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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서리 Jan 06. 2023

무던한 사람#3

그 사람은 꽤 날씨를 타는 편이었다. 비가 오는 날은 어김없이 늦게 일어났고, 흐린 날은 미묘하게 더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것을 몰랐다.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들과 그 변화에 주의를 기울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릿느릿 행동하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감정을 읽고 다루어 본 적이 없는 이 사람은, 자신이 지쳤는지, 괴로운지, 우울한 지도 잘 몰랐다. 


어느새 졸업이 다가왔다. 괜찮은 대학을 나온 사람은 그에 맞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대체 어떤 일인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입사를 해서 일을 하면 되는 것일까? 하지만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다. 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일만을 해오며 살아온 이 사람에게는 수많은 갈림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자신의 선호에 대한 정보조차도 없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온전한 결정을 내린 경험이 없는 이 사람은 인생의 다음 단계에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대학의 마지막 학기에 이 사람은 우연히 그림을 접하게 되었다. 과제를 하기 위해 간 전시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매료되어 한참을 감상했다. 그리고 돌아와 직접 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취미로 그려보기 시작했으나 점점 재미를 붙여 종래에는 온종일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즐거운 일이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시작한 일이라 더욱 새로웠다. 온종일 그림을 그렸다. 강의를 들은 후 아르바이트를 하고 와서 간단히 식사하고, 씻고, 잠깐 잠드는 시간 외에는 내내 그림을 그렸다. 실로 이는 꽤 큰 불행의 시작이었으나 그 사람은 알지 못했다.


졸업 후 그 사람은 이사를 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로.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상의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자 이 지역에 더 이상 거주할 필요가 없었고, 본가로 돌아갈 이유는 더욱 없었기에 이사를 한 것이었다. 그간 꾸준히 일을 하며 모인 돈으로 풍경이 아름다운 지역에 방을 한 칸 빌려 그림을 그리며 지냈다. 이곳에서 낮에는 생활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남는 시간에는 내내 그림을 그렸다. 평화로웠다. 이토록 마음이 평안한 생활은 처음이라 낯설었지만 기뻤다. 이러한 기분의 변화도 이 사람이 기억하는 한 처음이라 신기했다. 하지만 이는 더 큰 불행의 전초였을 뿐이다. 


우레와 같은 고함과 한심하다는 눈빛이 방을 채우고 있었다. 조용한 방 안에서 아버지의 고함은 더욱 크게 들렸고 어머니의 차가운 눈빛은 더욱 시렸다. 이는 명백히 불행한 상황이었으나, 그 사람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의아했을 뿐이었다. 왜 부모님께서 화를 내시지? 원체 연락이 없던 부모님께서는 갑자기 전화해서는 어디냐며 다그치셨다. 지내고 있는 곳을 알려주자 곧장 이리로 내려와 호통을 치셨다. 곧 방은 삭막해졌다. 떠날 시간이 된 것이었다. 이 사람은 방을 떠났다.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께서는 자식의 도리에 대해 설파하셨다. 자식은 지금껏 키워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이렇게 많이 말씀하시는 것을 처음 본 이 사람은 약간 신기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에 알겠다고 답했다. 가슴께가 답답했지만, 곧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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