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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서리 Jan 03. 2023

비행#5

한 타일공의 이야기

작업반장님께서 나를 따로 부르셨다.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으신 반장님께서는 내게 일하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하셨다. 그리고 실수도 너무 잦다고. 이 일이 맞지 않으면 어서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한다고 하셨다. 결코 나가라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젊은 날을 여기서 맞지도 않는 일을 하며 보내는 것은 너무 아깝지 않겠냐고 하셨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일에 익숙해지는 데 너무 오래 걸린다. 나보다 3개월은 늦게 들어온 동료들이 나와 같은 수준으로 일하고 있다. 이는 분명 반장님께도, 다른 동료들에게도 폐가 되는 상황일 것이다. 지금까지 참아 주신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금 당장 죄송하다며 일을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앞으로 더 잘하겠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아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당장 일을 더 잘할 여력도 없었다.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어영부영 살아가는 내 삶의 큰 위기였다.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자 반장님께서는 당장 결론을 내자는 것은 아니었다며 다시 들어가자고 하셨다. 아주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절망이 눈앞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오늘은 잠에 들지를 못했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은 너무 피곤한데도 쉬지를 못하니 매일 꾸던 그 이상한 악몽들이 그리울 정도였다. 그러나 지독한 악몽들 대신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상태로 내일 일을 나갈 수 있을까? 일을 나가서 실수 없이, 그리고 빠르게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최소한 다른 사람들에게 더 이상의 민폐는 끼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한다면 나는 여기를 나올 수 있을까? 먹고살기 위해 다른 일을 찾아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끝도 없이 이어지는 비참한 질문들에 눌려 숨을 쉬기도 버거웠다. 내일 일을 나가는 것에 대한 걱정이 되려 스트레스와 끊임없는 질문이 되어 돌아와 잠에 들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었다. 잠을 자기는커녕 자꾸만 급해지는 호흡을 다스리는 것이 오늘 밤이 지나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참으로 비참한 몰골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앞이 핑 돌아 어찔했다. 다시 시야가 돌아올 때까지 한참을 서 있었다. 그렇지만 일은 가야 했다. 여기서 못한다고 갑자기 꽁무니를 빼는 것만큼 폐가 되는 일도 없으리라. 그래서 어쨌건 움직였다. 지구를 머리에 매단 듯 머리가 너무 무겁고 아팠지만, 최대한 정신을 다잡으며 일을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은 평소보다 일하는 속도가 훨씬 느렸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집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을 새운 탓에 어질거리는 몸뚱이는 기어이 실수를 하고 말았다. 작업해야 할 타일 박스를 나르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타일이 박스에서 우르르 떨어질 뻔했다. 옆에 있던 동료가 이를 발견하고는 얼른 타일을 붙잡았다. 동료 덕에 작은 실수가 끔찍한 큰 실수로 이어지지 않고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작업이 끝난 후 동료가 나를 불러 이야기를 했다. 다들 나 때문에 조금씩 더 일을 하고 있고, 이는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내가 채우지 못한 작업 분량을 다른 사람들이 나눠서 채워야 하고 내가 한 실수를 수습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남은 작업을 하느라 더 많이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역시나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존재인 것이다. 여태까지 중에서 최악의 컨디션일 때 들은 직접적인 비난은 아주 비참했다. 더할 나위 없이 최악의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머리가 더 아파졌다. 자꾸만 어질거리는 머리를 이고 무슨 정신인지도 모르게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그나마 꿈을 꿀 수는 있었다. 사실 꿈이라기보다는 기절하듯 쓰러진 반수면 상태에서 보는 환영에 더 가까운 것 같기는 했지만 어쨌건 무언가를 보았다. 나는 신과 같은 존재에게서 타일로 만든 상자 하나를 받았다. 그 존재는 내게 신신당부했다.

“절대로 이 상자를 열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나는 알겠다고 답하며 상자를 받아 들어 잘 보이지 않는 선반 위에 올려 두었다. 그러고 시간이 한참 지났다. 그 상자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그 존재가 다시 나타나 말을 했다. 

“상자는 잘 있는가?”

그렇다고 답하자 그 존재는 다시 사라졌다. 그 신과 같은 존재가 상자의 존재를 상기시키자 이제는 문득문득 상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손을 대지는 않았다. 지루할 정도로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그 존재가 다시 말을 했다.

“상자를 절대 열어서는 안 된다.”

나는 다시 알겠다고 말하고 상자를 흘깃 봤다. 대체 저 상자가 무엇이길래 저렇게 결단코 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일까? 안에 무언가 엄청난 것이 들어있을까? 한순간 든 생각은 거침없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고 들어앉았다. 인간의 호기심이란 한번 자극을 받으면 해소될 때까지 달려 나가는 것밖에는 몰라서 내 손은 어느새 상자의 지척에 와 있었다. 상자를 만지작거렸다. 아니, 분명히 안 된다고 했다. 내게 여기에 든 것이 무엇인지, 왜 열면 안 되는지 합당한 이유는 전혀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어쨌건 안된다는 말에 알겠다고 답했으니 이를 따라야 했다. 그래서 일단은 근질거리는 손을 꾹 쥐어 잡았다.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눈앞에 있는 상자는 호기심에 불을 댕기기만 할 뿐이었다. 어떻게 저 상자를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지, 이전의 시간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잠시 후 나는 기어이 상자에 손을 댔다. 하지만 결단코 열어볼 생각은 없었다. 다른 곳에 옮겨 두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저 상자를 아예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치워 두려 했을 뿐이었다. 열어서는 안 되는 존재에 손을 대고 있으니 너무 긴장이 되어 손에 땀이 축축하게 배어 나왔다. 아뿔싸. 내 손은 과거의 수많은 실수와 마찬가지로 상자를 손에서 놓쳤다. 타일로 되어있던 상자는 무참히 깨졌다. 상자가 열리는 순간 나는 그 안에서 빠져나온 온갖 것들에 떠밀려 뒤로 넘어졌다. 상자 안에서 온갖 재앙과 질병이 쏟아져 나왔다. 옆에 있던 동료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허리가, 손목이 아프다고 소리를 쳤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간 자주 지끈지끈 아팠지만 무시해왔던 허리와 손목의 통증이 일순간 찾아왔다. 머리도 너무 아파 눈에서 절로 눈물이 났다. 모두 고통에 차 바닥에서 뒹굴었다.


눈을 떴다. 아직도 고통에 찬 비명이 들리고 허리의 통증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재앙을 불러왔다. 내 손으로 재앙을 세상에 풀어주고 말았다. 비록 실수였지만. 아니, 이처럼 끊임없이 반복되는 실수를 더 이상 실수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붙잡았다. 내 손을 통해 세상에 나온 것 중에 희망찬 것은 하나도 없었다. 죄다 끔찍하고 비참한 것뿐이었다. 여느 때 보다 훨씬 비통한 기분으로 이불에 얼굴을 파묻었다. 스스로가 너무나도 싫었다. 꿈속에서 일어난 상황이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자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났다. 그런 내 상태와 관계없이 일은 나가야 했기에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일을 나가기 전부터 긴장이 되었다. 최소한 다른 사람들에게 짐을 더 얹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는 내가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더욱 비참해졌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판도라’에 관한 신화 중 일부 인용

*위 이야기는 가상의 인물에 관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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