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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서리 Feb 22. 2023

어떤 여정#2

어느 날 이 사람은 집을 좀 치울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거지를 기다리고 있는 그릇과 컵들, 밖으로 나가고 싶어 문 앞에 매달려 있는 온갖 쓰레기봉투들, 재활용이 될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재활용 쓰레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엄두가 안 났다. 이 무더기를 헤집을 용기가, 밖으로 나갈 의지가 부족했다. 그래서 문을 등지고 돌아 누웠다. 누우면 눈앞에 보이는 것은 흰 벽뿐이었다. 그러면 다시 생각에 빠질 수 있었다. 둥실둥실 시커멓고 건강하지 못한 생각이 방 안을 채웠다. 매캐한 연기처럼 시야를 가렸다. 뿌연 시야는 눈물 방울이 방울, 방울, 방울져 떨어지는 순간에만 잠시 맑아졌다. 그리고 이내 다시 흐려졌다. 이를 반복하다 보면 또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에도 치워야 할 온갖 것들은 또 손길을 기다리며 마냥 우두커니 쌓여 있을 것이다.


며칠 만에 이 사람은 욕실로 들어가 씻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가끔 세수를 하고 간간히 양치를 한 것 외에 그다지 씻지를 않았다. 이 사람은 씻는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싫었다. 씻으러 가는 그 순간을 감내하지 못하는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한심했다. 이 비참함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서 물을 끼얹는 것이다. 이를 머리로는 너무 잘 알고 있음에도 몸을 움직이는 것은 아주 별개의 영역이어서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도저히, 더 이상은 스스로를 참아주지 못할 지경이 되어서야 욕실로 향했다. 이즈음에는 일어나기 싫다던가, 자신은 씻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망가진 존재라는 비관도 끼어들 새가 없었다. 거의 본능적으로 씻으라는, 더러운 몸뚱어리를 해결하라는 뇌의 명령에 따른 것에 가까웠다. 그렇게 씻고 나자 너무 상쾌하고 개운해 몸 둘 바를 몰랐다. 이런 긍정적인 감정은 너무도 오랜만이라 심히 황송했다. 낯설었다. 어색했다. 자신이 감히 자리에서 일어나 씻은 것만으로 이런 감정에 빠져도 되는 것인지 두렵기도 했다. 동시에 이까짓 별것도 아닌 샤워라는 행위에 기뻐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이 사람은 몸을 채 다 말리지도 않은 채 옷을 주워 입고는 다시 늘어졌다. 물기가 덜 마른 몸에 옷이 달라붙어 축축하고 덜 마른 머리칼에서 물기가 배어 나와 침구가 젖어 갔다. 불쾌했다. 이 사람은 생각했다. 자신에게는 이런 순간이 잘 어울린다고. 


이 사람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심하게 느꼈다. 무엇인가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불안이 이 사람의 비관과 무기력을 앞선 순간, 이 사람은 오랜만에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았다. 앉기는 했으나 무엇을 해야 할지는 막막했다. 멍청하게 보낸 시간이 너무 긴 탓일까? 날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하루가 다 간 것이었다. 이런 시점에 보통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일기를 쓰는 것이 좋다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노트를 한 권 꺼내 일기를 써 보기로 했다. 그리고는 이내 절망했다. 일기에 쓸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일기에는 단 세 문장이면 충분했다. 

오후에 일어났다.

다시 잠들었다.

다시 깼다. 

이렇게 하루가 지났다. 중간중간 온갖 생각들이 가득하기는 했지만 그것들을 감히 일기에 옮길 엄두도 내지 못했다. 늘 그 괴로운 생각들이 가지고 있는 중압감에 짓눌려 있는 탓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일기에도 아무것도 채우지 못했다. 다시 자리에 누웠다. 자신에게는 되돌아볼 가치가 있는 하루조차 없다. 없다. 없다. 다시 절망하고 조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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