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읽은 책 중에 <쉽게 방전되는 당신을 위한 에너지 사용법>이 있다. 책에 따르면 우리는 삶의 지점마다 우선순위를 바꿔야 한다. 저자는 이를 우선순위의 ‘리큐레이션’이라 정의했다. 저자는 덧붙였다. 우선순위를 바꿔야 한다고 해서 이전까지의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그 대목을 읽는 순간, 나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국면에 위치한 나는 우선순위가 자의로 혹은 타의로 재조정되는 것을 지속적으로 거부해왔다. 이전까지의 나는 자기개발이 일상의 최우선순위였다. 평일엔 새벽에 기상하여 운동하고 글쓰는 시간이 최우선 순위였고, 주말엔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이 최우선 순위였다. 이러한 리추얼, 그러니까 매일의 의식은 마치 순서대로 끼워야 하는 옷의 단추처럼 행해지지 않으면 하루가 잘 풀리지 않을 만큼 나에게 중요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결혼 준비를 시작한 후로 평일엔 체력적 한계로 인해, 주말엔 남자친구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이러한 리추얼을 축소시키고 있었다.
리추얼 시간이 단축되면서 읽는 활자의 양도, 써 내려가는 글의 양도 줄었다. 뿐만 아니라 리추얼 시간에도 나는 결혼 준비 ‘일’을 했다. 그렇게 야금야금 크게 알아채지 못할 만큼 조금씩 내 시간을 없애니 나는 어딘가 산만하고 붕 뜬 기분을 갖게 되었다. 그간의 일상과 루틴이 어떤 궤도였다면 나는 그 궤도를 이탈한 상태였다. 그래서 다시 궤도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했는데 궤도로 돌아간다는 것이 단순히 걸음을 몇발자국 옮기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결혼준비가 없던 시기에 분배하여 투입했던 에너지의 총량을 유지하되, 추가 에너지를 창조함으로써(어떻게 그리고 어디서?) 궤도로 돌아가려 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내 에너지는 어느 정도 최적화되어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궤도로 돌아가기를 거듭 실패하던 나는 모든 실패자들이 그렇듯 조금씩 자신감이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실패가 아니라 애초에 달성 불가능한 일을 하려 했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궤도로 돌아가기 위해 에너지를 창조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이미 제한된 나의 에너지를 우선순위에 맞게 리큐레이션 하는 것이었다. 주말 시간은 계속해서 확보하기 어렵겠지만 평일 시간 만큼은 나의 리추얼 시간을 지키고, 결혼준비가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일들을 채움으로써 에너지를 채우고 분배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선순위를 다시 재조정하고나니 일상이 조금 더 단정해진 느낌에 마음도 홀가분했다.
감사한 점은 남자친구가 공백 시간을 채우는 방식이 나의 리추얼을 채우는 방식과 꽤나 중첩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모두 활자를 즐겨 찾으며, 한 공간에 있지만 이따금씩 책과 함께 각자의 세계로 침잠한다. 운동하고, 클래식 음악을 듣고, 이따금씩 공연을 보러 간다. 물론 집에서 자주 유튜브도 보고 영화도 본다. 나만의 리추얼 시간에서 조금 비중을 내어주고 그와 함께해도 즐거울 수 있는 이유다.
지난 주말에도 나는 나만의 주말 리추얼, 그러니까 아침 일찍 혼자 카페에서 책을 읽는 시간은 갖지 못했다. 대신 남자친구와 함께 카페에 가서 각자 책을 읽었다. 물론 아침 시간이 아니었고, 예복을 보다가 잠시 쉬기 위해 들른 카페였지만 말이다. 평일을 시작하는 오늘 아침 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다. 트레드밀을 달렸고, 주말 동안 뻐근해진 몸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나서 카페에 와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일주일의 할 일을 정리하고 지금 이 글을 쓴다. 이렇게 나는 일상을 리큐레이션하며 또 다른 삶의 경험을 쌓고 배운다.