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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선 28화

문병

by 한현수

중환자실의 그녀에게 문병을 간다


거리에 목련이 피었어요

눈가에 괴는 빛의 기울기만 재는 그녀에게

더는 먼 바깥 이야기는 못하지

넌출 같은 치렁치렁한 수액줄만 만지작거리지


간식거리로 추억 몇 잎 꺼내놓는 척

서로에게 첫 목련이 피고 지던, 그 사이 어디쯤

서로에게 어깨 잡히던 그때처럼


또 목련 그늘이 지려나 봐요 일어나요

어서 일어나 봐요

여전히 그녀는 못 이기는 척 지는 싸움만 하지

눈 한번 살짝 떠주는 것으로

사실은 그녀가 먼저 진실을 고백하곤 하지


하지만 서로를 밀어내지 못하고

우리는 죽음의 눈치를 살피며 죽음을 길들이는

헛그물질만 하지


병을 묻는 게 문병이라지만

묻기도 전에

그녀가 내게 목련 그늘처럼 흘러들어와

약간의 체온만 건네주고 잠들려고만 하지





시집 <기다리는 게 버릇이 되었다>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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