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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서리 Mar 10. 2023

어떤 여정#6

이 사람은 눈을 뜨자마자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오후 3시였다. 낭패감이 들었다. 오늘부터는 일찍 일어나 무엇을 하든 생산적인 일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는데, 첫 시작점부터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무력감이 이 사람을 감쌌다. 이 사람은 오후의 쨍한 햇빛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두꺼운 이불속은 여전히 밤인 듯 새벽인 듯 컴컴했다. 여전히 불안하고 심히 우울했지만 최소한 그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 비뚤어진 안정감 속에 애써 숨어들었다. 눈을 감고 또 생각을 했다. 생각, 생각, 생각. 한껏 현실에서 어긋난, 과장된, 부정적인 생각들이 이불속을 메웠다. 이 사람은 또 생각했다. 아, 역시 자신은 이런 순간이 잘 어울린다고.


또 같은 생활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 사람은 주로 누워서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가끔 게임을 했다. 얼마 전의 다짐은 어느새 열리지도 않은 문 틈으로 잘만 빠져나가 도망가 버렸다. 더 이상 이 사람의 방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람은 그냥 절망적인 생활을 계속했다. 계속, 계속, 계속. 절망과 우울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그건 어느새 생활의, 자신의 일부가 된다.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어느새 우울과 한 마음이 된 이 사람은 이불과 한 몸이 되어 뒤척였다. 뒤숭숭한 마음과는 달리 몸은 축 늘어져 있기만 했다. 지독한 순간이었다. 


이 사람은 돈이 필요해졌다. 전에 모아뒀던 돈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방구석에 누워서도 돈을 참 많이 쓸 수 있었다. 먹는 것에만 해도 돈이 꽤 들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는 이 늘어진 사람도 움직이게 했다. 이 사람은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두 군데 지원서를 넣었다. 지원한 곳에서 이력서를 열람했는지 수십 번도 더 확인했다. 이 사람은 어쩐지 초조해졌다. 느긋하게 기다릴 수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은 끊임없이 쓸데없는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고작 두 군데에 지원해 놓고는 당장에 이력서를 확인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다. 이 사람은 가끔 이런 스스로를 못 견디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괴로운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 이 사람은 어디선가 들은 말을 문득 떠올렸다.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바꿔야 행복해진다.’ 그런데 그게 쉽다면 세상에 괴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넘겨버렸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의 연결고리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또 지원서를 열람했는지 확인했다. 하루 종일 이러다 자리에 누웠다. 어떤 자세로 누워도 불편했다. 이 사람은 별로 한 것도 없이 눈을 뜨기 힘들 만큼 피곤했다. 하지만 잠에 빠지지 못한다. 수면의 바다에 잠기려는 순간 누가 이 사람을 물속에서 건져 올린 것처럼 번뜩 정신이 든다. 다시 잠에 빠진다… 번뜩! 빠진다… 번뜩! 빠진다… 번뜩! 괴로운 과정을 수십 번이나 반복한 후에야 짜증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다 서서히 의식을 잃는다. 정신을 차려보면 아침이다. 지원서를 열람했는지 또 확인을 한다. 아직이다. 또 한숨을 쉬다 깜박 잠에 든다. 깜짝 놀라면서 일어나 보면 30분쯤 지났다. 느릿느릿 허리를 세워 앉는다. 그러다 아르바이트를 한 군데 더 지원한다. 또 기다린다. 시간은 자꾸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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