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으로, 다시.

[chapter 3 하나씩, 하나씩 돌아오는 마법 같은 시간]

by 이진규


‘그래서 앞으로 뭐 하고 살아야 할까?‘

평온한 일상이 반복되었다. 가끔은 그 평온함이 따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순간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부모님은 지금처럼 아무 걱정하지 말고 이럴 때 푹 쉬라고 하셨다. 하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 조금씩 무언가 꿈틀거렸다. 이제는 껍질을 깨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막상 뭐라도 시작하려니 덜컥 겁부터 났다. 이제 겨우 새롭게 태어난 듯한 기분이었고, 이전처럼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롤러코스터에 다시 올라탈 수는 없었다. 1분 1초를 빌려서 사는 삶이기에, 나만의 이유가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더라도 다시 기쁜 마음으로 달릴 수 있는 그런 이유말이다.


‘내가 환자로 지내면서 가장 불편했던 건 뭐였지? ‘

‘내가 그 불편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지? ‘

’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좋은 질문이 현명한 답을 만든다고 했다. 내가 실제로 겪었던 경험을 돌아보며 가슴 깊이 공감하는 문제들과 그 해결과정을 떠올렸다.


내가 환자로 지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불안함’이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장애를 입고 나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불안을 극복할 수 있었다. 내 의지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주변에서 주어지는 ‘위로’ 덕분이었다. 의사 선생님의 따뜻한 의료적 위로, 작업치료사 선생님의 정서적 위로, 가족과 친구들의 정신적 위로가 있었다. 그 위로들이 있었기에 긴 회복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고, 지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갈 수 있었다.


큰 방향을 정했다. 환자들의 불안을 덜어주고, 위로를 전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이제 그 목표를 실현할 구체적인 방법만 정하면 된다.


먼저, 직접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의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어서, 환자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목사님이 생각났다. 마지막으로 환자의 회복을 돕고 삶의 질을 높이는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공학자가 머릿속에 스쳤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본질은 하나였다. 환자에게 위로를 전하는 것.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MIT 공대 랭어 교수 연구팀, 약물 전달 시스템 개발로 수백만 심질환 환자의 목숨 살려..”


살다 보면 우연의 가면을 쓴 필연이 다가올 때가 있다. 우연히 접한 인터넷 과학 기사 제목하나에 가슴이 뛰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도전에 대한 갈망이 밀려왔다. 기사 속 인물처럼 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쯤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어차피 보너스로 사는 인생, 시원하게 베팅해도 손해 볼 건 없다. 다 잃어야 본전이다. 가슴이 여전히 두근거렸다.


생각을 정리한 뒤, 지도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잠시 후 도착한 답장에는 “우선 몸을 완전히 회복하고 입시 잘 준비해서 내년에 다시 보자”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날부터 면접준비를 시작했다. 물리화학 교과서를 펴고 대학 시절 배웠던 내용을 복습했다. 팔뚝만큼 두꺼운 전공서적을 들여다보며 공부했지만, 마음만은 마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어린아이처럼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법 쌀쌀 해진 날씨에 옷을 단단히 껴입었다. 오랜만에 입는 정장차림이 어색했다. 면접 대기실의 공기는 무거웠다. 노트에 공부한 내용을 다시 적어 내려가는 사각사각 소리,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학생이 침을 꼴깍 넘기는 소리만이 공간을 떠다녔다. 누구라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이진규 학생, 준비하세요. 다음 차례입니다.”

‘좋아! 쫄 거 없다. 아는 내용만 말하고 오자.’

그렇게 다짐했지만, 면접실 앞 의자에 앉자마자 두려움이 몰려왔다.

‘혹시 잘못되면 어떡하지? 들어가서 갑자기 경련이라도 일으키면 큰일인데...’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를 집어삼키려던 불안이 이내 잠잠해졌고 시간이 멈춘 듯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끔찍했던 사고도 나를 죽이지 못했다. 모두가 벗어나기 힘들 거라 생각했던 죽음의 덫에서 나는 벗어났다. 하물며, 저 문 너머에 있는 교수들 역시 나를 죽일 수 없다. 면접 따위 떨어지면 다시 보면 그만이다.


나는 눈을 떴다. 가슴이 다시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수고하셨어요. 앞으로 어디서든 멋진 연구하시길 바랍니다.”


면접은 순조로웠다. 풀이한 문제들을 제한 시간 내에 막힘 없이 설명했다. 남은 시간에 현재 근황과 앞으로의 연구 계획까지 말씀드렸다. 집으로 내려가는 길, 발걸음이 마치 날개라도 단 듯 가벼웠다.


집에 돌아와 일본 후쿠오카행 비행기를 예매했다. 오랜만에 떠나는 나 홀로 해외여행이었다. 대학원 면접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앞둔 지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넓고 거대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좁고 한정적이다. 아무리 활동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그의 생활 반경은 수 킬로미터를 넘기기 어렵다. 관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특히 더 그렇다. 솔직히, 거기서 거기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우물 안 개구리다.


그래서 여행은 특별하다. 설레면서 떨리고, 고되지만 신선하다.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는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고 또 다른 개구리를 만난다. 그리고 그제야 깨닫는다. 자신이 살던 우물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후쿠오카 타워 꼭대기에서 마시는 공기는 시원했다. 은 밤하늘을 타고 내 살갗을 스치는 바람은 마치 나에게 말을 걸듯 다가왔다. 그때, 휴대폰 알림 소리가 들렸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전기 모집 결과 최종 합격하였습니다.”

“엄마, 나 됐대.”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합격 소식을 전해 들은 엄마와 아빠는 감격스러워하며 나보다 더 기뻐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엄마의 말에 더 실감이 났다.


‘이제 진짜 다시 시작이다.’


일본에서의 여행은 끝나가고 있었지만, 진짜 여행은 이제 시작되고 있었다. 겨우 알을 깨고 움츠렸던 팔다리를 펼치며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 단단했던 알은 영원할 것 같았고,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매일이 고된 날들의 연속이었다. 마치 나 자신과 씨름을 하는 듯했다.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결국 나 자신과 싸워 이겼다. 오늘만큼은 나 자신을 축하해주고 싶다.


어두운 줄만 알았던 후쿠오카 밤하늘 사이로 크고 작은 불빛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이내 캄캄한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처럼 빛나는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내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후쿠오카 야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아직 어둠이 짙게 깔린 시야 너머 도시의 모습이 더욱 궁금해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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