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방문 연구

[chapter 4 환자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의료기기를 만들고 싶어요]

by 이진규


“진규야, 너 1년 정도 미국 다녀 올래?”


지도교수님의 전화였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고작 석사과정 3학기를 마친 내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 설렘과 놀라움이 뒤섞인 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배고파도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법이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일주일 정도 생각해보겠습니다.”


올해는 지도교수님의 안식년이었다. 1년간 미국에서 연구하실 계획이셨는데, 그곳 연구실과의 협동 연구를 함께할 제자를 찾고 계신 것이었다. 우리 연구실에는 뛰어난 실적은 물론 연구 능력을 갖춘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포진해 있었다. 미국 방문 연구는 학자로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기에 모두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최근 여러 보도자료에 소개될 만큼 뛰어난 연구성과를 낸 선배가 교수님의 연락을 받았다. 그 선배는 나와 같은 학부 출신이었고, 2년간 룸메이트로 지낼 만큼 가까웠다. 게다가 같은 팀에서 연구하는 직속 사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배는 연구실을 떠났다. 연구 분야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느끼던 차에 결국 다른 분야로 해외 유학을 결정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선배의 결정에 교수님은 당황하셨고, 그 자리를 메울 다른 사람을 고민하고 계셨다.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교수님의 전화를 받았을 때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나보다 뛰어난 선배들이 얼마든지 있었고, 도리상 그들에게 먼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교수님은 내가 연구실을 떠난 그 선배와 같은 연구를 하고 있고, 군대 문제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을 선택 이유로 드셨다. 하지만, 나도 눈치는 있었다. 분명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단호한 교수님 목소리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교수님이 나에게 과감한 베팅을 하셨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 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나는 종종 그 사실만으로도 힘을 얻는다. 특히 존경하는 스승님이라면 더욱 그렇다. 동시에 마음 한 구석에서 책임감이 차올랐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무거운 부담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전의 나는 걸어 다닐 거라고, 눈을 뜰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대학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해외 연구실에 파견 갈 거라고는 꿈도 못 꿨다. 나는 여전히 기적을 살고 있다.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차고 넘치는 축복이다. 두려워할 것 없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기적을 살면 된다.


“교수님, 과분한 제안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준비해보겠습니다.”


출국 전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흘러갔다. 방문할 연구실에 연구 제안서를 작성해 보내 드리고 산학 협력단에 제출할 서류를 준비했다. 영어 회화 학원에 등록했고, 미국 비자 발급 서류를 준비했다. 모든 게 처음이라 낯설었지만, 넘어지고 부딪히면서 조금씩 성장했고, 이내 능숙해졌다.


다른 학과 대학원 수업도 신청했다. 효소를 연구하는 연구실과 함께 연구하려면 효소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효소화학 수업을 듣는 유일한 공대생이 되었다. 수업 내용이 너무 어려워 교수님께 질문으로 가득 찬 메일을 보내고 직접 찾아가 개인 지도도 받았다. 원하는 만큼 배울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학생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미국의 여름은 싱그러웠다. 햇살에 반짝이는 연둣빛 잎사귀 사이로 청량한 바람이 나를 반겼다. 비장한 각오를 한 채 커다란 이민 가방을 들고 캠퍼스에 덩그러니 선 내 마음을 산뜻하게 녹이는 듯했다. 바다 건너온 이 땅은 낯설었고 그래서 더 반가웠다. 나를 아는 이 하나 없어 외롭지만, 그만큼 새로웠다. 마치 게임 캐릭터를 새로 만든 것처럼 모든 것이 신기했다.


중고장터에서 자물쇠 딸린 자전거를 한 대 샀다. 튼튼한 두 다리가 생긴 기분이었다. 이제 옆 동네 식료품점에 가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나는 마트에서 장 보는 시간이 정말 즐거웠다. 진열대의 식재료들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처럼 대부분 큼직큼직했다. 한국이라면 비싸서 선뜻 고르지 못했을 재료들이 여기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덕분에 소고기도 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행복했다.


아침이면 자전거를 타고 연구실로 향했다. 청솔모를 벗삼아 벤치에 앉아 어제 못 다 읽은 논문을 마저 읽곤 했다. 연구실에서 실험이 잘 안 풀릴 때면, 크림치즈 잔뜩 올린 베이글과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캠퍼스 잔디밭에 누워 낮잠을 청했다. 따사로운 햇살을 베게 삼고, 상쾌한 풀 내음을 이불삼아 누우면 그 자체로 천국이었다.


고통은 머물지만, 기쁨은 스친다는 말처럼 미국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한국에서의 시계가 멈춘 만큼 미국에서의 시계는 더 빠르게 움직였다. 자전거 앞바퀴를 도둑맞을 뻔한 날도 있었고, 총소리 들리는 허름한 모텔에서 일주일을 보내야 했던 때도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옥수수밭을 가로질러 달리며 소리를 질러보기도 했고, 운동선수 같은 체격의 친구들 틈바구니에서 함께 헬스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미국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누가 뭐래도 나는 휴가가 아니라 출장중이었다. 일하러 왔으면 일을 해야 한다. 방문한 연구실의 매주 미팅과 정기적인 논문 스터디 모임에 참석했다. 나는 그들에게 생소한 공학 용어를 최대한 쉽게 풀어 설명했고, 관심있게 들어주는 새로운 동료들은 친절했고 따뜻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동료이자 친구가 되어갔다.


나는 약간의 긴장감을 곁들인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했다.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미국 생활이었다.


그러나 그 때는 태풍이 몰아치기 전에 바람도 숨을 죽인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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