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게임이라면
게임 심즈 4에서 심, 즉 캐릭터를 만들면 2만 시몰레온을 준다. 기본 정착금 같은 개념이랄까?
시몰레온은 심즈 세상의 화폐 단위인데, 최저시급이 15시몰레온 정도 되니까 대략 1시몰레온 = 1달러 = 1천 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2만 시몰레온, 즉 2천만 원 정도면 심즈 세상에서 비싼 집에는 못 들어가도 집 하나 사고 거실, 침실, 주방, 화장실 등을 꾸미고 살 수 있는 적당한 금액이다.
현실에서야 어디 2천만 원 이하 단독 주택이 있겠냐 만은, 그 돈마저도 없이 게임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무일푼 챌린지를 하는 사람들이다.
나 또한 심즈 경력이 아주 길다. 초등학교 때 심즈 1을 시작으로 20년 이상 심즈를 해왔다.
어릴 때는 심과 집을 꾸밀 수 있는 각종 예쁜 아이템들을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하다가 1차로 지치고, 심 만들고 집 짓다가 2차로 지치곤 했는데, 심즈 4가 출시되고 나서는 심이나 집 꾸미기에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갑자기 웬 게임 이야기냐고?
그렇게 오랫동안 심즈를 해온 내가 가장 즐거운 플레이를 했던 방법이 바로 최근에 시도한 무일푼 챌린지였기 때문이다.
심즈 또한 자본주의 사회라, 저렴한 침대에서 잠을 자면 비싼 침대에서 잠을 잘 때보다 피로가 덜 풀린다.
에코 라이프 확장팩이 출시된 후로는 청구서 금액을 모두 지불해도 정책상 전기나 수도가 끊겨서 생활에 불편함이 생기는 경우도 많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상황에서 나는 훨씬 더 재밌게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컨테이너에 살면서 새벽에 알바로 투잡하고 잠이 모자라서 커피를 들이켜는 ‘목표가 있는 삶’이 좋았다.
또 다른 재미있는 플레이 방법은 수상하게 저렴한 아파트에서 살기!
시끌벅적 도시 생활 확장팩에는 보증금 6백에 주간 임대료 3백 시몰레온인 집이 있다. 주세 30만 원이긴 하지만 심즈 상의 1년이 28일이고 심의 중간 수명이 4년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아주 저렴한 집세이다.
심지어 도심에 있는 투룸 고층 아파트라 뷰까지 좋은 이 집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282390
층간소음과 쥐, 수도, 전기 문제까지! 현실이라면 고통스러울 무일푼, 노숙, 생활고 체험이 왜 심즈에서는 재미있을까?
1.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모래사장에서 모래를 파기만 해도, 쓰레기통을 뒤지고, 심지어는 반려 동물에게 부탁해서 물건을 가져오라고 하기만 해도 돈을 벌 수 있다.
취업난도 없다. 전화 한 통으로 취업이 되고, 직업별 최고 등급 달성 역시 웬만하면 시간문제다.
그림 그리기, 노래 부르기, 낚시하기, 게임 대회 참가하기 같은 취미로도 돈을 벌 수 있다.
위자료 장사도 쏠쏠하다. 복권 당첨자와 친해져서 100만 시몰레온 당첨금과 살던 집까지 모두 빼앗고 내쫓아 버릴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용과만 잘 키워도 30억 부자가 될 수 있다. 자영업도 쉽게 성공한다.
그러니까, 부자가 되기 쉬운 게임 속에서 오히려 나는 노력하며 사는 삶의 충만함을 느낀다. 확실한 보상과 적은 노력이 좋다.
https://youtu.be/sMPN6D3AFHI?si=D6D3pqJzAywAlc0Z
https://youtu.be/Jqmh2-p3Tnw?si=8-nsMSjiFwdTmtKw
2. 돈이 없어도 죽지 않는다. 오히려 잘만 산다!
심즈에서 사망에 이르지 않으려면 준비할 것들이 있다. 일명 싸씻먹자! 최소한 변기, 세면대, 냉장고, 침대만 있으면 죽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도 지킬 수 있다.
여름옷과 겨울옷, 스마트폰 기본 지급에 택시비도 공짜이니 동네 도서관, 공원, 술집 등을 돌아다니며 무료 인프라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심지어 비행기도 공짜다!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몰래 눈치껏 남들 잘 때 씻고, 출근할 때 자고, 냉장고에서 공짜 완두콩만 꺼내 먹어도 잘만 산다.
살아가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으니 ‘월든’ 같기도 하고, ‘나는 자연인이다‘ 같기도 하다. 자유롭다.
https://youtu.be/nmkQvDLaSWY?si=ie-DpRYtx6Z8j7qb
https://youtu.be/JxFsDm9I1hY?si=8wazOKTzsu4Js9HO
3.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의 DNA
나는 심즈에서 파티를 잘 열지 않는다.
퀘스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심들을 불러 음식을 대접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한 두 명 정도 심만 친하게 지내거나 가족으로 컨트롤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컨테이너 집에서 IT 전문가 계열 최상위 직업 도달 목표로 게임을 했을 때다. 새벽에 카페 바리스타 아르바이트를 하고 출근을 한다. 직장에 가면 그래도 점심밥은 알아서 챙겨 먹는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시리얼이나 피넛버너젤리샌드위치 같은 공짜 음식으로 대충 한 끼 때우고 승진을 위해 과제, 독서, 자기 계발 등에 올인한다. 이렇게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승진해서 하루에 3천 시몰레온씩 벌 수 있다.
아직 달성해 본 적은 없지만 총 20만 시몰레온을 벌고 5만 시몰레온을 모으면 ‘엄청난 갑부’ 야망이 달성되어 매주 재산에 따른 이자를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솔깃하다. 빌딩 건물주는 못 되어도 배당받고 월세 받기는 가능한 게임이다.
게임에서까지 왜 그렇게 궁상을 떠냐고? 게임은 대리만족이니 집에 수영장 있고 농구 코트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나도 심즈에서 100만 시몰레온 복권에 당첨되어 봤고, 펜트하우스에서도 살아봤다.
https://youtu.be/VIhQRuD6s00?si=HvaOaQiaYO9unSaR
그러나 내가 더 좋아하는 심즈 플레이 영상들은 0원! 무일푼! 빚갚기! 같은 내용이다.
https://youtu.be/SEQ-v1jCIAw?si=BCqqtpx8OoznIKyS
https://youtu.be/bbXT9mXNsic?si=AZO7VA1hcmAYCIxg
https://youtu.be/kFT48NAZLXc?si=bum-IPHS-ArxdAlJ
도대체 왜 이런 영상들이 막연하게 좋을까 생각해 보면, 아직 부자가 아닌 나는 결과보다는 부자가 되어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봉과 호봉이 조금씩이라도 늘고, 재투자를 통해 자산과 배당이 늘어나는 삶이 좋다.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내일의 ‘나’를 좋아한다. 발전적인 삶이다. 심지어 게임에서는 현실에는 있는 조금의 고통마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씩 지칠 때는 술라니라는 심즈 휴양지에서 푹 쉰다. 따뜻한 햇볕 아래 하루 4시간만 안전 요원으로 일하면서 돈 걱정 없이 유유자적하게 살기도 한다.
한 푼 두 푼 열심히 모으는 삶도 나의 것이고, 큰맘 먹고 플렉스하는 것도 나의 삶이다! 돈을 쓸 데에는 쓰고 안 쓸 데에는 안 쓰면서 오늘도 행복하고 내일도 행복한 내가 되길 항상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