만 들릴 뿐이었다. 내 관심사는 딱 하나였다. ‘나를 다시 받아 주실까?’


“교수님, 저 만약에 얼른 회복하면 다시 대학원에 돌아갈 수 있나요?”

“네가 성경 다 읽고 오면 생각해 볼게.”


교수님은 장난스러운 어투로 대답하셨다. 하지만, 마냥 가벼운 것도 아니었다. 병문안 전부터 생각해 오신 메시지가 그 안에 있다는 것은 분명히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성경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교수님의 무심한 듯한 대답 속에서 은근한 따스함이 느껴졌다.


교수님의 방문 이후 한결 마음이 편했다. 교수님에게 아픈 손가락도 손가락이어서 다행이었다. 알고 보니 교수님께서 선배들을 불러 모아 부탁을 하셨다고 했다. ‘진규가 온전히 회복해서 함께 연구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너희가 시간을 내서 진규를 좀 챙겨주면 좋을 것 같아. 연구만큼이나 중요한 일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나는 눈앞의 일만 보고 있었고, 교수님은 먼 곳까지 보고 계셨다. 교수님은 속 좁은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진규, 니 대가리 깨지고 이제 정신 좀 차렸나?”

“인마 이거 아직 멀었디. 고생 쫌 더 해야한디.”


대학 때 죽마고우처럼 지내던 동기 형들도 병실로 찾아왔다. 얼큰하게 술에 취해 밤을 꼬박 새우고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기숙사에 들어오곤 했던 형들이다. 찰진 욕이 버무려진 경상도 사투리는 언제 들어도 구수하다. 먹은 것도 없는데 배가 부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이 있다. 갓 성인이 된 스무 살은 누구나 아프다. 스무 살이 혼자 아프면 슬프지만, 아픈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면 추억으로 남는다. 그 추억이 양분이 되어 멋진 꽃을 피울 수 있다. 그만큼 스무 살을 함께 보내는 이들은 중요하다.


형들은 내게 그런 이들이었다. 우리는 매주 수요일 저녁 학생회관 거울을 보며 춤연습을 했고, 도서관에서 밤새 과제를 마치고 아침수업에 가기도 했다. 충청북도 충주부터 경상북도 포항까지 눈물, 콧물 흘려가며 8박 9일간 함께 걷기도 했다. 얼굴만 봐도 반짝였던 순간들이 떠올라서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니 예전에 술 처먹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 술이 그래 좋드나?”

“형, 여기 병원이야 조용히 좀 해.”

“알았다. 닥치고 이거나 무라.”


고소한 기름 냄새와 매싹 하고 달큰한 냄새, 양념치킨이었다. 한국인에게 치킨은 항상 옳다. 즐거운 순간에는 꼭 치킨이 함께한다. 출출한 배를 달래는 야식으로 치킨을 이길 음식은 없다. 장소는 달랐지만, 우리는 여전했다. 이곳에서도 치킨은 치킨이었다. 양념치킨은 언제나 맛있었다. 제일 처음 튼실한 닭다리를 집어 살코기를 뜯을 때만큼은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었다. 시험 전날 밤샘 공부를 앞두고 형들과 배를 채우던 날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찌질하지만 찬란했던 그날. 그날도, 오늘도, 우리는 함께다.


“하... 하이...? 아니, 헬로..?”

“여기가 진규 병실 맞아요?”


금발 머리와 하얀 피부, 푸른 눈동자를 가진 남녀가 병실에 나타났다. 어눌한 한국어 발음으로 물었다. 내가 누나와 안과 외래 진료받으러 병실을 비운 사이, 혼자 남겨진 아빠가 그들을 맞았다. 오스트리아에서 친하게 지냈던 미히 누나와 크리스 형이었다.


유럽에서의 시간은 정말 꿈같았다. 빡빡한 과제와 시험에 치여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흘러가던 한국에서의 학기와는 달리, 휴가라고 느껴질 정도로 여유로운 한 학기였다.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 생소한 언어, 동화 속에서나 본 듯한 길가 주택들, 오스트리아는 한국과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신선하고 서늘한, 가슴 깊숙이 들이마시면 맑은 기운이 몸 안으로 스며드는 듯한 그 아침 공기는 특히 달콤했다.


나는 그곳에서 미히와 크리스를 만났다. 그들은 한국을 좋아하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었고, 내가 그곳에서 처음 만난 오스트리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음식을 좋아했고, 나는 그들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그들은 나를 데리고 주변의 경치 좋은 곳들을 소개해 주었다. 우리는 언어도, 문화도 달랐지만, 서로가 특별한 존재였다. 저 멀리 지구 건너편에 살고 있는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놀랍지만, 친한 친구가 된다는 것은 더욱 놀랍다.


몸이 멀어져도 인연이면 반드시 가까워진다. 내가 오스트리아에 갔던 것처럼, 그들은 한국에 와 있었다. 한국에 여행 와 있는 동안 SNS를 통해 내 소식을 알게 된 그들이 병원에 왔다. 수 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도 만날 사람은 만난다.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만 있다면.


“웨얼 알 유 프롬? 커피 좋아해? 커피?”


안과 외래 대기시간은 길었고, 병실에 남아있던 아빠의 실전 영어 프리토킹 시간도 길었다. 아빠는 나와 누나가 돌아올 때까지 바다 건너온 손님을 응대했다. 아빠는 평생 외국인과 대화해 본 날이 손에 꼽았다. 나는 미히, 크리스와 아빠가 어색한 시간을 보낼까 걱정이었다.


“니 친구들, 그냥 돌아갔으면 어떡해?”


길어지는 외래 진료시간에 누나도 초조하긴 마찬가지다.


“일단 얼른 병실로 가보자 누나.”


외래 진료를 마치고 도착한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뿔싸,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일찍 떠난 모양이다. 힘든 시간을 보냈을 세 사람과 오래 기다리게 한 미히, 크리스에게 정말 미안했다.


나는 아빠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병실 바깥 복도에서 익숙한 벨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미히, 크리스가 천천히 병실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빠는 손짓, 발짓을 동원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고 미히는 까르르 웃고 있었으며 무뚝뚝한 크리스도 즐거운 듯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미히, 지금까지 아빠랑 뭐 했어? 괜찮았어?”

“물론이지. 병원 지하에서 산책하면서 아주 즐거웠어. 그는 정말 funny guy야.”


아빠는 매력 넘치는 사람이었다. 언어의 장벽도 그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빠도 나름 즐거웠다며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귀한 발걸음 해준 미히, 크리스와 가볍게 포옹했다. 우리는 그동안 서로에게 있었던 일들을 한참 나누었고, 나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그들을 배웅했다.


병실에 돌아왔을 때, 아빠는 애처롭게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자고 있었다. 처음 보는 외국인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바짝 붙잡고 있던 긴장의 끈이 툭 끊어진 모양이다. 곤히 잠든 아빠가 안쓰러우면서도 고마웠다.


사랑은 향기를 남긴다. 그 진한 향기가 머문 자리에는 잔잔한 여운이 남아 오래도록 곱씹어보는 맛이 있다. 모두가 떠난 저녁에 나는 병실 침대 위에 앉아 그들이 남긴 자취를 하나씩 세어본다. ‘그때 그 형이랑 진짜 재밌었는데... 그 누나는 벌써 취직하고 지내고 있구나...’ 1405호 4번 침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한 여운이었다. 바쁜 일상을 쪼개어 이곳을 찾아준 이들의 고마운 마음들이 켜켜이 쌓여 만든 시간의 조각들은 반짝이는 별들 같았다.


혼자는 외롭다. 무리에서 떨어져 있으면 더 외롭다. 그중에서도 나만 뒤처진 것 같을 때는 특히 더 외롭다.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원래 있던 자리가 없어진 건 아닐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으면 어쩌지?’ 나를 초조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던 생각들이었다. 나는 두려웠다.


나를 찾아준 이들은 내게 매번 상기시켜 주었다. 언제든지 돌아오면 된다고, 내 자리는 여기 그대로 있다고,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찾아오겠다고. 우리가 함께한 순간은 과거에만 있지 않았다. 오늘 여기에,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미래에 있다. 그 사실이 나를 다시 한번 살렸다.


일기장을 펴고 다시 한번 곱씹는다. 그들과 함께했던 반짝이는 지난날을, 그리고 여전히 눈부신 오늘을. 그리고 다짐했다. 그들의 빛나는 내일에 찾아가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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