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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서리 Feb 23. 2023

어떤 여정#3

어느 날 이 사람은 전혀 잠에 들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수면제라도 먹은 것 마냥 잠을 이겨내지 못했다. 분명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터라 피곤할리도 없는데 계속해서 잠을 잤다. 문득 불안감과 압박감에 등 떠밀려 책상에 앉으면 책상에 엎드려서 잠에 들었다. 그러다 깨면 온몸에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은 듯 쥐가 나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러면 다시 침대에 누웠다. 너무 오래 누워있어 허리가 아플 지경이면 잠시 앉았다. 앉은 채로도 잠에 들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을 잠으로 채워 보냈다. 허망함에 또 푹 빠졌다. 불안감도 다시 마음 한 구석에서 존재감을 뽐냈다. 그러면 또 다음 며칠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초조함에 잠을 잘 수가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런 불규칙적인 생활의 반복이었다.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이 사람도 알았다. 다만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움직일 에너지가 한참 부족했을 뿐이었다. 


이 사람은 거울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피해왔다.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절망과 우울로 가득한 생활이 시작되고 건강치 못한 생활을 반복하면서 신체에도 변화가 왔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은 겨울잠을 자기 위해 준비하는 곰처럼 한 번에 잔뜩 먹고는 한동안 먹지 않았다. 대부분의 순간에는 먹는 것조차 너무도 의미 없고 귀찮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에 빠지면 배도 고프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다 문득 이제쯤에는 정말로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본능적인 생각이 들면 음식을 배달시켰다. 줄어든 위장이 버거워할 때까지 음식을 밀어 넣었다. 한 번 먹기 시작하자 그간 느끼지 못했던 배고픔이 갑자기 들이닥친 탓이었다. 먹고, 먹고, 먹고. 그렇게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먹어댔다. 그리고 힘이 들어 자리에 누웠다. 이런 이상한 생활의 결과 신체 곳곳에는 살이 붙기 시작했다. 띄엄띄엄 과하게 먹고 거의 움직이지 않은 탓이었다. 안 그래도 이 사람의 자기상에는 긍정적인 부분이 조금도 없었는데 이런 방식의 신체 변화는 부정적인 사고에 불을 붙였다. 자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다 싫었다. 


이 사람은 우울이 덮쳐올 때 보다 공허가 밀려올 때가 더 힘들었다. 우울은 그냥 휩쓸려서 축 늘어져 있게 된다면 공허는 너무 무서워서 허겁지겁 도망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러니까 결국, 불안하다는 소리였다. 불안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방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다 책상 앞에 앉았다. 다리를 너무 떨어서 의자가 다 흔들릴 지경이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불안하다. 불안하다. 불안하다. 속은 텅 비었는데 목이 꽉 막힌 듯 옥죄어 있는 기분이었다. 아주 신기하고 모순적인 기분. 이 사람은 도무지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냥 이 불안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답답한 스스로에게 짜증을 내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런 삶에서 어떤 유의미함을 찾을 수 있는지 고민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결론적으로 아무것도 찾지 못한다. 다시 다리를 떨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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