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냄새는 갑자기 나타났다
피아노와 된장찌개
집 바로 앞 피아노 학원은 지상에서 두 뼘쯤 밑에 있었다. 옆의 전자기기를 고치는 가게에서 회색 작업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담배를 피우면서 흙 위로 올라온 지렁이를 검은 구둣발로 밟고 짓이겼다. 그러면 지렁이는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흙과 엉겨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은 긴 파마머리를 하나로 묶고 아이들 옆에 앉아서 피아노를 가르쳤다. 방마다 다른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바이엘 상권과 바이엘 하권, 체르니 100번이 뒤섞인 소리는 소음에 가까웠다. 나는 피아노를 왜 쳐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채로 피아노 치는 척을 했다. 선생님의 귀신같이 알고 다시 치라며 손등을 자로 때렸다. 그럼에도 나는 피아노를 치는 시간에 왜 피아노 건반의 소리는 다 다를까. 왜 흰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따위를 궁금해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갈색 피아노가 안방에 놓여있었다. 아빠의 친구가 싼값에 줬다는 피아노는 문양이 아름다웠다. 경양식집 의자나 테이블에 새겨져 있던 유려한 곡선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마치 고양이의 앞발 같기도 파도가 치는 것 같기도 한 피아노 다리는 굳건하게 바닥을 딛고 있었다. 엄마는 예상치 못한 피아노를 가지게 됐을 때부터 우리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 이듬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으니까.
피아노를 배운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엄마는 가정집에서 가르쳐주는 또래의 엄마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즐거운 나의 집. 엘리제를 위하여. 엄마는 나보다 훨씬 피아노를 잘 쳤다. 엄마는 우리들만 있는 집에서 가끔 피아노를 쳤다. 이층 집에서 울려 퍼지는 피아노는 즐거운 나의 집에 딱 어울렸다. 우리는 엄마의 피아노에 맞춰 배워보지도 못한 발레를 추었다. 한 발로 빙그르 돌고. 양팔을 뻗어 허공을 쓸어내리고. 세 자매가 엉켜 춤을 추고 있으면 왠지 뒤통수가 따가웠다. 나의 집이 곧 바닥으로 떨어질 유리잔 같이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그날도 취해 있었다. 불콰한 얼굴로 집안으로 들어와서. 밥상 앞에 앉기도 전에 뭐에 기분이 상했는지 피아노 의자를 집어 들었다. 엄마를 향해. 던질 듯 말 듯. 네다리가 공중에서 왔다 갔다 했다. 말려줄 할머니도 없는 이 집에서. 우리는 밥상만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엄마의 고함에 피아노 의자는 던지듯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잠깐의 적막이 거실을 채웠다. 엎어진 밥상 앞에서 바닥에 떨어진 반찬을 엄마가 줍기 시작했다. 나는 빨리 화장실에서 걸레를 가져왔다. 된장찌개 두부의 모서리가 뭉개진 채로 바닥에서 식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더 화가 난 얼굴로 집을 나갔다. 언니는 나가는 할아버지의 뒤통수에 대고 거칠게 소리를 질렀다. 동생이 놀라 구역질을 했다. 엄마의 얼굴을 살피는데 내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우리는 폭력의 소리가 지나간 자리에서 깨진 그릇을 치웠다. 얼룩진 바닥이 엉엉 우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