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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강 Nov 19. 2024

크리스마스 선물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른 채

동생이 유치원 한쪽에 차려놓은 무대 위에서 훌라춤을 췄다. 왼쪽으로 두 번 오른쪽으로 두 번 손목을 돌리자 붉은색 나이론 노끈이 너풀거렸다. 나이론 노끈으로 만든 치맛자락이 엉덩이를 흔들 때마다 공중에서 풀썩였다. 유난히 술이 적은 치마는 엄마가 집안일을 하는 짬짬이 만들어 놓았었다. 나는 나이론 노끈을 가닥가닥 뜯는 일을 도왔다. 그럼에도 다른 여자애들에 풍성한 치마에 비해 동생의 치마는 볼품이 없어 보였다. 열심히 춤을 추는 동생은 한 달 전부터 재롱잔치를 준비했다. 한 겨울에 추는 훌라춤은 서늘해 보였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 나는 가장 긴 양말을 머리맡에 놓고 잠이 들었다. 원하는 건 새로 나온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은 미미인형. 잠이 들다마다를 반복하는데  방문이 열리면서 거실의 빛이 엄마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우리 세자매의 머리맡에 크고 작은 박스 놓고 나갔다. 엄마의 발 뒤꿈치는 갈라지고 피가 맺혀 있었다. 그날, 세상에 사랑스럽고 간질간질한 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크고 빨간 보따리를 메고 산타할아버지가 유치원 안으로 들어왔다. 동네 아이들의 이름이 차례차례 불렸다.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착한 어린이에게만 주는 선물을 받아갔다. 어느 건 너무 작고 어느 건 크고. 어느 건 누가 봐도 크레파스나 공책 세트 같았다.      


산타할아버지의 수염은 유난히 하얘서 꼭 무대장식으로 붙여놓은 눈송이 같았다. 짓궂은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의 수염을 잡아당겼다. 나는 내가 1년 동안 잘 못한 일을 떠올리다가. 엄마의 피나는 발뒤꿈치를 떠올렸다.


내 이름이 불리고 쭈볏쭈볏 산타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았다. 가짜 배 안에 가득 찬 솜이 푹신했다.      

납작하고 네모난 포장 안에는 벙어리장갑이 기도하듯 포개져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보름이나 전에 산타할아버지에게 받은 선물을 자랑하는 아이들 틈에서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갈팡질팡을 하다가 옆자리에서 웃고 있는 엄마와 언니에게, 캐릭터 책가방을 꼭 끌어안은 동생에게 활짝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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