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본 짱구는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낙서 왕국이라는 영화 제목에 걸맞게 개구쟁이 짱구는 신이나 그림을 잔뜩 그렸고, 그중 이슬이 누나를 그릴 때 유독 짱구의 입꼬리가 귓불 가까이까지 올라가 보였다. 짱구는 이슬이 누나가 그렇게 좋은가.
나랑 민이는 카페에 가는 걸 좋아한다. 어쩌면 내가 카페를 좋아하니 민이가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1년 전에 갔던 그 우드톤의 카페도 내 마음에 들어서, 그리고 그런 나를 따라가 준 민이 덕분에 들리게 됐다.
카페 구석에 있는 나무 탁자에는 커터칼로 뭉뚝하게 깎아놓은 연필 한 자루와 방명록을 남길 수 있는 노트 한 권이 있었다. '누구누구 들렸다 감' 외에 딱히 쓸 말도 없으면서 우리는 괜히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평소에도 그랬듯 빈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어떤 말로 채울지 고민했다.
담백하게 이름 석 자를 적자니 날씨가 지나치게 좋았다. 반팔을 입어도 춥지 않을 만큼 봄이 무르익었기에, 귀찮은 일 하나쯤 더 얹힌다 해도 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서로 그려주기 할까?"
결국 글 몇 자와 함께 약간의 정성을 더해 그림까지 남겨보기로 했다. 내가 먼저 민이를 담고, 그리고 민이가 나를 그렸다.
다 큰 남녀의 그림을 보는 건 참 재밌다. 서로의 그림 실력이 들통이나 웃음이 나고, 서로의 시선이 선명하게 드러나 흐뭇해진다. 종이에 그어진 연필선을 따라가다 보면 유독 강조된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그린 민이의 그림에서는 눈썹이, 그리고 민이가 그린 나는 눈이 그랬듯이.
평소에 민이의 눈썹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빈틈 없이 촘촘한 숱도 한몫하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눈을 따라 부드럽게 늘어진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런 민이의 눈썹이 보기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를 아주 직설적으로 말하듯 민이의 눈썹을 짙게 그리고 있었다.
상대를 그리다 보면 단순하게 존재 자체로서의 누구가 아닌, '손이 예쁜' 혹은 '눈썹이 멋진'이라는 식의 여러 수식어를 붙이게 된다. 종이의 공백을 채워나가기 위해 평소보다 이목구비를 더 세세히 살핀 탓에, 그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상대의 매력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나만 알고 있기에는 아까우니 그 수식어가 한층 더 또렷해지도록 손에 힘을 주어 그리게 된다.
민이가 그려준 그림을 통해 민이의 시선을 따라가본다. 유독 여러 번 덧칠해 그린 눈, 아무래도 민이는 내 눈을 좋아하나 보다. 타인에게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나의 장점을 하나 더 알아가게 된다.
민이도 내 그림을 보면서 느꼈으려나, 내가 민이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아마 짱구도 이슬이 누나를 그리면서 이슬이 누나를 더 좋아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