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배고프다

[chapter 4 환자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의료기기를 만들고 싶어요]

by 이진규


첫걸음엔 용기가 필요하지만, 마지막 걸음은 섬세해야 한다.

패기로 시작한 도전도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나의 목표는 오직 서울대 의대였다. 광야 같던 고시원에서 필요한 영어 성적을 손에 쥐고 나왔다. 학점과 연구실적도 준수한 편이었으며, 서울의대 의과학과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해 우수 연구자로 선정되었다. 서울대병원에서 한 달간 봉사활동을 하며 현장의 열기를 몸소 체험하기도 했다.


‘이 정도 했으면 할 만큼 한 거 아니야?’


오늘로 열여덟 번째 수정한 자기소개서를 보고 있다. 두 달간 매일같이 들여다보며, 어색한 문장은 없는지, 더 나은 표현은 없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 왔다.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친구들, 서울의대 재학생, 의대 교수님까지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보여드리고 조언을 구했다. 간절함 앞에서 부끄러움은 사치였고, 두 발은 이미 걷고 있었다.


지원서부터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 그리고 대학교, 고등학교 때 받은 크고 작은 상장까지, 영혼까지 끌어 모은 서류 한 다발을 직접 학교에 제출했다. 괜스레 뿌듯하기도 했고 한 단계 넘어선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오히려 다시 시작이었다. 서류 전형 결과와 상관없이, 이제 면접준비에 돌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 커뮤니티를 통해 면접 스터디 팀원을 모집했다. 지구과학과, 약학과, 도시환경공학과, 화학공학과까지 전공도 각양각색이었다. 우리는 매일 도서관에 모여 면접 모의 문제를 만들어가며 공부했다. 서로 면접관과 면접자의 역할을 번갈아 맡아 실전처럼 연습했다. 마치 의대 입학이라는 특수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소집된 특전사 부대처럼 훈련받는 기분이었다.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순간을 면접 준비에 쏟았다. 그만큼 간절했다.


“이진규 님은 우리 대학 학사편입학 전형에 선발되지 않았습니다.”


찬바람이 유난히 을씨년스럽게 스며든 12월 어느 날, 도서관 천장이 산산조각 부서져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휴대폰을 터치하는 손가락의 가냘픈 떨림은 멈추지 않았고, 두 눈은 애써 부정하는 듯 화면에서 차마 벗어나지 못했다. 시간도, 공기도 멈춰버린 듯했다. 온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도서관 벤치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다. 배고픈 줄도 모르겠다.


‘어떡하지? 나 어떡하지?’


머릿속을 무한히 맴도는 이 목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언제까지고 벤치에 앉아 있을 순 없다. 흘러내리는 듯한 하늘을 피해 미끄러지듯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가 이불속에 몸을 숨긴다.


괜찮다고 생각해 보지만 괜찮지 않다. 그럴 수 있다고 되뇌어보지만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1년간 숨 가쁘게 달려온 마라톤의 결승점이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았다. 허무하고 또 허무했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소리가 팽창한 듯 한없이 길게 늘어지는 것만 같았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눈을 감아보려 했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캄캄한 바다 위에서 길을 잃은 작은 배처럼 밤새 어둠을 헤매었다.


아침이다. 언제 잠들었는 지도 모르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몸을 일으켜 집 밖으로 나서본다. 아직 잠에서 덜 깬 거리,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햇살은 조금씩 얼굴을 비추고 있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그렇게 걷다 보니, 눈앞에는 동네 교회가 보인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예배당으로 올라갔고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휴대폰을 꺼내 잔잔한 음악을 아무렇게나 틀어놓고 부드럽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예배당 의자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울었다. 계속 울었다. 삼키려 애썼지만, 무너지는 성벽처럼 감정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가슴 한구석에 깊숙이 눌러두었던, 이름도 잊힌 슬픔들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왔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고시원에서의 서러움까지 모든 것을 꺼내놓고 오열했다.


텅 빈 예배당에 흐느끼는 소리만 가득 울려 퍼지던 그때,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고시원에서 모닝콜 음악으로 틀었던 노래였다. 불안에 숨이 막히고, 주변의 염려 섞인 말들이 마음을 어지럽힐 때마다 매일 아침을 깨우며 하루를 견딜 힘을 주었던 작은 위로이자 든든한 동지였다. 잔잔하게 공간을 가득 메운 그 멜로디에는 고군분투해 온 지난 1년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보이지 않는 그 선율이 나를 어루만졌다.


‘괜찮다고, 수고 많았다고, 그동안 잘해왔다고.’


교회문을 나서자 따스한 햇살이 나를 반겼다. 원래 밝았던 건지, 시간이 흘러 밝아진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바깥공기는 상쾌했고, 내 가슴이 따뜻해진 것만은 분명했다.


“아, 배고프다.”


그러고 보니,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다. 배고플 때가 되긴 했다.

“꼬르륵~”

배에서도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한번 잘 살아보자고, 힘내보자고 텅 빈 속이 보내는 작은 응원이 어쩐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눈앞에 보이는 중국집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간짜장 한 그릇을 시키고, 음식이 나오자마자 마시듯 들이켰다. 뜨거운 면발이 속으로 들어올 때,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몇 주 후, 다행히도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비록 내가 기대했던 방식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도전이 눈앞에 펼쳐졌다.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편입학 전형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이번엔 대구다. 세상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다. 난생처음 마주하는 도시에서 최소 4년을 지낸다니, 걱정보다 기대와 설렘이 더 크다. 사람일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전주에서 태어나 익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포항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녔고,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방문연구를 했다. 그리고 이제, 대구.


뿐만 아니다. 처음엔 공대생이었다. 그러다 머리를 다친 환자가 됐고, 나노입자연구단 연구원이었으며 미국에서는 방문 연구원이었다. 어제까지는 고학력 백수였는데 내일부터는 의대생이다. 어지럽다.


산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견디기 힘든 날들과 수많은 아픔 속에서 신음할 때가 있다. 앞이 캄캄해서 두려워하기도 하고, 끝없는 시련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그러나 납득되지 않아도, 온전히 이해되지 않아도 때로는 그저 묵묵히 걸어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돌아봤을 때, 그동안 걸어온 길이 그 어떤 별보다 빛나게 반짝이는 것을 본다. 힘겹게 내디뎠던 한 걸음, 한 걸음이 눈부신 빛을 만들어내고, 그 빛은 조용히 속삭인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온몸을 에워싸는 그 따스한 온기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나는 다시 걷는다.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다. 어쩌다 의대에 가게 되었는지, 왜 대구에서 지내게 되었는지.


하지만, 오늘도 걷는다. 삶은 기다림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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