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기다리는 새 생명을 위해
우리나라가 출산율이 저조하다고 하지만 새 생명을 간절히 바라는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다. 얼떨결에 시험관 1차를 도전했고 과배란 주사를 맞는 첫날, 학생이 중환자실이 친구가 있으니 도와달라고 해서 그날부터 일주일을 꼬박 밤을 지내며 주사를 맞았으니 잘 될 일이 없었다. 나에게도 너무 중요한 순간이었지만, 타지에서 부모도 없이 죽어가는 그 아이를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적어도 중환자실에 있는 그 아이를 하늘에 잘 보내주면 적어도 새 생명을 주실 줄 알았다. 그래서 난, 내 몸이 축이 날 지언정 한 생명을 최선을 다해 하늘에 보내 주었다. 결과는 너무나 슬펐다. 너무나 한스럽게 펑펑 울었다.
그리고 바로 시작 한 시험관 2차, 쉬지 않고 시작해서 그런지 익숙해졌지만 배에 놓는 주사는 더 아팠고 혹독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지만 걱정거리는 많았다. 이번에 내 걱정이 아니라 엄마 일이었다. 하지만 난 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나와 내 동생들을 홀로 키운 보답이라 생각해서 엄마의 일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렇게 또 딸로서 최선을 다하면 하늘은 나를 저버리지 않을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 그거 하나는 주시겠지.. 다 가져가도 내가 간절히 바라던 새 생명하나만큼은 주시겠지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또 참담하고 암담했다. 울 힘도 없었다. 그저 그냥 원망스럽기만 했다.
무엇이든지 내겐 한 번도 쉽게 주신적이 없다. 사랑하는 우리 딸도 시험관 3차에 겨우 얻었다. 그게 2020년이니, 지금은 더 쉬울 거라 생각하는 게 내 착각이고 오산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딸이 더 소중하고 간절하다. 이렇게 우리에게 와준 것만 해도 어딘가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신기해서 쳐다보고 또 쳐다본다.
누군가는 육아가 힘들다고 하지만, 난 육아가 내 삶의 동력이었다. 매 순간 힘들 때마다 이 아이를 보며 내 삶을 버텨왔다. 하루에 몇 번이고 벗어던지는 내 페르소나를 이 아이가 가능하게 해 주었던 것이다. 어떤 힘든 순간이 와도 내 딸과 함께하는 순간은 모든 것이 무장해제였다.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한 번만 내가 원하는 거 그거 하나만 달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원했는데 신께서는 그거 하나조차도 내게 허락하지 않으시나 보다. 뭘 얼마나 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라는 거지….
시험관을 하니 호르몬 변화가 급격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든다. 좀 쉬었다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