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 끝에 행복이 와요

[chapter 4 환자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의료기기를 만들고 싶어요]

by 이진규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은 가까워진다는 말이 있다.

상처 위에 꽃이 핀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어둠은 새벽을 위한 것이고, 상처는 꽃을 위한 것일까? 글쎄. 어둠이 내려앉는 순간도, 상처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순간도 결국 우리 삶의 한 조각이다. 내 삶을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사랑해 줄 수 없다. 그래서 고생도, 어둠도, 상처도 기꺼이 끌어안고 싶다. 그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찬찬히 음미하며 살아가고 싶다.


대학을 졸업하고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의학전문대학원에 지원하는 방법이다. 일 년에 한 곳만 지원할 수 있고, 학부 성적과 토익 같은 공인 영어시험 점수를 제출해야 한다. 이후 수능처럼 의학교육 입문검사를 치르고, 학교별 면접까지 통과해야 한다.


둘째, 의과대학 편입학이 있다. 이 경우 일 년에 두 곳까지 지원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학부 성적 및 텝스나 토플 같은 공인 영어시험 점수를 제출한 뒤 학교별 면접을 치른다.


당시에는 의학전문대학원보다 의과대학 편입학에 이름 있는 학교들이 더 많았고, 경쟁률도 높았다. 인정되는 공인 영어시험 종류도 두 전형이 달랐다. 자연스럽게 나는 의과대학 편입학을 목표로 잡았고, 그 과정에서 의학전문대학원 전형에 필요한 영어시험은 아예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찬 밥, 더운밥 가릴 때냐?”


영어 스터디 친구가 서점으로 나를 끌고 갔다. 토익 기출문제집을 건네며 다음 주에 시험을 보고 의학전문대학원에도 지원하라고 했다. 토익은 지금껏 준비해 온 텝스와 전혀 다른 유형의 시험이라 망설여졌다. 하지만,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시험 전까지 딱 일주일만 투자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태어나 처음으로 토익 시험을 봤다. 큰 기대는 없었다. 영어 공부를 시작 한지도 어느덧 3개월이 지났지만, 텝스점수는 늘 제자리였으니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토익 점수 발표날,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게 정말 있었다. 영어 항목 만점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다. 5점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점수였다. 뜻하지 않은 행운이었다.


1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서류 전형을 통과했다. 면접까지 보고 왔다. 3 대 3 토론면접부터 1분 안에 주어진 논문을 해석하는 지성면접, 자기소개서 내용을 묻는 인성면접까지. 하루 종일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긴장의 끈을 놓을 틈이 없었다. 건물을 나섰을 때는 이미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원래 생각도 못했던 기회였다. 그래, 합격하면 손해다. 남은 시험에 집중 못할 테니까.’


애써 마음을 다잡았지만, 온몸이 근질근질했다. 최종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두고, 겉으로는 덤덤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잔뜩 떨고 있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아 농구공을 들고 근처 운동장으로 향했다. 선선한 바람이 마음속까지 부는 듯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공을 골대에 넣는 것에만 집중한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고 초조함도 바람에 실려 흩어졌다.


그러다 문득, 서러움이 북받쳤다. 솔직히 그동안 정말 힘들었다. 누구에게 쉽게 털어놓지도 못하고 홀로 눈물을 삼켰다. 아무리 애써도 좀처럼 오르지 않는 영어 성적을 보고 있으면 속이 까맣게 타 들어갔다.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혼자되뇌고 또 되뇌었다.


‘급하면 안 된다고. 빨리 가려다 넘어진다고. 욕심부리면 안 된다고.’


그래서 결과가 합격이면 좋겠다고 바라면서도, 기대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열어본 결과가 불합격이면, 너무 아플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미리 떨어졌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게, 너무 서러웠다.


“위 학생은 우리 대학교 2019학년도 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하였음을 통지합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나서야 조금씩 실감이 났다. 들뜨기보다는 차분했다. 아니 오히려 안도감이 더 컸다. 마치 누군가 내게 조용히 격려해 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선택한 길이 틀리지 않았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조금 더 힘내라고.’


다시 자습실로 향했다. 과분한 성과에 정말 감사했지만, 아직 축배를 들기엔 일렀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어쨌든 내년이면 의대에 입학할 수 있다. 그 사실 만으로도 자습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이제 원서 접수 전 남은 영어 시험은 단 한 뿐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남은 모든 것을 쏟아붓기로 다짐했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바람조차 들지 않는 숨 막히는 찜통더위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급한 대로 5만 원짜리 손바닥만 한 선풍기를 사서 얼굴을 들이대 봤지만, 온풍기에서 나오는 듯한 따뜻한 바람에 짜증만 더해졌다.


평소보다 유난히 더위를 견디기 힘들었던 어느 날이었다. 이대로는 도무지 잠들 수 없을 것 같아 고시원 총무를 찾아갔다.


“실례합니다. 오늘 평소보다 더 더운 것 같은데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원래 복도 에어컨은 잘 돌아갔는데, 고장 난 것 같네요. 서비스센터도 밀려서 내일모레쯤 온다고 하네요...”


그날은 마지막 영어 시험을 앞둔 밤이었다. 아직 목표했던 텝스 점수는 손에 닿지 않았고, 온 마음을 쏟아 준비해 온 마지막 기회였다.


나는 조용히 고시원을 나섰다. 답답한 방 안에서 더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근처 수면 카페로 향했다. 내일을 위해서라도 푹 자고 오자는 마음뿐이었다.


넉넉한 리클라이너 소파에 몸을 맡겼다. 솔솔 불어오는 에어컨 바람이 그 어느 때보다 달콤했다. 문법 오답 노트도, 단어장도 펼쳐보지 못한 채 스르르 잠이 들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역시,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었다. 마침내 원하던 점수를 받았다. 가끔은 수면카페에서의 그날이 내 삶에서 해가 뜨기 직전의 어두운 밤이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밤이 백 번이라도 더 찾아와도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밤은 다시 오지 않았다. 그 후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 더 시험을 봤지만, 그 이상의 점수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치열했던 전쟁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나는 나 자신과 인생을 걸고 7개월간 싸운 한판 승부에서 결국 승리했다. 혹독한 전쟁터 같았던 고시원에서 짐을 싸고 나올 때 세상이 달라 보였다. 믿을 곳도, 기댈 곳도 없었지만 주어진 하루, 단 24시간에 집중했다. 마음이 흐트러질 때도 있었지만, 그 흔들림은 절대 24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언제든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오직 그것에만 집중했다.


두려움 너머에 진짜 보물이 있다고 했던가. 일생일대의 전투 끝에 얻은 건 합격증과 점수만이 아니었다. 내 것이라 믿었던 모든 것이 당장 사라진다 해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뇌출혈 사고로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면, 이번에는 주어지지 않아도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고생 끝에 행복이 온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다. 좁디좁은 방 안에서 같은 꿈을 품고 버티던 사람들, 작은 조명을 켜고 하루를 정리하며 뿌듯함에 잠들었던 밤들, 불안에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하던 순간들,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었다.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칠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오늘을 살았다. 눈이 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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