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순간

나는 더 잘 살기보다, 덜 아프게 살기로 했다

by 민힐러

나는 오랫동안 삶을 대하는 태도가 하나뿐이라고 믿었다. 버티는 것, 참고 견디는 것, 조금 아파도 멈추지 않는 것. 그렇게 해야만 어른이 되는 줄 알았고, 그래야만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비슷해 보였다.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계속 해내고 있었고, 지친 얼굴로도 다음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나만 멈출 수 없었다. 멈추면 나만 나약해질 것 같았고, 쉬면 내가 게을러지는 것 같았다. 그건 삶의 태도라기보다, 어느새 나에게 씌워진 규칙에 가까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몸보다 마음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피곤해도 하루쯤은 넘길 수 있었는데, 이제는 작은 일정 하나에도 숨이 가빠졌다. 특별히 큰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겉으로 보면 잘 버티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은 해내고 있었고, 주변에서는 여전히 “잘하고 있다”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들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 잘하고 있다는 말이, 더 잘해야 한다는 요구처럼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렇게 사는 게 정말 맞을까.


지금까지는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힘든 건 당연한 거라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그러니까 나도 참고 가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더 잘 살기 위해 계속 자신을 몰아붙이는 이 방식이, 정말 나를 위한 건지 알 수 없었다. 혹시 나는 ‘잘 사는 법’을 배우느라, ‘덜 아프게 사는 법’을 한 번도 배우지 못한 건 아닐까.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순간은 대단한 깨달음이나 극적인 사건에서 오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조용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날, 문득 내가 나를 너무 함부로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은 척하고, 지치면서도 계속 웃고,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기분 탓’으로 넘겨버리던 태도 말이다. 그 태도가 나를 성장시키는 줄 알았는데, 실은 서서히 마모시키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삶의 기준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더 성실하게, 더 단단하게 사는 것보다 먼저 덜 아프게 사는 쪽을 선택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이 선택이 낯설었다. 덜 아프게 산다는 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 더 이상 나를 무시한 채 앞으로만 밀어붙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하기 싫은 일을 무작정 참지 않고,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을 억지로 합리화하지 않는 것. 마음이 이미 지쳤다고 말할 때, 그 말을 무시하지 않는 것.


이 선택은 겉으로 보기엔 아주 사소했다. 일정 하나를 줄이고, 관계 하나에서 거리를 두고, 오늘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내일로 미루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사소한 선택들이 쌓이자, 삶의 결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이 정도는 참아야지’라고 넘기던 순간에 멈춰 서게 되었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허락하게 되었다. 삶이 갑자기 쉬워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무작정 아프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나를 대하는 태도였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설득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았다. 괜찮지 않다는 마음을 괜찮다고 우기지 않았고, 회복이 필요한 시간을 실패로 여기지 않았다. 삶은 여전히 선택의 연속이었지만, 그 선택의 기준이 달라졌다. 남들보다 늦어질까 봐 선택하던 삶에서,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삶으로 방향을 틀었다.


돌아보면, 그 전환은 용기라기보다 정직에 가까웠다. 이제는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나 자신에게 솔직해진 순간이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다는 건,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일이 아니라 같은 삶을 다른 자세로 살아보는 일이었다. 조금 느려져도 괜찮고, 덜 아파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태도. 그 태도가 생기자, 삶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이전보다 덜 거칠게 느껴졌다.




나는 이제 안다. 잘 사는 삶이 꼭 단단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비켜서서, 아픔을 줄이는 방향으로 살아도 된다는 걸. 삶은 나를 시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살아내기 위해 존재한다는 걸. 그리고 그걸 깨닫는 데에는, 아주 조용한 태도의 변화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도.


다음 화에서는, 이 태도의 변화 이후에 내가 삶을 대하는 속도와 기준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일상 속에서 어떤 선택으로 이어졌는지를 더 이야기해보려 한다. 삶은 여전히 선택의 연속이지만, 이제 나는 그 선택 앞에서 예전과 다른 마음으로 서 있다.

keyword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민힐러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두 개의 이름으로 살아가며 글과 기록을 통해 정체성과 감정을 탐구하는 민힐러입니다. 감성 콘텐츠와 퍼스널 브랜딩을 다루며, 진심 어린 문장으로 삶을 치유하는 힘을 전합니다.

7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0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1화그렇게 하루가 달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