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천장 건물에서 모인 꿈
얼굴 뵈었던 곳은 밝고 환한 김포공항이었다.
<대문사진: Pixabay, Barbara Jackson작품>
*장마철 제습기 대체글입니다.*
꿈은 답답한 현실을 반영한다.
오늘의 꿈 이야기는 답답함이 양철천장으로 보이고 어려움을 멀리한 죄책감이 형상화된 사례다.
꿈 자체보다 꿈을 꾸게 된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길다.
6월 하순 경 아들이 제주도로 캠프를 다녀왔다. 평생교육원 캠프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제대로 된 여행을 실시한 건 오래만이라고 평생교육원 센터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출발 전 집결장소는 김포공항이었다.
같은 반이라 간담회에서 얼굴을 뵈었던 어머니 두 분과 인사드리고 카카오 프로필 사진으로만 뵙던 분들을 잠깐 멀리서 뵈었다. 내 프로필은 구슬붕이 꽃이라 대부분 본인의 얼굴은 모르시던 상태였다. 캠프를 마치고 서울에 도착한 날도 사진으로 뵙던 어머니들께서 김포공항 도착 지점 문이 열리는 출구 대기석에 계셔도 인사를 못 드리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7월 초인가... 아들 캠프 집결과 해산 장소에서 잠깐 멀리서 또는 가까이서 뵌 어머니들의 얼굴을 꿈속에서 뵈었다.
꿈속 공간은 김포공항 국내선 내부의 깔끔하고 밝은 통유리로 꾸며진 곳이 아니었다. 옛날 어린 시절에나 보았을 오래된 교회처럼 보이는 공간에 긴 의자가 많이 늘어서 있고, 천장은 양철 돔형태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조명은 은은하고 누군가 앞에서 강연을 하는 듯한 모습이 보이는 곳이었다. 앞서 직접 눈으로 뵈었지만 인사는 못 드린 어머니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꿈이었다. 서로를 알아서 눈인사를 한 후 강의를 함께 듣는 모습으로 내용이 이어졌다.
꿈을 꾼 시점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오체투지 서울모임에 참석할지를 고민하다 참여하지 못한 며칠 후였다. 햇살이 한참 뜨거울 때였고 허리 때문에 통원치료를 받을 때였다.
모임 전날 윗집 누수가 추가발견해서 집회 당일은 여러 군데 전화하고 집수리 하시는 인테리어 사장님이 다녀가신 날이었다. 정신없이 여기저기 연락하고 초조한 마음에 말라버린 망고스틴을 자르면서 생각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어머니들 톡방에 모임 관련 안내를 본 것은 몇 시간이 지나서였고, 아차 하는 순간 공유된 사진에는 오체투지가 끝나고 국회의사당 앞까지 행진한 모습이었다.
그날 집회에는 아들이 다니는 곳은 학부모회 회장님 혼자 다녀오셨고 사진으로 집회 모습을 공유해 주셨다.
당일 오체투지 행진 후 국회의사당 방문을 하고 평생교육원 교육생 중 참가하시는 학부모님 자녀분은 선생님 한분께서 직접 국회의사당까지 자녀를 데리고 오신다 했다.
꿈속에서는 공간을 가득 채운 어머니들의 모습이 보였다. 모임 후 사진 속에는 내가 아는 어머님의 오체투지 모습도 찍혀 있었기에 선배 어머니들의 오체투지에 함께 하지 못한 주저함과 후회였을까?
국회 예산에서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원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소식에 깨기 힘든 양철천장이 눈에 보였던 것인지 스스로는 알 도리가 없다.
서울 오체투지 집회 전 국회예산회의에서 평생교육원 지원 예산건이 통과되지 못했기에 오체투지 행진과 국회의원실을 방문해서 내년도 평생교육원 예산에 대한 확답을 받고서 오후 늦은 시간에야 해산했다는 문자가 왔었다.
꿈은 짧았고, 그 속에서 들은 내용은 기억에 남지 않았다. 꿈속의 모습들이 몇 장의 사진처럼 기억 속에 툭툭 박혀있다. 선배어머니들의 투쟁과 스스로는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기 어려운 우리 아이들과 성인이 된 자녀들을 위해 목소리와 시간을 내지 못한 내 자신을 향한 부끄러움이 내 마음속에 가시처럼 박혀 꿈까지 꾸었으리라.
전국장애인 부모연대의 여러 모임은 대부분 평일에 이루어지는 집회여서, 지난 6월의 투쟁과 같이 본인이 쉬고 있는 날, 의미 있는 집회에 갈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흔치 않다.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번 해 7월과 8월, 브런치 대상 작가분들과의 만남 시간들이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 멀지 않은 곳이라도 갈 수 없어 아쉬운 마음처럼, 앞으로 13년 동안은 일을 쉬지 않는다면 참여가 힘든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는 마음이 깊고 아프다.
꿈을 꾸고 머릿속에서 글로 남기길 원했던 마음과 다르게 문장으로 어떻게 써 내려갈지 무딘 손끝을 탓하며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답답한 현실은 답답한 꿈으로...
오늘 이 글도 답답하다. 건조하기만 하다.
바깥은 장맛비로 질척거리는 거리인데, 메마르다 못해 가뭄에 갈라 터진 논바닥처럼 가슴속에서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즐거운 꿈도, 행복하고 감격스러운 꿈도, 슬프거나 비참한 꿈도, 눈을 뜬 후에는 잠깐의 여운이 남는다. 하루를 살아갈 힘이 있는 건 그래도 후회하고 힘들어하는 것에도 맷집이 생겨서일까?
내 꿈도 나의 일부이기에 여기에 남아있다. 살아있으니 꿈을 꾼다. 살아있으니 글을 쓴다.
(이 문장은 어디선가 다른 작가님께서 쓰신 문장의 패러디 같다. 그 글을 읽을 때 코끝이 찡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