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도에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꿈은 이사 가기 전 우리 집 아래층 아주머니가 이사한 우리 집을 찾아온 꿈이었다.
웃으면서 우리 집에 와서, 자기 집에서 가져갔다는 욕실용 거울을 안방 벽면에서 찾고, 수줍게 웃으며 자기가 입던 반바지 하나를 가져갔다면서 내가 보여주는 여러 개 옷 중에서 하얀 바탕에 꽃무늬가 있는 면반바지를 가져갔다.
나를 바라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모습이 보였건만, 꿈은 현실과 반대라지 않던가.......
이날 연속 2개의 꿈을 꿨었는데 이 꿈만 그 뜻이 너무 궁금해서 해몽을 찾아보느라 기억에 남았다.
마음 쓰지 않던 누군가가, 내가 마음을 끊어내지 못한 자녀들 모습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내놓기 힘든 부분을 감당하리라 내심 기대하던 꿈이었다. 그냥 혼자 기대했던 부분이겠지 추측한다.
2024년 12월은 과거와 다른 묵직한 사건, 사고로 무언가 마음을 짓누르는 끝내지 못하는 기억으로 남는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을 나이 50인 내가 보았고, 매 순간 너무 생생해서 사고 영상을 보며 속으로 비명 지르게 되는 12월 29일의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가 있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최선을 다해 자신을 포함한 181명의 생사를 짊어져야 하셨던 제주항공 기장님과 함께, 마지막까지 유압이 들어오지 않아 온 힘을 다해 조정관을 잡으셨을 부기장님, 가장 행복했던 여행의 기쁨이 도착 몇 분 전 새떼와의 충돌로 영원한 마지막 기억이었을 175명의 승객분들, 지면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일을 묵묵히 했을 승무원들을 생각한다. 그들에게 안도와 도착의 순간, 귀가의 푸근함이 마지막 꿈이기를, 유가족분들에게 시작된 고통의 시간들 속에 매일의 꿈만은 여행을 끝낸 즐거운 가족의 모습만 찾아와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내게는 몇 년 전부터 생긴 울음버튼이 있다. 홀로 중환자실에서, 자가호흡이 안되어 기도삽관으로 매 순간 차가운 산소를 폐로 직접 느끼시며 괴로워하시던 내 어머니의 모습이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의 단편이다. 그 모습 대신 산소호흡기와 연결한 기도삽관을 딸인 내가 뽑아드리고, 환한 미소로 내 이름을 부르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당시에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꿈이었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짧아서, 가족과 함께여서, 너무 어이없어서 아픔의 총량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남은 가족들의 아픔이 돌아가신 분들의 짧은 순간과 비교되지 않겠지만, 갑자기 고인이 되신 분들의 바람만큼 오래 지속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살아가실 시간 동안 아픔은 남고 억울함과 황망함은 거둬지지 않으며,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온몸이 고통으로 덮일 수 있기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다는 고통은 내 목숨이 다하는 순간의 고통보다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같이 그 순간에 함께 있어야 했다고 자책하지 않으시길, 내 손으로 티켓팅해서 여행 보내드렸다고 한탄하지 않으시길 간절히 바라본다.
가족으로 내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연명치료의 순간을 보면서, 그래도 저렇게라도 살아계시길 소망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때의 가슴 아픔이 몇 년 동안 기억만으로도 끝없는 눈물이 쏟아지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어머니의 고통을 내려놓아야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일상을 튼튼하게 살아낼 수 있겠지. 내가 살기 위해 내려놓고 밀어내어 기억 속에 방벽을 쌓아서라도 살아가야 한다. 좋았던 기억, 함께 했던 순간들, 맛보았던 음식과 냄새, 향기들, 함께 보았던 풍경, 함께 들었던 소리, 온몸으로 미세하게 느껴지던 바람까지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진 기억의 잔상을 추억이라는 마음의 보물상자 속에 넣고 현실이라는 자물쇠로 잠글 것이다. 과거의 그날을 닮은 날짜라는 숫자에, 비슷한 뉴스가 열쇠가 되어 한순간 열리면 다시금 떠오르겠지만 말이다.
어제오늘 많이 리트윗 되었던 글 중 항공 관련 규정은 피로 쓰였다는 문장을 봤다.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건 범죄라는 글도 봤고, 수많은 무고한 희생으로 얻어진 규정이기에 이중 삼중으로 지켜야 한다.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는 지켜야 할 도리이고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무언가를 공문으로 남기고, 결정하는 순간, 결재하는 문서들에 이름이 남는다. 허락했던 사람들에게는 책임이 따른다. 결과는 알 수 없었지만, 결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 어디가 이렇고 다들 그렇게 한다는 말은 변명일 뿐, 몰랐고 예상할 수 없었다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내 탓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래서 홀로 외롭고 더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왕이 되려는 자여,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결재 라인에 있는 자들이여, 당신들의 결정이 어떤 무게를 가지는지 알고 있었는가? 스스로 느끼고 책임을 지고, 그만큼 해결을 위해서 노력하라. 꿈 이야기에 뜬금없지만 악몽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매 순간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