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환자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의료기기를 만들고 싶어요]
대학원생은 늘 배고프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등록금만 냈을 뿐인데, 주머니에 남는 돈은 한 달에 많아야 이십만 원 정도였다. 그 돈으로 서울에서 입고, 먹고, 자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것이든 대책이 필요했다.
돈은 많아도 문제, 적어도 문제라지만, 더 큰 문제는 언제나 부족할 때다. 하루를 온전히 유지하기조차 어려울 때면 더욱 그렇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나 과외를 구하는 등 대학원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팍팍한 하루를 버텨낸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장학금이었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기에 가장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더 어려운 길이기도 했다. 부모님의 지원이 일부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철없는 아들로 남을 수는 없었다. 나도 1인분은 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어떤 일이든 정상을 목표로 해야 정상 근처에라도 도달하는 법이다. 국내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가장 큰 액수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재단에 지원했다. 장학생으로 선정되면 2년간 2천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적어도 석사과정 등록금 걱정은 덜 수 있을 터였다.
역시나 장학생으로 선정되는 과정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지원 자격의 학점 기준이 꽤 높은 편이었지만, 우리 연구실에서만 세 명이 지원했다. 보통 한 연구실에서 여러 명이 동시에 합격하는 경우가 드물었기에, 우리 셋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혹시 너 학점이 얼마야?”
“커트라인 겨우 넘겼지, 뭐. 너는?”
“나도, 나도. 우리 중에 붙은 사람 있으면 비싼 밥 사는 걸로 하자.”
그리고 서류 전형 발표일. 결과는 합격이었다. 하지만, 우리 연구실 지원자 중 한 명은 아쉽게 탈락했다. 셋 모두 면접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긴 했지만, 어렵게 주어진 기회인 만큼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 앉으면 될까요?”
“네. 세 분이 같이 오신 건가요?”
“네. 저희 같은 학교에서 왔어요.”
바짝 얼은 채 면접 대기실에 홀로 앉아 있는데 다른 지원자 세 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가벼운 잡담을 나눴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우리 모두 같은 학교 출신이었다.
“우리 이렇게 해보는 거 어때요?”
면접에서 첫인상은 정말 중요하다. 게다가 우리의 면접 순서는 첫 번째였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면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분위기를 환기시킬 한 방이 필요했다. 출근하자 마시는 따뜻한 모닝커피처럼, 부담스럽지 않지만,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그런 느낌말이다.
우리는 단체 면접에 대비해 귀여운 손동작과 인사 멘트를 준비했다. 비록 초면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오래 알고 지낸 듯 끈끈한 한 팀이었다.
“하나, 둘, 셋! 저희는!”
“관악에서 온!”
“관정을 사랑하는!”
“대학원생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근엄한 얼굴로 앉아 있던 면접관들의 표정이 사르르 녹았다. 예상치 못한 발랄한 인사 덕분에 면접관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맴돌았고, 면접장 공기는 쾌활하게 들썩였다.
“자, 한 명씩 자기 소개해보세요.”
한 사람씩 준비해 온 자기소개 시간이 이어졌고, 곧바로 개별 질문이 주어졌다.
“아니 그런데, 이진규 학생은 최근에 다쳤네요? 지금은 괜찮은 건가요?”
“아이고, 크게 다쳤었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나는 끔찍했던 사고의 순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냈다. 면접관들뿐만 아니라, 다른 지원자들까지도 내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모두가 내 팔다리를 훑어보며 숨죽이고 귀를 기울였고, 나는 마치 방청객들 앞에서 작은 강연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사고 전과 후로 어떤 가치관의 변화가 있었나요?”
반가운 질문이었다. 먼저 나가겠다고 아웅다웅하는 생각들을 가라앉히고 차근차근 내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방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1분 남았습니다. 면접 마무리해 주세요.”
나의 작은 강연은 급하게 끝이 났고, 남은 시간은 다른 면접자들에 대한 질문으로 채워졌다. 면접관들이 첫 면접이다 보니 시간을 조절하지 못한 듯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나 혼자 너무 많은 시간을 차지한 것 같아 다른 지원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캘린더에 면접 결과 발표 날짜를 표시해 두고 그날이 다가오기 전까지 애가 타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은 발표 전날. 벌써부터 행복한 상상에 빠졌다.
‘합격해서 장학금 받으면 그 돈으로 뭐 하지?’
괜한 기대감에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었고, 온몸이 설레발을 쳤다. 가족들과 고마웠던 친구들의 이름을 떠오르는 대로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 옆에, 사주면 좋아할 것 같은 선물을 하나씩 적었다. 상상만으로 이미 마음이 풍족했다.
하지만, 발표 당일, 내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축하드립니다. 이진규 님은 11기 관정 장학생으로 선정되셨습니다.”
합격 문자를 받았다. 그리고 한 학기 등록금을 훌쩍 넘는 큰돈이 입금되었다는 알림도 도착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불편했다.
‘이 돈, 내 돈 아닌 것 같아.’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이 장학금에 한 번 도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대학생 시절, 지금보다 더 높은 학점을 받았음에도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탈락했다.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나에게는 뼈 아픈 기억이었다.
그래서 더 간절히 원했다. 아픈 상처를 한 번 더 다치면 너무 아플 것 같았다. 이번에는 기필코 당당히 합격해서 지난 실패를 극복하고 싶었다. 돈도 벌고, 주변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싶었다.
결국, 내 바람대로 되었다. 내가 원하던 대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내가 기대했던 기분은 아니었다.
이전에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성공했다. 그 사이에 달라진 건 단 하나, 뇌출혈 사고뿐이었다. 면접에서도 오직 그 이야기뿐이었다. 이 장학금은 내가 잘나서 받은 것이 아니었다. 내 능력으로 이룬 성공도 아니었다.
내 안의 내가 내게 물었다.
‘네가 그렇게 원하던 이 장학금, 너 이 돈으로 어떡할 거니?’
전날 적어둔 선물 리스트는 일단 미뤄두고 고민을 아빠에게 털어놓았다. 아빠는 한부모 가정을 돕고 있는 친구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이야기에 힌트를 얻어, 나도 한 가정을 찾아 나섰다. 결국,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홀로 키우는 어머니와 인연이 닿았다.
나는 받은 장학금을 더 필요한 곳에 흘려보내기로 했다. 받은 돈의 십 분의 일과 등록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매달 한 부모 가정의 양육비로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어머님께 두 가지 부탁을 드렸다.
첫째,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아이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실 것.
둘째,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
씨앗을 심는 일은 오늘을 팔아 내일의 희망을 사는 것이다. 오늘 나에게 거저 주어진 선물을 미래의 아이들에게 주고 왔다. 당장의 이익을 포기한 대신, 두 명의 소중한 친구를 얻었다. 우리는 매달 만나 함께 먹고 마시며 삶을 나누었다. 이런 사람 냄새나는 삶이 좋았다.
돈은 흘러야 한다. 많든 적든, 한 곳에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메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처럼, 사막에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돈도 꼭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야 한다. 그래야 돈이 돈답게 쓰일 수 있다.
나는 가난하지만 부요한 대학원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