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적금이 되나요?

[chapter 4 환자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의료기기를 만들고 싶어요]

by 이진규


성인이 되어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것은 거대한 물결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그 물결은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천천히 흘러간다. 제자리에 서 있는 것 같지만 어느새 멀리 떠밀려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게 시간의 파도에 휩쓸려 처음의 자리는 서서히 희미해지고 초심은 증발한다. 슬프다.


‘일단 대학원만 졸업하자. 우선 안정된 직장만 갖자. 남들처럼만 살자.’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어제가 쌓여 오늘을 만들 듯, 오늘이 쌓여 내일을 만든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돕는 삶을 살고 싶다면, 그건 내일 할 일이 아니라 오늘 할 일이다. 일 년을 지불하고서 힘겹게 내린 롤러코스터에 다시 올라탈 수는 없다.


“대학원생이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 있을까요?”


길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 매일 출퇴근길에 지나치던 ‘관악구 치매 안심센터’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치매 독거노인을 위한 가정 방문 봉사활동을 소개해주셨다. 정기적으로 방문해 말벗이 되어드리고, 사례 관리를 돕는 것이 주된 활동 내용이었다.


센터에서 기본 교육을 받은 후 한 할아버지와 연결되었다. 경증 치매 진단을 받고 혼자 지내시는 분이라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어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초심으로부터 멀어진 만큼, 할아버지의 집도 멀었다. 기숙사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가고, 끝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언덕을 30분간 올라 이마에 땀이 삐질삐질 맺힐 때쯤, 할아버지 집에 도착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작은 집들 사이로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각종 고물들이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좁은 입구를 지나 서너 층을 올라가자 스산한 복도 맨 끝 집이 나왔다. 두 세평 남짓한 작은 방의 현관문을 열자마자,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찬 잡동사니가 제일 먼저 뿜어져 나왔다.


“어~ 학생, 밥은 먹었는가?”


잡동사니 사이로 겨우 팔다리를 펼 수 있을만한 공간에 할아버지가 이불을 덮고 누워계셨다. 작은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엉거주춤 일어나는 모습이 제법 여유로워 보였다. 인심 좋은 동네 할아버지와 다를 바 없으셨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종종 인사드릴 이진규라고 해요.”

“어? 뭐라고? 잘 안 들려. 내가 말이야, 젊었을 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잘 못 들으시는 것만 빼면 대화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정말 말씀이 많으셨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청년시절과 군대 이야기를 꺼내셨다. 직업 군인으로 일하신 이야기, 아내분을 만난 이야기, 두 아들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까지 들려주시고 나서야 내게 다시 물으셨다.


“참, 그래서 자네는 이름이 뭐라고? 밥은 먹었는가? 청국장 좋아하나?”

“괜찮아요, 할아버지.”


내 이름을 다시 듣기도 전에 갑자기 일어나시더니 주섬주섬 접어둔 상을 펴셨다. 전기밥솥 뚜껑을 열자 모락모락 김이 나는 하얀 밥알들이 뽀얗게 얼굴을 내밀었다. 빈 그릇에 밥을 퍼 담으려는 할아버지를 겨우 말렸다. 청국장이 담긴 1인용 양푼 냄비로 할아버지의 시선이 향하는 것을 눈치채고, 나는 식사를 하고 와서 배부르다고 한 번 더 설득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달에 두 번 만났다. 늘어지고 싶은 토요일 아침, 나는 달동네 언덕을 오르며 땀을 흘렸다. 늦게 퇴근한 다음 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설 때면 고단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꼬순내 가득한 내복 차림의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문을 두드렸다.


할아버지가 특별히 살가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무뚝뚝함 속에 흐르는 정겨움은 분명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우리는 좁은 방에서 간식을 나눠 먹고, 화투를 치기도 했다. 집 근처 골목에서 산책하고, 벚꽃 피는 봄에는 뒷동네 학교로 꽃구경도 갔다. 마치 은행에 매달 쌓는 적금처럼, 할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장기 해외 출장으로 반년 넘게 찾아뵙지 못했다. 해외 업무에 정신이 팔려 꽤 오랫동안 연락조차 드리지 못했다. 귀국한 후 급한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나서야 할아버지가 떠올라 전화를 드렸다.


“내가 고기 사줄 테니까 고깃집에서 봐.”


할아버지는 여전했다. 이런저런 인사치레 없이 짧고 담백하게 내 마음을 흔드셨다. 우리는 돼지갈비 무한리필 집에서 만났다. 할아버지는 이미 음식점까지 정해두고 계셨다.


“그래, 해외에서 잘 지냈나?”

“네, 할아버지도 건강히 잘 지내고 계셨죠?”

“응, 그럼. 내가 고기 한 번 꼭 사주려고 돈도 모아뒀어.”


순간, 울컥했다. 내가 더 챙겨드려야 했는데, 정작 안부 인사조차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감히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될까 싶었다. 퉁명스러운 줄만 알았던 할아버지께서 수줍게 드러내신 속마음은 마치 고슴도치 속살처럼 부드러웠다.


그날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언젠가부터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혹시 큰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수소문해 보니, 번호를 바꾸시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셨다고 했다. 아무래도 할아버지는 마지막 선물을 주고 싶으셨나 보다.


이따금 그때 할아버지가 구워 주시던 그 돼지갈비가 생각난다. 살면서 수도 없이 먹어봤던 돼지갈비였지만,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달짝지근한 양념은 감칠맛 났고, 숯불 위의 온기는 그대로 마음으로 전해졌다. 할아버지와 함께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처럼, 그 맛과 온기가 고기에 켜켜이 배어 있었다. 여태 내가 사랑을 쌓고 있는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의 사랑이 쌓이고 있었다.


그날은 사랑 적금 만기일이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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