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땅콩을 우리에게 주세요

유기견 입양 신청했어요

by 예일맨

8월 11일, 오늘은 "반려마루 화성(구 도우미견 나눔센터)"이라는 유기동물 입양 센터에 처음 가는 날입니다. 아이는 가자마자 바로 강아지를 데려올 것 마냥 잔뜩 들떠 있습니다. 차에 타고 신나게 출발합니다. 아이는 평소 같으면 10분 이내에 입을 떡 벌리고 잠들어야 하는데 오늘은 한 시간이 넘도록 버팁니다.


한참을 가니 한적한 왜진 곳에 한 건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도착했어. 일어나야지' 결국에는 눈꺼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잠든 아이를 깨웁니다. 벌써 다 왔느냐는 듯 기분 좋게 일어난 아이와 함께 낯선 건물로 들어섭니다. 로비에는 자그마한 개들이 '왈왈' 짖으며 즐겁게 뛰어놀고 있습니다.


친절한 수의사 선생님께서 친히 안내를 해주십니다. 아이는 라떼같은 아이를 키우고 싶다며 한 마리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유심히 살펴봅니다. 나이도 생김새도 크기도 다 제각각입니다. 그러나 공통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문 앞으로 다가가면 두 앞 발을 들고 꼬리를 흔들며 '왕왕' 하고 짖습니다. 꼭 '나 좀 데려가세요'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하지 않는 조용한 친구 하나가 유독 더 눈에 띕니다. 바로 땅콩이입니다. 문 앞에 다가가면 오히려 뒤로 물러납니다. 안쓰럽습니다. 뭔가 위축되어 있고 의기소침한 모습이 짠하지만 무서워하는 것 같아 저도 살짝 물러나게 됩니다.


땅콩이 말고도 여러 유기견들을 만났습니다. 체구도 가장 작고 피부병 때문에 옷을 입고 있지만 활발하고 당찬 요크셔 감자. 귀엽고 똥꼬발랄한 킹찰스 스패니얼 카롱. 사고뭉치 까불이 말티즈 찐빵. 조용조용 얌전한 애교쟁이 말티즈 쁘링. 귀여운 검둥이 믹스견 쏘나. 작지만 의젓하고 순한 니모.


가족이 될 수도 있는 아이들을 잊지 않으려고, 함께 오지 못한 아내에게 보여주려고 사진첩에 꼭꼭 눌러 담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눈빛을 보내는 그 많은 아이들 중 한 마리만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어렵기도 무겁기도 했습니다.


가족회의를 열었습니다. 적게는 10년, 길면 20년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우리 가족 모두의 의견이 일치해야 합니다. 우리의 상황과 환경 등을 고려했을 때 가장 알맞은 아이를 데려와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면 차라리 키우지 말아야 하기에 중요한 몇 가지만 정하기로 했습니다.


집이 넓지 않으니 첫째로 소형견, 둘째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 수 있으니 분리불안이 크지 않은 친구, 셋째로 첫 반려동물 양육이니 모두 걱정이 크지 않도록 건강상 문제가 없는 친구, 넷째로 맞벌이라 청소를 자주 할 수 없으니 털이 많이 빠지지 않는 친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급적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어린 친구로… (조건이 굉장히 까다롭네요)


회의를 마친 후 가족 모두가 한 번 더 센터에 가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고 어떤 친구를 입양할지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며칠 만에 다시 간 것이라 친구들이 거의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과 많이 달라 보이는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소심하고 우울해 보였던 땅콩이가 로비에 나와 해맑게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변화된 모습에 충격을 받아서였을까요? 땅콩이는 우리 가족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한 조건에 어쩌면 그리도 딱 들어맞는지… 5개월령으로 추정되는 어린 나이인데도 조심성도 많고 지나치게 발랄하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 중엔 불호가 없다는 푸들이었습니다.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회의의 매듭을 지었습니다. 땅콩이 입양을 신청해 보기로… 바로 유기견을 입양하기 전에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교육을 들었습니다. 아내는 더 바쁘게 움직입니다. 당근에서 목줄, 밥그릇, 켄넬, 빗, 냄새 제거제 등 반려견 양육에 필요한 물품을 일괄 구입합니다. 방에 설치할 안전문까지… 아직 결정도 되지 않았는데 만발의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땅콩이 입양 신청을 하려면 좀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아직 중성화 수술이 안돼있어서 그것까지 마치고 회복한 뒤에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월요일마다 홈피가 업데이트되니 들어가 보고 "신청 버튼"이 활성화되면 그때 신청하면 된다고 안내해 주십니다. 가끔씩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는데 아직 버튼을 누를 수가 없습니다. 두 주째 월요일인데도 아직 더 기다려야 하나 봅니다.


센터에 갔다 온 지 14일쯤 지났습니다. 토요일이라 제부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가는 길에 있는 입양 센터에도 한 번 더 들렀습니다. 땅콩이를 데리고 나와서 산책도 시키고 마침 나와 계신 훈련사에게 언제쯤 입양 신청이 가능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이미 신청받고 있는데요, 어서 신청하세요. 땅콩이 인기 많아요"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홈피에 들어가 보니 땅콩이 입양 신청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내 앞에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부리나케 핸드폰을 들어 신청서를 작성하고 "완료" 버튼을 눌렀습니다. 신청을 하고 나니 궁금했습니다. 땅콩이 입양 경쟁률이…


"저기 저 훈련사님 땅콩이 입양 신청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나요?

"정확히 말씀드릴 순 없고요, 꽤 많아요. 그런데 개 처음 키워 보시죠?"

"네"

"처음인 분은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개를 키우시는 것을 추천해요. 그리고 신청자가 많으니 안되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두둥!!' 반려동물을 키우려고 마음을 먹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는데, 원하는 친구를 데려오는 것도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신청만 하면 바로 입양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우울했습니다. 그 정도 경쟁률인 줄 알았으면 좀 더 신청서를 신중하게 쓸걸 그랬다며 후회도 해보고, 아무리 경쟁이 심해도 우리한테 올 수도 있다며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아니어도 다른 친구를 데려오면 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합니다.


집으로 들어오니 거실 한편에 덩그러니 놓인 밥그릇이 쓸쓸해 보입니다. 이미 설치해 놓은 산뜻한 안전문이 애처롭게 보입니다. 우중충한 색의 캔넬은 어두운 분위기를 더 험악하게 만듭니다. '제발 땅콩이를 우리에게 주세요! 이 친구가 아니면 안 됩니다!' 구질구질하게 읍소를 했어야 했는데… 후회로 가득 한 밤을 보냅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릅니다. 마음을 좀 비워보려 노력합니다. 원래 키울 생각이 별로 없는 사람 아니었냐고… 찌질한 생각으로 정신승리를 해보려 합니다. 그러고는 이내 닭 쫓다가 지붕 쳐다보는 개처럼 맥이 빠집니다. 아들에게 매일 꼭 해야 하는 분량의 공부를 시켜놓고 소파에 드러누워 핸드폰만 쳐다봅니다.


하릴없이 유튜브가 시키는 대로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가 뜹니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으니 센터의 훈련사였습니다. 몇 분 간의 통화 후 아들은 저를 쳐다봅니다. 저도 아들을 웃으며 바라봅니다. 그러고는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성을 지르며 들고 뜁니다. 2002년 월드컵 때가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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