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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선 27화

장롱

by 한현수

아내가 시집올 때 데리고 와서 삽 십 년을 함께 지내 온 그를

고심 끝에 사다리차로 끌어내렸다


어디 갈 데가 있겠지, 되돌아 나오는데

그가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것만 같았다


방이 이리 컸던가?

큰아들보다 한 살 많은 그를 따라 집을 나간 것 같은 방,


우리의 말소리는 물러지고 내려앉을 곳 없이

그가 있던 빈자리를 맴돌기만 한다


가만있어도 귀가 먹먹해진다


옷만 받아준 게 아니었구나

이불을 끌어안고만 있던 게 아니었구나


그가 대화를 듣고 있었구나

말머리가 겉돌지 않게 집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귀청에 넉넉하게 건네줄 만큼만 말의 찌꺼기를 걸러주었구나


밤늦도록 집에서 부러진 문고리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시집 < 기다리는 게 버릇이 되었다>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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