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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f yosef Jan 06. 2024

세상의 아버지들에게

프로젝트: 나의 이야기를 자녀에게 남겨주기

내게 있어 언젠가는 풀어야 할 이야기 중에 하나가 '아버지'입니다. 아마도 많은 3~40대의 한국 남성들, 아니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들은 자신들의 아버지와 관련해서 나와 비슷한 일들을 겪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여러 모임들 가운데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게 될 때에 듣게 되는 말들이 다음과 같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무서웠습니다'

'아버지를 증오했습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어머니를 마구 때리는 모습을 봤습니다'

'아버지에게 맞으며 자랐습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것입니다'

등등...


나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내가 열여덟 살 때에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극에 달하여 분노에 찬 내 마음속에서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 때문에 나는 또 괴로워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는가?'


비정상적인 생각이 아니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었던 그때의 나는 너무 비참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그래서 더욱 괴로웠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 내용은 내 상황과 너무나도 같았고 책 속의 주인공 역시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분노에 차 있었습니다. 근친살인의 충동에 관하여 나 아닌 다른 사람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 너무 위로가 되었던 순간입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아버지와의 좋은 추억들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행히도 몇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4-5살 때 한 여름 바닷가에서 아버지가 어깨에 나를 태우고 깊은 바다에서 물놀이하던 장면 하나, 6-7살 때에 장날에 신발 사 주신다고 둘이서 시장가던 장면 둘... 결론은 어렸을 때에만 좋은 추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즐거운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말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주고받는 의사소통으로써의 말들이었을 뿐입니다. 깊은 대화는 없었습니다.


가장 슬픈 장면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의 일입니다.

내가 소위 임관하던 날, 먼 고향집에서 전라도까지 가족들과 함께 왔을 때입니다. 멀리서 눈물을 보이며 달려오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외면하는 장면입니다. 무안해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나에게 너무 슬프게 남았습니다. 임관식 후 1주일 뒤에 아버지는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나를 낳으신 때가 37세였습니다. 

내가 열 살이면 아버지는 47세, 지금의 나입니다.

아버지가 참 나이가 많으셨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그 나이가 된 나를 생각해 보면 세상을 잘 살만큼 많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야 깨닫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많이 외로워하셨다는 것,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셨다는 것,

아니, 아버지의 사랑법을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들입니다.


아버지가 어릴 때 또, 젊어서 살아오신 이야기들-물론 아버지가 무용담처럼 하시던 몇몇 이야기들은 있지만-좀 더 진지한 이야기들, 살면서 겪어온 어려움이나, 고민들에 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고민들 말입니다.


나에게는 아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친구나 주변 사람들이 겪는 그네들의 아들과의 관계를 보면서 겪는 문제들이 내가 아버지와 겪은 문제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빠와 말을 하지 않는 아들, 그게 바로 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들을 아들, 자녀에게 꼭 알려주는 일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아들인 목사님이 아버지께 당신의 이야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손글씨로 수십 장의 이야기를 써서 목사님에게 전해주셨답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삶을 그 글을 통해 이해하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아버지와 아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가장 멀어지는 비극만은 피하도록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 자식들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대화로 풀어가면 더 좋겠지만, 대화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글이라는 도구가 오히려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글을 못 쓴다면 녹음이나 녹화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비극적인 관계는 비단 한 가정 안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역과 사회와 국가에 큰 영향을 미칠 만큼 아주 중요하고도 긴박한 문제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건 사고들이 가정 불화, 역기능 가정에서 자라난 청소년, 청년들에게서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말로써, 행동으로써, 글로써 알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나처럼 블로그를 쓰든, 책을 쓰든, 일기를 쓰든, 편지를 쓰든지 형태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형편에 맞게, 그러나 노력해서 꼭 쓰기를 부탁드립니다.






대문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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