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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선 25화

몸보다 말이 먼저 아픈

by 한현수

보랏빛 모자를 쓴 소녀가 휠체어에 앉아 있네

엄마에게 뭔가 말을 꺼내려는 것 같은데

기울어지는 어깨 위로 등꽃이 피네


혀끝에 첫 말을 올려놓기도 전에

몸이 꼬이고 얼굴이 찌그러지고 있네


내 가 등 나 무 에 서 나 왔 나 봐


소녀가 조각조각 웃네

자꾸만 등꽃 향기 번지는데


숨 막힐 듯 비틀어

몸을 넘어서면 무엇이 있을까?


겨울에 자라난 말이 등꽃으로 피는 오월

꽃잎은 비틀어 터져 버린 말의 숨결이지

몸보다 말이 먼저 아팠던 거지


질긴 말더듬으로

몸속으로만 숱한 말을 흘려보냈던 거지




시집 <눈물만큼의 이름>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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