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합니다

[chapter 3 하나씩, 하나씩 돌아오는 마법 같은 시간]

by 이진규


누군가를 위한 요리를 한다는 것은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 사람을 떠올리며 그가 했던 말과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들을 천천히 되짚는다. 메뉴를 정하고 마트에서 필요한 재료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고른다. 가장 크고 싱싱하고 좋아 보이는 재료들로 장바구니를 채우는 그 순간마다 마음을 담는다.


식사 시간에 맞춰 재료를 정성껏 손질하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켠다.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 된다. 어떤 음식이든 갓 나온 따뜻한 음식이 가장 맛있는 법이다. 손질한 재료들이 다치지 않게 한데 모아 섞는다. 너무 짜거나 달지 않게 중간중간 간도 본다.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순간, 깨끗한 그릇에 정성스럽게 담아낸다. 마지막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기다린다.


나에게 요리는 예쁜 화학실험이다. 화학실험은 기본적으로 반응물에 에너지를 가해 새로운 생성물을 만드는 과정이다. 요리 역시 그렇다. 재료를 손질하고 열을 가해 완성된 요리를 탄생시킨다. 하지만, 요리에는 한 가지 특별한 차이가 있다. 내가 만든 음식을 함께 즐길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 사람의 오늘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을 요리에 담는다. 그래서 요리는 예쁘다.


‘오늘 찌개는 얼큰해서 엄마가 좋아하겠다.’

‘아빠가 크림소스를 좋아했던가?’


요리 학원에서 두 달 동안 생활 요리를 배웠다. 그동안 고생해 준 가족들을 위해 정성을 담아 보답해주고 싶어 배우기 시작했다. 모든 공부는 복습이 생명이다. 학원에 다녀온 날에는 그날 배운 요리가 저녁 우리 집 밥상 위에 올라왔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시간이 정말 즐거웠다. 내가 만든 음식을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행복했다.


일 년에 단 하루, 누구나 마법 같은 순간을 기대하는 날이 있다. 바로 생일이다. 오늘은 사랑하는 아빠의 생일날이다.


사고 소식을 전해 들은 순간부터 퇴원하고 집에서 지내는 그날까지 나는 매 순간 아빠와 함께 했다. 아빠, 그리고 남편이라는 이름의 무게에 짓눌려 남몰래 속으로만 울음을 삼켜왔을 아빠에게, 특별한 하루를 선물해 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아빠의 마법 같은 하루를 위한 나의 분주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정성껏 아빠의 생일상을 차리기로 했다. 고구마 케이크와 작은 손 편지, 그리고 언제든 먹고 싶은 음식을 내게 주문할 수 있도록 직접 만든 음식 쿠폰도 곁들이기로 했다. 값비싼 선물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을 가득 담은 소박하고 귀여운 것들이었다.


메뉴는 유산슬, 목살 스테이크, 김치전, 순두부찌개, 그리고 소고기 미역국. 모두 아빠가 좋아했던 음식들이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움직였다. 동네 마트와 빵집을 돌며 필요한 재료들을 사고, 집에 돌아와 손 편지를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썼다. 음식 쿠폰도 직접 디자인했다. 포토샵으로 편집한 후 컬러 프린트해 가위로 하나하나 오려 내고, 편지와 함께 예쁘게 포장했다.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고 흥얼거리며 요리를 시작했다. 아빠 생일인데 오히려 내가 더 신이 났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그저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것, 그 마음 하나로도 나 자신이 행복해졌다. 사랑은 참 신기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깊어지는 미역국과 순두부찌개를 먼저 끓였다. 바삭할수록 맛있는 김치전은 가장 마지막에 부치기로 했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김치전에서 고소한 냄새가 퍼질 때쯤, 아빠가 돌아올 시간이 됐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고, 마음은 점점 초조해졌다.


“아따, 이게 뭔 냄새여. 냄새 장난 아니네.”

“언제 이걸 다 했어? 음식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


현관문까지 퍼진 고소한 기름 냄새에 엄마와 아빠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부엌으로 다가왔다. 아빠는 음식이 담긴 냄비 뚜껑을 하나씩 열어보며 메뉴를 살펴봤다. 한 번 훑어보고는 마음에 들었는지 표정부터 벌써 배부르다.


“아빠 생일상으로 저녁부터 디저트까지 준비했으니까 한번 쭉 드셔보셔.”


어느 때보다 풍성한 저녁식사였다. 맛도 양도 부족함 없이 완벽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준비한 고구마 케이크 위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인 뒤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나는 준비해 둔 편지를 꺼내 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어 나갔다. 그동안 부끄럽다는 핑계로 표현하지 못했던 진솔한 마음과 내 안에 고이 접어두었던 고마운 사연들을 하나씩 펼쳐 보였다. 편지 속 아빠는 언제나 연약하면서도 든든했고,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읽는 나도, 듣는 엄마와 아빠도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게 다는 아니지? 선물도 따로 있는 거지?”


편지 낭독이 끝나고, 살짝 무거워진 분위기를 아빠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풀어보려 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아빠는 분명히 울고 있었다.


아빠는 언제나 외롭다. 아빠도 살면서 아빠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두려워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아도 마음 놓고 울면 안 된다. 사랑하는 여자의 남편이니까, 사랑하는 아들의 아빠이니까, 끝까지 버텨야 한다. 그래서 아빠는 속으로 운다.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절규한다.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그렇게 견뎌낸다.


아빠는 오늘도 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속으로 울지 않았다. 이 눈물은 가슴 깊이 묻어둔 응어리를 씻어내는 듯 맑고 투명했다. 처음으로 솔직하게 꺼내어 놓을 수 있는, 안도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그 눈물 사이로 마법처럼 미소가 번졌다. 미션 성공이다.


다행이다.

아빠가 우리 아빠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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