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환자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의료기기를 만들고 싶어요]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부터 내 마음 깊숙이 품고 있던 질문이다. 처음에는 최신 재료로 성능 좋은 의료기기만 만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진단이나 치료 분야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면,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삶에 도움이 될 거라 막연히 믿었다.
“미안하지만, 환자들한테 별 도움 안 될 것 같은데요?”
공동 연구했던 의대교수님과의 식사자리에서 들은 말이었다. 이틀 밤을 새워가며 만든 진단용 센서의 측정 결과를 보시더니, 시큰둥한 어투로 말씀하셨다.
“전해질 수치를 매일 재는 사람은 없어요. 입원해서 내일 모레하는 중환자라면 모를까.”
교수님의 조언은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처럼 차가웠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다음 날, 지도교수님께서 센서 디자인을 완전히 바꾸자는 연락을 주셨다. 그동안 정 들었던 센서들을 모두 폐기 처분해야 했다. 무척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의사가 그렇다면 그런 거니까.
어느 덧 계절이 바뀌어 미국에서 첫 가을을 맞이했다. 제법 쌀쌀 해진 날씨에도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연구실 동료들과도 더 가까워졌다. 특히 한 중국인 연구교수와 친분이 깊어졌다. 그는 중국 최상위권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와 논문을 찍어내고 있었다. 연구실의 에이스였던 그가 어느 날 도시 외곽에 있는 자신의 회사로 나를 초대했다. 알고 보니, 그는 작은 벤처 기업의 대표이기도 했다. 사무실에 널브러져 있는 서류들과 실험 기기들은 그의 고군분투해 온 지난 날들을 보여주는 듯했다.
“징징, 논문 쓰기에도 바빴을 텐데 왜 회사를 만든 거야?”
“연구 실적을 쌓는 것보다 실제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려면 그들과 가까워져야 한다고 생각 했어.”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답을 찾으려면 답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환자를 돕는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싶으면 환자를 만나야 한다. 연구실에만 틀어박혀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결과를 낼 수밖에 없다. 전에 의대교수님이 조언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기란 쉽지 않다. 어떤 이들은 욕심이 과하다고 말한다. 주어진 일이나 잘하라고들 한다. 공학연구만으로도 벅찬데 의학과 공학, 두 가지를 모두 잘한다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현실적으로도 녹록치 않은 길이다. 지금까지 대학원에서 쌓아온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출판을 눈앞에 둔 논문 한 편과 미국 연구실과 함께 진행중인 프로젝트 두 개도 포기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나를 믿어 주신 교수님께 정말 죄송스러울 것 같았다.
“진규야, 한국에 한 달간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지도교수님의 갑작스러운 전화였다. 한국 연구실의 후배가 건강이 나빠져 휴학을 하게 되었는데, 그 실험을 대신 맡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미국에 온 지 겨우 두 달 만에, 그것도 마땅히 지낼 곳 없는 서울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눈 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교수님은 확고했고,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급한대로 서울대입구역 근처 모텔에서 한 달간 장기 숙박하기로 했다. 가난한 대학원생에게 호텔은 사치였다. 어차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낼테니 상관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큰 오산이었다.
머리 누일 곳이 있다고 다 집은 아니었다. 집이란 모름지기 아늑해야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얼룩덜룩한 벽지로 뒤덮인 음산한 복도를 지날 때마다 마음이 섬뜩했다. 좁은 방에 들어가면 하루 종일 입을 벌린 채로 있는 캐리어에서 세면도구와 잠옷을 주섬주섬 꺼내어 잘 준비를 했다. 집게손으로 이불을 집어들고 침대에 누워 기도했다. 여기서 빨리 벗어날 수 있기를, 오늘 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를, 눈을 감고 얼른 잠들 수 있기를.
모텔로 돌아가기 싫어서 연구실 간이 침대에서 잠든 날도 있었다. 마침 그날은 실험도 평소보다 잘 되었다. 새벽 늦게까지 실험을 하고 간이 침대에 누웠는데, 목 뒷덜미가 따가웠다. 혹시 벌레가 있나 싶어 더듬어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잠들었다.
다음 날, 침대 머리 맡에는 정체 모를 하얀 가루가 흩뿌려져 있었다. 실험실에 가서야 무슨 일이었는지 겨우 알게 됐다. 어젯밤 실험하는 동안 연구실 선배가 켜둔 자외선 램프가 내 등 뒤에 계속 켜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 바람에 뒷목 피부가 새까맣게 타서 화상까지 입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날 실험이 성공적이었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제 미국으로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늘 기회는 위기와 함께 온다. 짧은 한 달 간의 한국 방문 동안, 우연히 한 의과대학 교수님을 만나게 됐다. 그 분은 혈액종양 내과 임상 교수이자, 항암제 연구를 병행하는 의사 과학자셨다. 주 3일은 진료를, 주 2일은 연구를 하신다고 했다. 내가 그동안 품어 온 고민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드디어 롤모델을 찾았다.
시카고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한 달을 갈아 넣어 만든 샘플들과 실험 장비를 잔뜩 실었다. 두 손은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불 꺼진 비행기 안에서 눈을 감고 찬찬히 생각해본다. 의과대학에 편입한다 해도 대학 4년, 인턴과 레지던트 5년, 최소 9년을 더 공부해야 한다. 그 후에 교수가 되는 것도 장담할 수 없다. 까마득한 길이다.
‘과연 내가 의과대학에 합격할 수는 있을까? 대학원은 어떻게 정리해야 하지? 교수님께는 뭐라 말씀드려야 하나? 공학 연구를 그만 두는 게 맞긴 한 걸까?’
태평양 바다 위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졌다. 가벼워졌다고 생각했던 머리가 다시 무거워질 즈음, 미국에 도착했다. 아직도 답은 모르겠다. 주어진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