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모자를 쓴 소녀가 휠체어에 앉아 있네
엄마에게 뭔가 말을 꺼내려는 것 같은데
기울어지는 어깨 위로 등꽃이 피네
혀끝에 첫 말을 올려놓기도 전에
몸이 꼬이고 얼굴이 찌그러지고 있네
내 가 등 나 무 에 서 나 왔 나 봐
소녀가 조각조각 웃네
자꾸만 등꽃 향기 번지는데
숨 막힐 듯 비틀어
몸을 넘어서면 무엇이 있을까?
겨울에 자라난 말이 등꽃으로 피는 오월
꽃잎은 비틀어 터져 버린 말의 숨결이지
몸보다 말이 먼저 아팠던 거지
질긴 말더듬으로
몸속으로만 숱한 말을 흘려보냈던 거지
시집 <눈물만큼의 이름>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