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환자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의료기기를 만들고 싶어요]
한국 사람들끼리 느껴지는 특유의 끈끈함이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해외에서 외국인들 사이에 둘러싸여 지내다 보면 온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특히 혼자 일 때면 더 그렇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쓰이고, 기대고 싶어진다.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인가 보다.
미국에 도착한 다음 날, 한인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출석한 지 두 달 남짓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마치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한국에서 고생했던 지난 시간이 말끔히 잊히는 듯했다. 한국 사람이 한국에 다녀왔는데, 정작 마음의 안식처는 미국에 있었다니. 아이러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보고 싶었다며 반겨주는 친구들과 아주머니 집사님들 덕분에 훈훈한 시간을 보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두 손 가득 반찬까지 챙겨 주셨다. 새빨간 콩나물 무침, 달콤한 소스에 적셔진 소불고기, 그리고 밥 한 숟갈 위에 올려 먹으면 기똥찬 콩자반까지. 이 정도면 일주일은 끼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겠다. 마음부터 이미 배부르다.
하지만 숨을 돌릴 틈도 잠시뿐이었다.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금세 분주해졌다. 중단했던 실험과 논문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 했고, 석사 학위 심사에 제출할 졸업 논문도 완성해야 했다. 게다가 한 달 뒤에는 연구해 온 내용을 교수님들 앞에서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받아야 하는 학위 논문 심사 과정도 남아 있었다. 또다시 한국이라니, 정말 끝이 없다.
올 해만 벌써 네 번째 한국-미국 간 비행이다. 누가 보면 대기업 회장님이라도 되는 줄 알겠다. 쌓인 마일리지로 제주도 왕복도 가능할 정도다. 시카고에서 서울까지 10시간이 아까워 기내에서 노트북을 펼쳤다. 코골이 소리가 울려 퍼지는 기내에서 귀마개를 낀 채 조용히 자판을 두드렸다. 비행기 창문 너머로 네온사인 불빛이 스며들 즈음, 석사 학위 논문 초안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서울의 밤은 여전히 꺼질 줄 몰랐다. 별빛마저 숨죽인 듯 캄캄한 도로 위에는 자동차 불빛이 가득했고, 환한 가로등이 수 놓인 거리에는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연말이라 쌀쌀한 날씨에도 다들 어딘가 들뜬 기분이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한 해를 돌아보며 행복했던 기억들을 하나씩 세어볼 생각을 하면 설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하굣길이, 직장인들에게는 퇴근길이 가볍게 느껴지는 그런 날.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정장을 갖춰 입고 모텔을 나섰다. 마침내, 지난 2년의 종지부를 찍을 날이 왔다.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내 앞에는 지도교수님과 나이 지긋한 원로 교수님 두 분이 앉아 계셨다. 지도 교수님은 혹여 내가 실수할 까봐 긴장한 얼굴이었고, 한 교수님은 꾸벅꾸벅 졸고 계셨다. 다른 교수님은 내 발표자료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훑어보셨다.
“이 실험들을 학생이 2년 만에 다 한 게 맞나요?”
“선배님들과 같은 팀원들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석사 졸업생이 맞지요? 박사 학위 논문 심사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대학원에서의 2년을 매듭지었다. 아쉬우면서 뿌듯했고 여전히 미숙했지만 조금은 성장한 기분이었다.
끝이 있으면 시작도 있는 법. 급한 불을 끄고 나서야 다시 진로에 대한 고민이 떠올랐다.
‘정말 다시 시작하는 게 맞을까?’
솔직히 두려웠다. 만약 의과대학 입학에 실패하면 돌아갈 곳 없는 고학력 백수가 될 뿐이었다. 설령 성공한다 해도 대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최소 4년이다. 그동안의 학비와 생활비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안정적인 길이 있는 데 세상 물정 모르고 지나치게 순수하게 사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충분했다. 따질 만큼 따져봤고, 여기저기 묻기도 많이 물었다. 이제는 결정할 때가 됐다. 아니, 결심할 때가 됐다.
경쾌한 캐럴 멜로디가 들려왔다. 땅이 꺼질 듯 바닥만 보며 터벅터벅 걷다가 흥겨운 리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고, 여기저기 알록달록한 조명이 반짝였다. 공기 중에는 따뜻한 핫초코 향이 은은하게 스며드는 듯했고, 사람들의 얼굴엔 설렘과 행복이 가득했다. 나만 빼고 모두가 크리스마스였다.
‘그때의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소복소복 눈이 쌓이는 소리를 들으며, 문득 입원실에서 들었던 나뭇잎 움직이는 소리가 떠올랐다. 떨어지지 않으려 하루를 아등바등 살아내던 그 나뭇잎은, 오늘도 충실히 하루를 버텨냈을 것이다. 강인하고 생명력 넘치게 살아냈을 것이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두고 머리를 싸맬 이유가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우울해할 필요도 없었다. 원래부터 내 것은 하나도 없었다. 보너스로 주어진 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살면 그만이다. 도전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마치 선물과도 같다. 열어도 좋고 열지 않아도 좋은 것.
결국, 나는 눈앞에 놓인 선물을 열어보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가 좋을지 나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오직 나에게만 허락된 이 선물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니까.
다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미국 연구실 교수님과 함께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를 모두 정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내 개인 사정으로 연구를 중단하게 되면, 미국 교수님에 대한 지도교수님의 입장이 난처해지지 않을까 싶어 마음이 불편했다.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한국과는 사뭇 달랐다. 마치 한국의 설날처럼,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고 가족들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나는 친형제처럼 지냈던 열 살, 열두 살 터울의 교회 형님들을 찾았다. 메이플 시럽을 듬뿍 뿌린 팬케이크, 기름진 베이컨, 고소한 스크램블 에그, 그리고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크리스마스 아침을 보냈다. 식사를 마친 후, 형님들을 따라 실험실로 향했다. 이런저런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마지막까지 내게 주어진 일은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떠나는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진짜 아름다운 법이니까.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실험실 문이 열렸다. 미국 교수님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평소 혼자 쓰던 실험실인 데다, 교수님이 직접 방문한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진규, 크리스마스인데도 일하고 있었네. 한국에서는 언제 돌아왔어?”
“엊그제쯤 돌아왔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교수님.”
“그래요, 메리크리스마스. 그런데, 우리 가족들에게 네가 만든 멋진 진단용 센서를 소개해 줄 수겠니?”
자세히 보니 교수님 뒤로 대여섯 명의 중국인들이 서 있었다. 교수님의 가족들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연구실에 방문한 눈치였다. 나는 직접 손목에 센서를 착용하고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손님들은 감탄하며 “와우” 하고 탄성을 내질렀고,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설명을 이어갔다. 교수님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그 해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흘러갔다. 거리엔 눈이 내리고, 사람들은 들떠 있었고, 교수님도 가족들과 함께 행복해 보였다. 나만 빼고 모두가 메리 크리스마스였다. 야속하다.
지도교수님과의 그해 마지막 개별 미팅날, 나는 떨리는 입술을 달래며 어렵게 입을 뗐다.
“교수님, 정말 죄송하지만... 연구를 그만하고 싶습니다.”
교수님은 이성적이고 냉철한 분이셨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당황하실 법도 한데, 표정 변화 없이 차분 하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무슨 일 있었니? 아니면 힘든 일이 있니?”
나는 지난 몇 개월 동안 끊임없이 고민했던 생각들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교수님은 내 말을 조용히 들으시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신 듯 침묵하셨다. 그리고 천천히 말씀하셨다.
“그래, 알겠다. 우선 한국에 돌아가서 잠깐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자. 그런데... 미국 연구실 교수님께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까. 난감하네...”
다음 날, 지도교수님과 함께 미국 교수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삼자대면을 앞두고,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가슴속까지 공기를 가득 채우고, 비장한 각오로 문을 열었다. 지도교수님이 먼저 간단히 자초지종을 설명하셨다. 내가 부연 설명을 하려는 찰나, 미국 교수님이 조용히 입을 여셨다.
“그랬군요. 교수님, 저는 진규가 얼마나 열심히 연구해 왔는지 잘 알고 있어요. 휴일에도 나와서 실험할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지금껏 본 학생 중 가장 똑똑한 학생 중 한 명이었어요. 그러니 한국에서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잘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나중에 미국에 오면 언제든 우리 연구실에 놀러 오고요.”
지도교수님과 나는 허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화를 내거나 불쾌해하시기는커녕, 교수님은 그동안 즐거웠다고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마치 오래된 동료를 배웅하듯, 따뜻한 인사를 건네셨다.
그렇게 미국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도 무리 없이 정리되었고, 며칠 뒤 나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 다시 떠올려 봐도 그 순간은 정말 얼떨떨했다. 무엇이 교수님의 마음을 움직였던 걸까. 왜 걱정했던 일들이 그렇게 술술 풀렸던 걸까.
어쩌면, 이유 같은 건 애초에 필요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그날은 어떤 기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날이니까.
크리스마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