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환자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의료기기를 만들고 싶어요]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광야를 지나며, 히즈윌-
살다 보면 누구나 바닥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을 마주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도와주는 이 하나 없는, 비좁고 캄캄한 고독 속에서 말이다. 피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그곳에 머무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제야 묻는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친 걸까?’
숨 막힌다. 침대에 눕자마자 다리를 뻗기도 전에 맞은편 벽에 발바닥이 닿는다. 어정쩡하게 두 다리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 천장을 바라본다. 언젠가 화장실에서 본 듯한 환풍기가 미세하게 ‘윙~’하고 돌아가고 있다. A4용지 크기로 뚫린 머리맡 창문은 바깥공기가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다. 설령 복도에서 스며드는 공기가 탁한 공기라도 좋다. 이 숨 막히는 공간에 한 줄기 숨결이라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여기서는 모든 것이 한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책상과 의자, 침대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남은 여유는 고작 두 발짝 남짓이다. 머리 위로는 빨래 건조용 쇠막대가 길게 뻗어 있다. 이곳에 들어올 때면 몸을 꾸깃꾸깃 접고, 나갈 때는 접힌 몸을 기지개 켜듯 켠다.
여기는 3평 남짓의 조그마한 고시원이다.
급히 한국에 들어오긴 했지만, 한동안 연구실에 출근했다. 같은 팀 박사님께 내가 진행하던 실험 내용과 진행 상황을 인계해 드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제 대학원생의 삶도 끝난다. 내일모레면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이 된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배수진을 치는 심정으로 급히 고시원을 구했다.
처음 고시원에 들어갈 때만 해도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이 컸다. 어릴 적 TV에서 고시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좁은 방 안에서 밤낮없이 공부에 몰두하는 그들처럼 나도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큰 결심을 한 이상, 이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그때 참 힘들었지’ 하고 웃으며 추억할 날을 상상하면서.
그러나 딱 일주일. 생각이 바뀌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상상은 달콤했지만, 현실은 씁쓸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좁은 복도 양 옆으로 빼곡히 나열된 방문들을 지나 내 방 문을 열고 몸뚱이를 구겨 넣었다. 불을 끄고 다리를 구부린 채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옆방에서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가 마치 바로 옆에서 나는 듯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마치 꺼지지 않는 모닝콜 알람 같았다. 아무리 벽을 두드려도, 일부러 헛기침 소리를 내봐도 허공에 흩어지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며칠 동안 악몽을 꿨다.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난처한 상황에 처하거나, 혼나는 꿈이었다. 평소에도 몸이 으슬으슬하고 기운이 없었다. 잠이 보약이라는데 제대로 자지 못해서 그런 듯했다. 엊그제 까지만 해도 넉넉한 크기의 침대에서 팔과 다리를 아무리 뻗어도 모서리에 닿지 않는 여유를 부렸다. 푹신하고 큼직한 소파가 갖춰진 미국 아파트에서의 지난날이 마치 한 여름밤의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현실은 달랐다.
밤이 아무리 길어도 새벽은 온다. 오늘은 대학원 졸업식이자 연구실에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옆방에 들리지 않도록 드라이어를 1단으로 켜고 머리를 말렸다. 평소에 잘 쓰지 않던 스프레이도 뿌려 머리에 한껏 힘을 줬다. 넥타이 매듭을 당겨 목이 적당히 조이는 느낌이 들 때까지 조정했다. 이제 완벽하다. 멋진 모습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러 고시원을 나섰다.
“응, 엄마, 왔어?”
“진규야, 너 무슨 일 있어?”
기뻐야 하는데 기쁘지 않았다. 웃어야 하는데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지방에서 올라온 엄마와 아빠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나를 반겼지만, 별로 반갑지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퉁명스레 내뱉은 인사에 들떠 있던 부모님의 얼굴이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굳어졌다.
학교 강당 한쪽에 앉아 졸업식 행사를 방청객처럼 멀찍이서 바라봤다. 졸업 가운을 입었지만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기만 했다. 행사가 끝나고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 사진을 찍을 때도 억지 미소를 짓느라 양 볼이 파르르 떨렸다. 결국, 졸업 사진 속 내 얼굴에는 나만 아는 슬픈 웃음이 남았다.
거짓된 기쁨과 진실된 슬픔이 뒤섞인 졸업식이 끝났다. 고시원으로 돌아와 정장을 벗어던지고, 좁은 침대 위에 구겨진 듯 누웠다. 나는 이제 3평짜리 방에 사는 20대 중반의 고독한 백수였다.
솔직히 졸업식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오늘이 지나면, 내 이름 앞에 붙던 수식어가 사라진다. 대학원생도, 연구원도 아니다. 그 어느 것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처음 가는 길을 걸어야 한다. 누구를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다. 내가 선택한 길이라서, 내가 원한 길이라서, 내가 오롯이 책임을 져야 한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려면 반드시 번데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꿈꾸던 날갯짓으로 하늘을 날든, 아니면 영원히 번데기 속에 갇혀 버리든 어쨌든 깊고 어두운 골방을 지나야 만 한다. 오랜 고민 끝에 마음을 정하면 기대감이 차오른다. 번데기를 벗어나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모습을 상상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이내 어둠이 찾아오고, 좁은 공간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을 때 두려움이 속삭인다.
‘넌 해낼 수 없어, 결국 패배자로 남을 거야.’
그 목소리가 온몸의 피부를 조여 온다.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작아지고, 한없이 낮아진다. 고독하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지만, 아프고 싶은 사람은 없다. 더구나 혼자일 때의 아픔은 더욱 깊다.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완전히 달라질 내일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 자려는 뇌와 두근대는 심장이 서로 다투고 있다. 위가 뒤틀리고 장이 꼬이는 기분이다.
어두운 밤이 끝없이 이어지는 곳, 광야.
나는 그곳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